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내편 동양고전 슬기바다 15
장자 지음, 오현중 옮김 / 홍익 / 202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동양의 3대 사상을 꼽아보자면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라고 할 수 있는데 도교는 도가사상에서 비롯되었다. 오늘 리뷰할 책은 도가사상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책인 《장자》인데, 이 책은 《노자》와 더불어 도가사상을 대표한다. 유가에 공자와 맹자가 있다면, 도가에는 노자와 장자가 있다. 유교사상을 공맹이라고 한다면, 도가사상은 노장으로 통칭한다. 그렇기에 《장자》는 세상에 난 이래로 줄곧 주목을 받았으며, 오늘날 우리에게도 비교적 널리 알려진 고전이다.

 

 동양의 여러 고전들을 섭렵해왔지만 《장자》에 대한 리뷰를 쓴 적은 없었다. 《노자》에 대한 리뷰는 무려 네 번이나 남긴 반면 《장자》에 대한 리뷰는 한 번도 남기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장자》 역시 숱하게 읽었던 책인데, 왜 리뷰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집에 있는 《장자》의 완역본이 여럿 있는데도 불구하고 리뷰를 선뜻 쓰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노자》와는 다르게 《장자》는 여러 가지 우화로 구성됐다. 《노자》가 직설적이고 철학적이라면 《장자》는 우회적이고 해학적이다. 비유해 보자면 《노자》가 '엄진근 - 엄격, 진지, 근엄'이라면, 《장자》는 '해학, 풍자, 가벼운 접근'으로 정리할 수 있다. 문제는 기존에 나온 번역본에서 《장자》만의 해학적, 풍자적인 뉘앙스를 오롯이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해학과 풍자는 문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법이다. 그렇기에 《장자》를 번역하는 데에는 철학적 사유를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센스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는데, 기존의 번역본은 철학적인 측면에 기운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나마 내가 마음에 들었던 번역본은 글항아리에서 나온 《장자》인데, 기존의 역본과는 다르게 의미 전달을 최대한 신경 쓴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새롭게 《장자》가 번역된다는 소문을 듣고 확인해 보니, 고전 대중화에 큰 획을 그은 홍익출판사의 슬기바다 시리즈의 신간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출판사를 무척 애정 한다. 홍익출판사는 인문학 열풍이 불기 전 1990년대 중반부터 세간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고전들을 발굴하여 출간했고, 이들을 묶어 시리즈화하였는데, 출간된 책들의 대부분을 구해 읽었었다. 당시는 전문가 외에는 고전을 읽지도 않았고 일반인들의 관심도 저조했기에 지속적인 출간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홍익에서 나온 고전들(슬기샘총서) 덕분에 나의 유년 시절은 무척 행복했다. 2000년대 초반, 이지성 작가의 《리딩으로 리드하라》 발간 이후 인문학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꾸준하게 높아지면서, 홍익출판사의 슬기바다(슬기샘총서를 리뉴얼한 시리즈) 시리즈도 덩달아 인기가 높아졌다. 이 시리즈의 장점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쉬운 번역이고, 두 번째는 적절한 가성비다.

 

 고전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가독성이다. 고전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인간의 보편성을 탐구하고 정리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고전을 읽는 이유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습성과 모습을 알고 교훈을 얻으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고전은 당대의 언어와 사유로 표현된 문헌이기에 받아들이는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어려운 고전을 읽을 때마다 나는 알밤을 수확하던 추억을 떠올린다. 알밤은 무척 맛있지만 먹기 위해서는 가시 주머니를 밟아서 깨야 하고 두꺼운 껍질을 까야 한다. 그래야 밤알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고전도 마찬가지다. 인간 보편성의 고찰이라는 알밤이 있지만, 이를 먹기 위해서는 당대에 관념으로 서술된 문체와 언어를 극복해야 한다. 좋은 고전 번역본이란 가시를 제거하고 껍질을 까서 알밤을 독자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먹여주는 책이다. 기존에 나온 홍익의 슬기바다 시리즈 번역본들이 이와 같다. 원전의 중심 내용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가독성을 최대한 고려하여 번역한 책들이 대부분이라 지인들에게 추천도 많이 했었다. 또한 종래의 고전은 가격이 비싼데, 슬기바다 시리즈는 보급판, 한정판 등의 가성비를 고려한 세트 구성으로 몇 번 출시됐으며, 일반판도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다. 이런 장점들 때문에 홍익출판사의 고전들은 '고전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런 슬기바다 시리즈에서 새롭게 출시된 《장자》는 총 세 권인데, 각각 내편, 외편, 잡편으로 나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내편이다. 내편의 핵심 내용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설정한 가치기준으로부터 자유를 추구하며, 자연적인 섭리를 따를 것을 강조한다. 그럼 자연적인 섭리란 무엇인가. 인위와 대변되는 자연적인 섭리는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 내편은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은 하지 않고 에둘러 우화를 통화여 간접적으로 자연의 섭리를 따를 것을 은근하게 권고한다. 도가사상에 의하면 세상이 돌아가고 생물이 살아가는 데에는 절대적인 법칙이 존재하는데, 이를 도(道)라고 표현했다. 《장자》 내편 역시 마찬가지로 인간이 설정한 인위를 극복하고 절대적인 자유를 따르며 살아가는 것을 도(道)에 순응하는 것으로 규정하며, 만물이 지향해야 할 이상적인 태도로 표현한다.

 

 내편은 외편과 잡편에 비해, 우화의 내용이 명확하고 문장의 연결이 매끄럽다. 그리고 문자가 간결한 것으로 봐서 외편과 잡편보다 이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남회근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은 《장자》의 내편은 장주(장자)가 직접 저술했으며, 외편과 잡편은 장주를 계승한 후대의 문인들이 썼다고 주장했다. 읽어본 바 확실히 내편은 외편과 잡편과 비교해 볼 때 그 논리와 논조가 치밀하고 군더더기가 없으며, 내용 역시도 명료하다. 또한 외편과 잡편이 유가 사상에 대해 부분적으로 긍정적인 뉘앙스를 가진다면, 내편은 반대로 유가와 묵가 사상에 대해 베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즉 내편은 외편과 잡편에 비해 주제의식이 명료하고, 타 사상에 대한 베타적인 시각이 강하다. 그렇기에 《장자》에서 가장 중요하며,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분량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를 음미하며 읽느라 예상보다 독서 기간이 훨씬 길어졌다. 슬기바다에서 새롭게 나온 《장자》 내편은 종래에 출간된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번역이 무척 친절했다. 내편의 철학적인 부분을 해설에서 명료하게 설명했고, 문학적인 비유와 해학, 풍자도 맛깔나게 번역했다. 편집에도 무척 공을 들였는데, 원문을 포함하는 것을 넘어서 중요한 한자 어구들을 해설하고 번역이 이어진다. 번역 뒤에는 친절한 해설이 뒤따르는데, 주로 우화에 깃든 철학적인 내용을 최대한 풀어서 설명해 주고 있다. 너무 디테일한 해설은 독자의 사유를 방해한다는 단점이 있는데, 책의 해설은 포인트만 짚어주고 자세한 사유의 폭은 남겨두었으니 이 역시 독자에 대한 배려가 돋보인다. 또한 종래의 번역은 은퇴한 노학자들이 진행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 책은 비교적 젊은 분이 번역하셔서 그런지 기존 역본에서 볼 수 없었던 생동감 있고 신선한 문구가 돋보인다. 아직 내편밖에 읽지 않아서 성급한 일반화를 할 순 없겠지만 《장자》라는 텍스트를 파악하는 데 있어 가장 친절한 역본이 아닐까 싶다. 책은 외편까지 출간됐는데(잡편은 출간예정), 이어서 외편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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