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 - 하 관자
관중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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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선 상권의 리뷰에서도 밝혔듯 《관자》의 사상은 무척 다양하다. 흔히 몇몇 사람들은 《관자》를 두고 《한비자》와 같은 법가사상으로 분류하는데, 이는 잘못된 견해다. 《관자》는 공자를 비롯한 유가의 왕도정치와도 다르고 법가의 패도정치와도 거리가 있다. 흥미롭게도 《관자》에서는 유가가 강조하는 도덕과 예의도 중시하고, 법가가 강조하는 법률 역시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한 백성의 민생 역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민생을 구휼하는 데 있어 '경제정책'을 으뜸으로 손꼽는다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가와 법가의 공통된 맹점은 바로 경제관이다. 두 사상 모두 국가의 운영을 철저하게 정치학, 통치학으로 접근하는데 반해, 《관자》는 경제학적 시각으로 정치를 접근하고 있다. 이 점이야말로 《관자》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관자》에서는 정치를 흥하게 할 조건으로 백성의 욕망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여기서 백성의 욕망이란 바로 의식주를 포함한 경제적인 실익을 뜻한다. 정치 문제를 철저하게 경제적으로 접근하는 시각. 이것은 바로 상인 출신이었던 관중이 제나라를 경제 정책을 통하여 강성한 나라로 만들었던 방법론과 일맥상통하다. 그렇기에 설사 《관자》가 관중의 직접적인 저작은 아니더라도, 이런 부분을 통하여 독자는 《관자》라는 문헌이 관중의 사상을 토대로 정리되었다는 점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겠다.

 

 그럼 어떤 경제정책을 통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점은 상업을 중시한 것이다. 이 당시 대부분의 제자백가 철학서들은 경제정책에 대하여 농업을 강조하였다.(중농주의) 이는 유가와 법가 역시도 마찬가지였는데, 상인 출신인 관중은 상업의 유용성을 일찍부터 깨닫고 있어서 상업을 적극 진흥하는 방향으로 국가의 자원을 융통성 있게 배분하려고 노력했다. 국가는 시장에 개입하여 수요와 공급을 통제하고 시세를 관장하였으며, 돈이 되는 소금과 철을 독점하여 국가의 자금을 충당하려고 하였다.

 

 게다가 《관자》에서는 분업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있어서, 사농공상 4개의 계층의 거주지를 나눠서 분업화, 경쟁 유도를 통한 전문화를 도모하였다. 경기부양을 도모하기 위해 부자들의 소비를 적극 유도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의 용품을 만드는 수공업에 종사하게 하여 실업을 극복했다. 이런 모습은 거친 비교가 되겠지만 미국 케인스의 수정 자본주의 정책과도 유사하다. 또한 대외적으로 문호를 적극 개방하여, 자국의 우수한 물산들을 외국에 유통하는 데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제나라의 시장은 열국의 상인들이 드나드는 국제 시장으로 거듭났다.

 

 이렇듯 제자백가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관자》는 경제에 대한 부분을 무척이나 강조한다. 정치가 중요한 것일까 경제가 중요한 것일까? 단순하게 우열을 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 피부로 와닿는 것은 아무래도 경제일 수밖에 없다. 동양고전을 읽으며 커다란 맹점 중 하나는 바로 경제에 대한 담론이다. 유가와 도가 법가는 모두 정치적인 입장은 뚜렷하게 내세우지만 이에 상응하는 경제에 대한 담론은 결여되어 있다. 이 중 가장 심각한 것이 유가인데, 개인적으로 동양이 서양에게 뒤지게 된 핵심 중 하나가 바로 경제에 대한 무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한 시대 한 무제의 사상 일원화 정책 이후 중원에서는 유가를 숭상했으며, 이런 추세는 동아시아 국가들 전체로 확대되었다. 근대 이후 서구권에서는 애덤 스미스를 필두로 하여 경제학을 발전시켰고, 이는 서구 열강의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정책을 지탱하는데 커다란 근간이 되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경제에 문외한 유가 학문을 존숭하는 입장을 고수하였기에, 서구의 침입을 막지 못하고 식민지로 전락했다. 만약 공자나 맹자의 유학이 아니라 관중의 《관자》를 존숭했더라면, 동양의 경제학도 크게 발전하지 않았을까. 한 가지 또 생각해 볼 점은 유학을 중원의 메인 철학으로 확정 지은 지도자는 전한의 무제인데, 무제 역시도 무조건적으로 '유학만을' 숭상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사회 규범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유학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지, 실제 무제의 통치는 법가적 성격이 강했다. 또한 무제는 《관자》의 실용주의 정책도 참고하여 받아들였는데, 그 일환으로 막대한 정복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소금과 철 등을 국유화하여 국가에서 독점하여 관리하였다. 무제 이후에는 소금과 철에 대한 경제 토론이 심오하게 펼쳐졌는데 이를 정리하여 《염철론》이라는 명작 경제 고전이 탄생했다. 아무튼 유학을 존중한 한 무제도 유가의 철학만을 신봉하지 않고 법가와 《관자》의 경제정책을 참고하고 받아들였다. 문제는 후대로 가면 갈수록 사상의 고착화, 보수화가 심해져서 유학이 아닌 다른 사상들은 무조건 이단으로 치부하고 배척하기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현대는 유학을 으뜸으로 내세웠던 전근대 사회와는 다르다. 자본이 우선이고 중심인 자본주의가 보편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관자》는 오늘날 더 빛을 볼 여지가 많은 고전이다. 비록 2700년이라는 시대적인 거리가 있지만, 이익과 경제라는 측면을 우선하고 중시하는 입장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동양의 최초 경제학서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이 책을 탐독할 가치는 충분하다.

 

※. 《관자 하》 권의 구성은 35장 치미에서 86장 경중 경까지 번역됐다. 나머지 부분은 상권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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