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록 - 라틴어 원전 완역판 세계기독교고전 8
성 아우구스티누스 지음, 박문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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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디까지 진실할 수 있을까. 나의 삶은 스스로에게 얼마나 솔직하고 떳떳할까. 각박한 현대 사회, 너도 나도 속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시대에서 이런 물음은 어찌 보면 고리타분하고 현실감각이 없는 생각으로 치부될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머릿속 한구석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초중고 학창 시절에 우리는 학교 교육을 통해 바르게 살아가는 방법과 사회생활의 규율을 교육받지만, 머리가 커가면 커갈수록 그런 원칙적인 방법보다는 변칙에 능숙하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타인을 서슴없이 기만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한다. 그런 변칙과 기만을 자행하면서 우리는 '원래 삶이란 그런 것'이라며 자조하고 합리화를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정상적인 심성을 지닌 사람들이라면 내적인 갈등과 스트레스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몇 번 사회물을 먹다가 보면, 마음속에서 울부짖던 양심도 무뎌지기 시작하고, 그렇게 우리는 세월이 흐름과 동시에 풍파에 젖은 스스로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겉으로 볼 때에는 바르게 자라고, 좋은 이미지를 가졌다고 호평하는 분들이 나름 있었지만, 그거야 피상적인 겉모습일 뿐이고, 나 자신이 나를 스스로 들여다봤을 때 나 역시 탐욕과 위선, 그리고 공명심과 허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표리부동한 자신 때문에, 10대와 20대 시절에는 방황을 했다. 마음 수양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세월의 풍파에 젖지 않으려고 그토록 노력했건만, 종국에 가서는 그런 노력을 스스로 배신하는 모습 앞에, 나는 내적으로 스스로를 자학으로 몰아붙였다. 실망, 원망, 비난, 그리고 좌절로 이어지는 내적인 갈등의 연속, 길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계속해서 맴도는 느낌이었다.

 

인간이란 얼마나 숭고한 존재인가. 역사서에 기록된 영웅들의 일대기와 선인들의 삶을 접하면, 같은 인간이지만 위업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를 수양하며 달궈낸 그들의 강인한 멘탈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한편으로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은 세속적인 가치에 휘둘려 오늘도 우리의 욕망을 스스로 자제하지 못해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으니. 나는 왜 역사 속에 위업을 남긴 인물들과 같이 될 수 없는 것일까. 그들의 멘탈은 태생적으로 강한 것인가? 그들과 나는 아예 다른 인간이란 말인가? 그들은 삶의 풍파 속에서 과연 흔들린 적이 없었을까. 매번 마음 수양에서 패배한 나로서는 위인들과 선현들의 진솔한 고백이, 가식 없는 생생한 고백이 너무나도 듣고 싶었다.

 

그때 《고백록》을 만났다. 어느 날 기독교를 믿는 친구에게 '종교가 과연 인간의 내적인 고민으로부터 구원을 내려줄 수 있느냐?'라고 물었더니, 그는 말없이 《고백록》 책을 주면서 한 번 읽어보라고 하더라. 종교가 없는 내 입장에서는 종교적 색채가 물씬 느껴나는 이 고전을 읽기가 망설여졌지만, 그거야 읽고 나서 판단하면 될 문제고, 일단은 읽어보자고 생각하고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마치 초절정으로 더운 날씨에 시원한 이온음료를 삼키는 쾌감을 느꼈다. 그 정도로 이 책은 방황하던 내게 시원함과 통쾌함을 선사했으며, 책을 접한 이후 마음이 흔들릴 때 남몰래 읽던 고전이었다.

 

기독교의 성자로 추앙받는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인생 전반을 《고백록》에 녹아냈다. 성자였던 그가 방황하고, 무절제하고 이단을 배우며, 색욕에 탐하던 어린 시절. 그런 타락의 시절을 진솔하고 호소력 있게 고백하며, 스스로를 통렬하게 반성한다. 그가 자행했던 타락의 기록들을 읽으며, 나는 일말의 안도감을 느꼈다. '마음을 다잡는 것에 있어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성자나 위인들 역시 나와 똑같은 인간들이구나.' 라고. 아우구스티누스가 반성하던 덕목들 위선, 자만, 오만, 정욕, 욕심, 탐욕... 이런 세속적인 덕목들은 나를 포함한 일반인들뿐만이 아니라, 성자라고 불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에도 찾아볼 수 있다. 하긴 비슷한 예로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도 수행을 하면서 색욕과 탐욕을 시험당했다고 한다. 나뿐만 아니라 그들 역시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인간이었다.

 

《고백록》의 후반부는 그런 타락스러운 덕목들로 가득 찬 자신을 회개하고 주님의 은혜를 통해 극복하며 마음의 평화를 얻는 과정으로 구성됐다. 사람마다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주님의 은총에 기대어 열렬한 신앙 활동을 통하여 스스로의 마음을 정화했다. 특정 종교를 믿는 입장은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의 방법이 최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해답을 찾아 마음의 평안을 찾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데 성공한다. 신자가 아닌 일반인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이토록 자신의 내면을 디테일하고 진솔하게 고백할 수 있었다는 점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결점은 가리고, 자신의 장점을 부각하려고 노력하는 동물이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는 대중 출판을 목적으로 한 저서에서 스스로의 결점을 디테일하게 발가벗기듯 고백하고 있으니 이토록 용기 있고 진솔한 저서가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싶다.

 

서두에서 말했듯 요즘 세상은 타인을 넘어 나 자신을 기만하는 시대다. 스스로의 마음을 기만하는 것이 보편화된 시대에서, 이런 내면의 진솔한 고백은 깊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최근 나는 불교와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고전들을 접하고 있는데, 그런 일환에서 라틴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번역본 《고백록》을 다시 읽었다. 20대의 정신적인 방황 앞에서 한 줄기 구원의 빛을 내려주던 《고백록》을 이렇게 다시 읽으니, 그때 전율했던 감정이 생생히 떠올랐다. 세월이 지나도 인간의 진솔한 마음은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고백록》은 특정 종교적인 교리를 담은 책이 아닌 보편적 고전의 반열에 올려야 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내적 갈등을 경험하거나 정신적인 방황을 앓고 있는 지성들에게 이 책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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