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역대 황제 평전 -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는 지도자는 도태된다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
강정만 지음 / 주류성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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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조선 이래로 직간접적으로 중국과 관계를 맺어왔고 그렇기에 중국 대륙의 정치구도와 흐름은 한반도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설명할 때 미국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한반도를 명확히 파악하려면 중원 대륙의 역사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주변의 강대국들의 막대한 영향력.'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 중인데, 이는 어쩌면 지정학적으로 반도에 위치한 우리나라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고 우리의 역사를 배우는 과정에서 중국의 역사에 대한 지식의 필요성을 느꼈고, 그 결과 평생의 독서 숙원 사업 중 하나인 《자치통감》 완독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자치통감》이 어떤 저서인가? 다루는 시기는 전국시대 이래로 송나라 건국 이전까지 무려 1400여 년을 다루고 있으며 방대한 시대를 다루기에 책의 권수도 무려 294권으로 구성됐다. 이는 오늘날 500페이지 기준 번역본으로 31권에 해당하는 분량이니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는 저서다. 사실 분량이야 많더라도 번역만 되어 있다면 인내심을 가지고 읽으면 그만이다. 그렇기에 나는 방대한 분량이 부담이 되긴 했지만 사실 걱정되진 않았다. 내가 인식한 《자치통감》의 문제점은 바로 송나라 이후부터 내용이 끊어진 점이다. 다행히 《자치통감》을 완역한 권중달 교수는 최근 《자치통감》의 후속작인 《속자치통감》 완역 작업에 나섰는데, 이 작업이 완료되면 《자치통감》에서 다루지 않았던 송, 요, 금, 원나라의 역사까지도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또 남아있다. 원나라 이후의 역사인 명나라와 청나라의 역사서는 대체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다행히 명나라와 청나라의 정사인 《명사》와 《청사》는 《조선왕조실록》이 번역되어 무료로 공개된 사이트에서 열람할 수 있게 해놨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글로 번역된 것이 아니라 원문으로만 되어 있어서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렇다 보니 나는 명나라 역사와 청나라 역사를 정리한 책을 찾았고, 그런 과정에서 《명나라 역대 황제 평전》과 이번에 발간된 《청나라 역대 황제 평전》 세트를 알게 됐다. 책은 내가 생각하던 조건을 만족시켰는데, 정사인 《명사》와 《청사》를 기준으로 그 시대를 다룬 각종 사서들을 참고하여 정리했다고 한다. 앞으로 중국의 다른 왕조를 정리한 시리즈가 계속 출간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명나라와 청나라 역사 파트가 절실하게 필요했는데 이를 만족하고 있으니 나에게 있어 안성맞춤의 책이다. 명나라와 청나라 시기에 우리나라는 조선왕조의 집권기였다. 알다시피 조선은 대한민국이 들어서기 전에 있었던 마지막 봉건왕조 국가이며, 그렇기에 우리 사회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줬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통적인 가치관과 풍습 예법 등등은 거의 대부분 조선왕조의 유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조선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조선을 알면 알수록 동시대에 존재했던 중원 대륙의 명나라와 청나라의 존재가 생각 외로 조선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최근 인문학, 고전 열풍이 불면서 동양 철학, 중국 철학과 역사에 대한 지식의 수요가 예전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러한 흐름에서 아쉬운 점은 유행하고 있는 동양학은 대체로 춘추전국시대에 국한됐다는 점이다. 제자백가 철학도 춘추 전국시대의 산물이며, 역사서로는 《사기》가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 역시 춘추전국시대를 다루고 있다. 이렇게 특정 시대만 집중적으로 조망한다면, 중국 역사나 사상의 거대한 흐름을 파악하기가 어려운데, 이는 바꿔 말하면 중국과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은 우리의 역사도 파편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 되지 않겠는가. 특히 조선은 명나라를 아버지처럼 사대하였고, 명이 멸망하고도 명나라의 이념과 가치관을 고수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일까 명나라의 멸망 과정을 보면 조선의 멸망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청나라는 병자전쟁과 정묘전쟁(매번 내가 역사 서평에서 되풀이하며 밝혔는데 나는 왜란과 호란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임진년과 병자년에 일어난 사건은 단순히 오랑캐가 난리를 피운 것을 넘어 국가 대 국가 간에 전면적으로 싸운 '전쟁'이라고 생각한다.)을 통해 우리와 악연을 맺은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청나라의 건국 세력인 여진족은 조선의 개국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이전 시대에도 발해나 고구려의 유민에 포함되어 우리 민족과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요즘 도서 출판 시장에는 '조선'을 테마로 한 주제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조선왕조실록》을 재해석하여 나온 책이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주장했듯, 조선을 똑바로 알기 위해서는 명과 청을 알아야 한다. 근데 작금의 출판계는 조선을 강조하면서 명과 청나라의 역사에는 관심이 없다. 그나마 인문학의 열풍이 불어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만을 쫓고 있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명나라 역대 황제 평전》과 《청나라 역대 황제 평전》이 발간됐으니, 편파적인 인문학 시장에서 이 두 책의 가치는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최근에 발간된 《청나라 역대 황제 평전》을 집중적으로 다루려고 한다. 책은 청나라의 황제들을 중심으로 청나라의 정치사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읽어본 바, 청나라의 봉건 황제들은 역대 다른 왕조들의 지도자들에 비해 굉장히 양호한 편이었다. 황제들은 자기 계발에 최선을 다했고, 능력과 자질 면에서도 평균 이하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청나라가 명을 몰아내고 중원에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실용주의였다. 명나라 말기에 황제들은 정사에 뜻을 잃고, 사치와 마약, 주지육림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반면 신흥 세력인 청나라는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제도와 군사조직을 정비하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몰락한 명을 멸망하고 중원의 새 주인으로 자리 잡았다. 중원에 자리를 잡은 청나라는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시기를 거치면서 최절정기를 꽃피운다. 영토를 더욱 확장하여 지금의 중국 국경선 지대를 확정한 것도 이 시기에 달성한 위업이다. 그러나 건륭제 이후에는 나라가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하는데, 그런 과정에서도 청의 후반부의 지도자들은 쇠락하는 나라를 되살리기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나라는 왜 멸망한 것일까?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중국의 정치제도, 막강한 황제를 중심으로 하여 운영되는 제도의 기원은 기원전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가 구축하였다. 물론 시황제의 진나라는 엄격한 법치 때문에 2대를 넘기지 않고 멸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나라의 시스템은 역대 중국 왕조의 골격을 형성했다. 진의 뒤를 이은 한나라 그리고 그 이후의 여러 나라들은 하나같이 진나라의 황제 중심적 정치 시스템을 발전시켜나갔고 계승했다. 한편 중국의 의식과 사상은 전통적으로 유학을 기초로 하였는데, 이는 한 고조와 한 무제가 유학을 국학으로 숭상하면서부터 시작됐고 이후 역대 왕조들은 유학을 으뜸으로 여기며 이를 토대로 지적 활동을 전개했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보면 중국의 제도와 의식은 기원전의 제도와 철학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셈인데, 이는 청나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반면 서양에서는 기원전 로마에서 민의를 바탕으로 한 공화정 체제를 수립했다. 이후 로마는 특정 개인이 권력을 독점하는 황제 중심의 제도로 변질됐고, 로마 이후 중세가 열리자 서양에서도 영주를 바탕으로 한 봉건주의 사회에 돌입하게 됐다. 당시 중세에서는 동양과 마찬가지로 특정 개인이나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고 세습하는 제도를 따르고 있었으며, 예수로부터 비롯한 종교관이 모든 사상을 규제하고 있었다. 근대사회에 접어들면서 서구에서는 권력을 특정 개인이 독점하는 왕정제를 폐지하기 시작했고, 정치의 전면에 피지배층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시민들은 자신들의 인권을 드높이기 시작했고, 이를 토대로 민주체제를 확립하는데 성공한다. 한편 사상적으로도 많은 혁신이 일어났는데, 기존의 종교 중심의 사상을 타파하고 현실을 바탕으로 한 학술 체계를 성립하는데 성공한다. 이러한 대변혁을 바탕으로 서구 열강은 과열된 유럽 대륙을 벗어나 식민지를 만들기 위해 눈을 돌렸는데, 그런 서구 세력권에 동양 사회는 그야말로 먹기 좋은 떡에 불과했다.

 

즉 청나라는 이런 시대적인 흐름을 읽지 못하고, 기존 전통의 가치관 - 봉건주의적 중국 중심의 천하관인 중화사상- 을 고수하였다. 이렇다 보니 기술적으로, 제도적으로, 사상적으로도 앞선 서양의 우월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멸망에 이른다. 약소한 부락 사회에서 시작한 여진족이 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개국할 수 있었던 원인에는 실용주의와 넓은 세계관에 있었다. 청을 개국한 청 태조와 청 태종은 여진족의 주적인 명나라 중원에만 집중하지 않고, 인근 국가인 조선과 몽골 그리고 여러 이민족의 부족들도 포용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원나라의 몰락을 참고하여 출신을 따져 차별적으로 대우하기보다, 능력이 있으면 출신과 상관없이 등용하는 포용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넓은 시야가 있었기에 여진족은 열세를 극복하고 국제적인 제국인 청을 개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청나라도 결국 시대가 지나면서 보수화되고 한족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 중화사상에 빠져 중국 중심의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 격변하는 시대의 상황을 모르고, 그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중화사상 이데올로기 안에서 개혁을 외쳤으니, 황제들이 최선을 다해 노력한들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서세동점이 일어난 근본 원인에는 유학에서 비롯한 '중화사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서구 열강이 개혁을 단행할 무렵 동양에서는 여전히 중화사상이 뿌리 깊게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유학은 동양을 대표할 수 있는 전통 사상이고, 뛰어난 덕목도 많다. 그러나 후대로 가면 갈수록 실질을 경시하고 명분을 중요하는 가치관 때문에 현실성과는 동떨어진 사상으로 변질됐다. 문제는 이런 폐해를 가진 중화사상이 《공산당 선언》에서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라고 표현하듯, 유령처럼 동양 사회를 2000년 이래로 계속해서 배회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중화사상 앞에서 청나라의 장점인 실용주의는 점점 가려지기 시작했고, 청의 황제들 역시 중화사상에 예속되기에 이르는데, 이는 결국 중원의 영토는 여진족이 점령했지만, 정신적으로는 한족이 중심이 되어 만든 중화사상에 굴종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비극은 청나라뿐만 아니라 우리 조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령처럼 배회하는 '변질된 중화사상'을 맹목적으로 고수하다 조선 역시 멸망했으니까 말이다. 이렇듯 하나의 사상, 그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관념의 힘은 생각보다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다. 미시적으로,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는 별것 아니고 와닿지 않지만, 거시적인 관점으로 해석해볼 때 사상과 관념은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청나라의 쇠락 조짐은 언제부터 이뤄졌을까?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대목은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로 이어지는 청나라의 황금기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의 군주들의 행적과 치적을 보면 '한계가 많은 독재 위주의 권력 시스템이 이토록 투명하고 뛰어나게 구현될 수 있구나'라고 할 정도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청의 몰락은 청의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건륭제 시기에서부터 시작됐다. 건륭제는 집권기 초반에는 선대의 치적을 이어받아 정사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정책의 결과도 좋았다. 그러나 말기로 갈수록 축적된 잉여 생산물을 바탕으로 하여 사치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특정 대신을 총애하였다. 이런 황제의 흔들리는 모습은 지방 행정의 부패로 이어졌는데, 그렇기에 건륭제 집권 후반기에는 겉으로는 태평성대였지만 내부적으로는 부정부패가 싹트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부정부패는 후대의 정권에사회 혼란과 민란으로 구체화되었고, 이는 서양의 침략과 함께 청을 망하게 하는 주요한 원인이었다.

 

동양의 철학 도가 사상에 의하면 가장 성할 때에 쇠락한 기운이 싹트니, 이를 경계할 것을 강조하는데, 이러한 이치는 역대 왕조에서 빈번하게 발견된다. 전한 시대의 최전성기를 구현했다는 한 무제 집권기는 한나라를 대표하는 시대지만 한편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쇠락을 예견할 수 있는 싹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뿐일까 당나라 중흥의 군주로 불리는 당 현종 시대도 마찬가지다. 현종 집권기 초반은 당나라의 국력을 한층 더 드높이는데 일조하여 중흥의 시기로 손꼽힌다. 그러나 이런 성세도 잠시뿐 집권 말기에는 양귀비를 비롯한 주색과 미신에 빠져 정사를 포기하였고, 이로 인해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 당은 쇠락의 길로 빠지게 된다. 청나라 역시 이런 사례와 마찬가지였다. 이를 토대로 우리는 성공 가도를 달릴 때에 교만하지 말고, 더욱더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는 점을 배울 수 있다.

 

아무튼 책의 교훈을 한 마디로 집약해보자면 '어떤 일을 시작할 때에는 시대적인 흐름과 시류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라고 할 수 있다. 청나라가 만약 이런 교훈을 알았더라면, 변하는 시대 흐름에 맞춰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토대로 개혁에 성공했다면, 어쩌면 오늘날에도 중원의 주인은 청나라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교훈은 개인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어떤 사업을 하거나 어떤 분야에 일을 할 때에는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속한 업종이 어떤 전망이 있는지, 어떤 트렌드가 대세인지, 앞으로 유행하게 될 아이템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성공을 위해 노력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핵심은 노력의 방향에 있다. 잘못된 방향으로 노력한다면 그것은 노력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빠질 수 있으니, 이러한 노력의 방향을 알기 위해서는 시대적인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거시적인 시야가 너무나도 중요하다. 더더군다나 오늘날 사회는 과거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변화가 빠른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기에 이런 거시적인 흐름을 읽는 시각은 과거보다 오늘날 더욱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묵직한 청나라 역사가 최종적으로 나에게 준 교훈은 위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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