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 - 상 관자
관중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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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 철학의 아버지가 소크라테스라면 동양 철학의 아버지는 공자를 손꼽는 것에 대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상사라는 것이 대개 그렇듯 소크라테스나 공자의 철학도 앞선 시대의 선각자들의 사상이 있었기에 꽃피울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관자》의 저자로 알려진 관중은 공자보다 앞선 시대의 사람이었으며, 그의 사상은 공자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공자는 선대에 활약한 관중에 대해 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질투였고 또 하나는 동경이었다. 공자의 어록집이라고 할 수 있는 《논어》는 공자의 말과 행동을 최대한 찬양하며 기록했는데, 제자들이 그렇게 신경 쓰며 정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관중에 대한 공자의 질투심까지는 가리지 못했다.

 

 공자는 왜 관중을 그토록 질투했으며, 왜 그토록 동경한 것일까. 우선 질투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공자의 철학은 인으로 대표되는 유가 사상으로 형식적인 예를 높이고 위계와 질서를 바로잡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관자》에 나온 관중의 철학은 공자의 그것과 무척 상이하다. 관중은 사상가이기 이전에 정치가였다. 그렇기에 그의 철학은 다분히 실용적이었다. 공자의 철학은 현실주의를 '추구'하였지만, 허례허식과 명분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관중의 철학은 추구를 넘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현실을 대변하는 성격을 가진다. 이렇다 보니 철학적, 사상적, 학술적으로 볼 때에는 공자의 사상은 성공했지만, 현실에서 이를 구현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관중은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으며, 자신이 모신 왕에게 중원의 패자 자리를 선사했다.

 

 따라서 공자는 자신의 철학과는 상반되지만, 현실에서 성공한 정치가 관중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공자는 정치적 야심이 많았기에, 열국을 주유하며 자신의 이상과 철학을 실천하고자 노력했지만 끝내 시대로부터 외면당했다. 그러나 관중은 공자의 방법과는 상반된 방향으로 현실에서 성공했다. 공자에게 있어서 이는 무척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으며, 현실에서 성공한 관중의 모습과 실패한 자신의 모습도 많이 비교하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공자는 관중의 부도덕한 면을 물고 늘어잡아 정신승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관중은 중국 역사에서 최초의 철학가, 경세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관중의 사상과 관념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책이 바로 《관자》라고 전한다. 학계에서는 이 책의 일부분이 관중의 직접적인 저작이라고 규정한다. 역자는 《관자》를 상가(商家 - 상업과 관련된)로 규정하고, 제자백가에 있어서 최초의 경제학자로 칭송한다. 실제로 관중은 제나라를 다스릴 때, 농업보다는 상업을 적극 권장하여 부강을 이뤘다. 이는 농업을 중시하는 유가의 입장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제나라는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하였기에 상업 활동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관중은 부유함이야말로 국력의 가장 큰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예의와 염치도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때에 추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점은 배가 고파도 곧 죽어도 인간답게 인과 예를 따르겠다는 공자의 사상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관자》가 경제학과 관련된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관자》에는 유가, 도가, 음양가, 병가 등등의 여러 제자백가 철학들이 잡탕처럼 섞여 있다. 개인적으로 《관자》는 관중의 직접적인 저작이 아니라, 춘추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관중의 문하나 조국에서 활약한 여러 문인들의 생각들이 섞인 책이라는 주장에 수긍이 간다. 책의 챕터가 잡다하게 섞여있다는 점, 관중은 춘추시대에 활약했는데 전국시대에서 볼 수 있는 문체와 관념들이 보이는 점 등으로 볼 때 후대인이 관중이라는 이름을 빌려 가필한 책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겠다.

 

 그러나 《관자》가 관중의 직접적인 저작이 아니라고 해서 책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예로부터 중국의 지자들은 정치와 관련된 고전을 읽을 때 《관자》를 필독서로 여겼다. 삼국시대의 유비와 제갈량 역시 《관자》, 《한비자》, 《상군서》 등을 무척 애독했으며, 후주 유선에게도 읽을 것을 추천하였다. 관중이 직접적으로 저작을 하진 않았지만, 그의 사상은 이 책 안에 녹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다 보니 중국과 일본에서는 《관자》를 주기적으로 연구하고 애독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조선 이후로 사상이 성리학 유일주의를 추구하여서, 《관자》와 같은 실용 고전을 애독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관자》라는 책이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날 시중에 완역된 《관자》는 총 2개인데, 하나는 지금 리뷰하고 있는 신동준 선생님의 역본이며, 또 하나는 4명의 역자가 공동으로 옮긴 책이다. 두 책 모두 소장하고 있기에 비교해보자면, 주석이나 해설은 확실히 신동준 선생님의 역본이 뛰어나다. 역자는 특히 《한비자》나 《상군서》와 같은 패도와 관련된 제자백가를 중시하는 입장인데, 이는 유가에 치우친 전통적인 학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그렇기에 나는 패도와 관련된 중국 고전을 읽을 때에는 신동준 선생님의 역본을 꼭 챙겨 보는데, 《관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관자》 상권에는 역자의 자세한 해설과 분석이 200페이지나 할애되어 있는데, 이 내용만 읽더라도 《관자》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사상을 파악하는데 무척 도움이 된다. 책은 총 86장으로 나눠졌는데, 상권의 경우 1장 목민에서부터 34장 정언까지 번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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