조선 왕, 그리고 리더십 - 개인과 조직을 이끄는 균형의 힘
김윤태 지음 / 성안당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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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좋은 기회로 역사 대중서를 읽었다. 전업투자를 시작한 이래 경제와 경영, 그리고 투자와 관련된 책만 읽었는데, 최근에는 시사와 역사, 그리고 인문학과 실용서들도 함께 읽고 있다. 대중들에게 있어 '조선'이라는 나라는 어떤 이미지일까? 대체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풍기지 않을까 짐작한다.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단어가 '헬 조선'이다. 유교적 이념에 찌들어 있고, 실질보다는 명분에 집착하는 분위기,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서 몰락한 나라 등등... 이런 인상으로 대중들은 조선을 쉽게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부정적인 모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은 500년의 시간 동안 살아남은 저력이 있는 국가였다. 임진전쟁 직후 중국에서는 명나라가 몰락하고 청나라가 들어섰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서며 새로운 시대를 알렸다. 그러나 조선은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섣부르게 과소평가를 할 수도 없다.

 

 500여 년 동안 존재했던 조선의 저력은 어디서 비롯하는 것일까? 전근대 왕조시대에는 국운이 왕의 행보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은 다른 왕조국가와는 다르게 왕권과 신권의 권력 배분이 비교적 균형적으로 행사됐던 나라다. 황제의 권력이 너무 막강했던 명나라에서는 황제의 타락을 시작으로 황제의 주변인인 내시나 환관들이 권력을 남용했고 결국 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이에 반해 조선은 왕의 행동도 중요했지만 왕과 함께 정치를 담당했던 사대부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었다. 왕의 무분별한 권력남용은 사대부의 견제로 이어졌고, 특정 가문이나 신하의 권력이 강할 때에는 왕을 중심으로 한 세력들이 권력 쏠림 현상을 극복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 권력의 분립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조선의 정치체제는 다른 절대왕정 국가보다 훨씬 진보적이다. 이런 시스템이야말로 조선이 오래 유지될 수 있었던 핵심적인 포인트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 책은 조선의 왕 9명을 살펴보면서 배울 점과 비판할 점을 고찰한 역사 대중서다. 조선 건국에 있어 빠질 수 없는 태조, 태종, 세종, 세조를 필두로 중기의 성종, 선조, 광해군, 후기의 영조와 정조를 고찰하고 있다. 아홉 명의 왕들은 조선사에 있어 무척 중요한 왕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도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태조, 태종, 세종, 세조를 살펴보자면, 태조와 태종은 드라마에서 무척 많이 등장했다. '용의 눈물', '정도전' 그리고 최근 종영됐던 '태종 이방원'에 이르기까지, 태조와 태종의 스토리는 사골이라는 비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재해석되었다. 세종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성군이고 명군이다. 계유정난과 관련이 있는 세조의 이야기도 널리 알려졌다. 중기로 넘어가 보면 성종의 경우 조선의 문치를 완성한 왕으로 알려졌다. '성종 = 경국대전 완성 = 조선 문물의 정비'라는 문구는 학창 시절 때나 한국사 관련 시험을 볼 때 기계적으로 외웠던 공식이다. 선조와 광해군은 임진전쟁과 관련이 있다. 후기의 군주 영조와 정조는 조선의 르네상스를 되살린 부흥의 군주로 손꼽힌다. 이렇듯 책에 다룬 아홉 명의 왕들은 일반인들에게 비교적 친숙한 인물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눈에 들어온 부분은 지도자의 후계구도였다. 태조는 용맹하고 결단력이 있었지만 후사 문제를 처리할 때 사적인 감정에 치우쳤기에 말년이 고단했다. 태종은 어떤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태종은 성격이 과감하고 냉혹하며 피도 눈물도 없는 독재자를 연상한다. 그러나 이는 대중매체와 드라마가 만든 허상의 이미지다. 태종은 이유 없는 숙청을 하지 않았다. 혁명 동지들과 처남들을 숙청한 것은 그들이 권력을 사유화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실제 태종은 마음이 무척 여렸고 눈물도 많았다. 이런 개인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공사를 구분하며 후계구도를 처리한 점은 높이 사야 할 점이다. 특히 아버지인 태조와 비교해 볼 때 태종은 후계구도 처리에 있어 무척 대조적이다. 사적으로 양녕을 무척 사랑했지만 조선의 미래를 위해 충녕에게 왕위를 선양했다. 세종은 어떠한가? 완벽한 세종의 단점을 하나 꼽아보자면 후계구도에 대한 부분이다. 그가 아들인 문종의 결혼에 개입한 사실은 알았지만 다른 대군들의 이혼에도 적극 개입했다는 내용은 책을 통하여 처음 알았다. 일에 있어 완벽주의자였던 세종은 자식들의 혼사 문제에도 비슷한 관점으로 접근했던 것 같다. 이렇게 깐깐하게 접근하다 보니 문종의 후사가 늦어졌고, 이는 결국 계유정난으로 이어졌다.

 

 또한 세종은 세자인 문종뿐만 아니라 대군들에게 권력을 나눠주었는데, 이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원래 왕조국가에서 후계자를 제외한 다른 왕자들은 권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이 불문율이다. 왕자들이 권력을 나눠 갖는다면 승계 구도에 잡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역사에 박식한 세종도 이를 알고 있었겠지만 자신들의 자식들은 다를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렇기에 세종이 설계한 후계구도도 공보다는 사적으로 기울었고 그 결과 세조의 찬탈로 이어졌다. 성종과 선조, 그리고 영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종과 선조, 영조는 스스로의 적통성이 결여됐는데 이런 부분이 후계구도를 정립하는 데 있어 걸림돌로 작용했다. 선조는 뛰어난 광해군을 두고 적통인 영창대군과 끊임없이 저울질했고 영조의 완벽주의는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책을 통하여 뛰어난 업적을 남긴 군왕들도 후계구도를 설정하는 것은 무척 힘들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이 외에도 저자만의 균형 잡힌 시각으로 왕들을 해석한 부분이 돋보였다. 흔히 우리는 선조를 두고 무능한 국왕이라고 비난하지만, 그렇지 않다. 임진전쟁에서 선조의 행동은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이순신을 알아보고 전쟁 전 미리 요직에 배치한 부분이나 당쟁과 붕당이 격화되는 상황 속에서도 균형을 유지하며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한 부분은 장점으로 인정해야 한다.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선조는 명군으로 추앙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방계 혈통으로 왕위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왕권을 안정시켰으며, 선조 시대에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 등용된 점을 볼 때 그가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은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조선조의 군왕 중 리더십이 뛰어난 왕으로 숙종을 꼽을 수 있는데, 숙종을 고찰하지 않은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아무튼 조선을 대표하는 아홉 왕의 공과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잘 정리한 것이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선사에 대해서 기초적인 지식이 없는 분들도 부담 없이 볼 수 있겠고, 역사를 통해 리더십을 탐구하고 싶은 분들이나 균형 잡힌 시각으로 조선사를 조망하고 싶은 분들께도 일독을 권한다.

 

 ※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증정 받아서 읽고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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