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에 가장 가까운 탈무드
마이클 카츠.거숀 슈워츠 지음, 주원규 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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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이모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꼽으라면 《탈무드》다. 흔히 알려져 있듯 《탈무드》는 스토리텔링 우화 중심의 구성을 가졌기에 나이와 상관없이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당시 내가 읽던 책은 마빈 토케이어가 편집하여 정리한 책인데, 당시에 유행했던 마빈 토케이어의 편집본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탈무드》를 대표하는 책으로 꼽는다. 국내의 유대인 관련 저서, 탈무드 관련 저서는 직간접적으로 마빈 토케이어의 편집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케이어의 편집본은 우화 중심의 책이라  매우 흥미로웠다.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되면서 나는 어린 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탈무드》의 완역본을 읽고 싶었다. 그러나 검색 이후 방대한 양의 분량을 보고서는, '언젠가는' 국내에서 완역이 이뤄지길 기도하면서, 《탈무드》에 대한 관심을 마음 한편으로 넣어뒀다.

다시 《탈무드》와 만나게 된 건 최근이다. 바로 리뷰하는 책인 《원전에 가장 가까운 탈무드》를 통해서인데, 이 책을 통해서, 나는 풍문으로 들었던 《탈무드》에 대한 지식을 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었으며, 나아가 유대인들의 문화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알 수 있었다. 책은 마빈 토케이어의 《탈무드》와 전혀 다른 구성이었다. 토케이어의 책이 흥미 위주의 우화로 구성됐다면, 이 책은 비록 축약본이긴 하지만 원전의 형식과 내용에 따라서 내용을 전개하고 있었다. 책의 앞부분에는 50여 쪽을 할애하여, 《탈무드》라는 고전에 대한 예비지식(어떻게 학습해야 하는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유대인들에게 《탈무드》란 어떤 책인지, 《탈무드》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놀랐던 점은 우리는 흔히 《탈무드》를 유대인의 고전과 경전으로 생각하는데, 실제 《탈무드》는 경전과 같은 성격을 가지지 않는다. 《탈무드》는 시대를 거듭할수록 진화하며, 새로운 시각, 새로운 해석으로 권위 있게 내려오는 해석들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고전과 경전의 특징은 고정된 성격을 가진다는 점이다. 고전에 기록된 글은 성현이 한 말이기에 감히 의심을 품어서는 안되며, 후학들은 그저 성현의 말을 최대한 수용하는 쪽으로 텍스트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있어 《탈무드》는 달랐다. 물론 《탈무드》에도 권위 있는 주류의 시각이 존재하긴 했지만, 세대를 거듭하며 생기는 주석은 이런 주류의 시각을 곱게 받아들이진 않는다. 그렇기에 《탈무드》는 고정적이기보다 개방되고 열린 텍스트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로 이어져온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위대한 사상과 경전은 거창한 무엇이나 형이상학적인 부분에서 탐구를 시작한다. 그러나 《탈무드》는 거창한 것에서 논의를 진행하지 않고, 일상의 관습이나 풍습에서 시작한다. 요즘 흔히 말하는 소확행, 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한 철학인데, 이런 점도 나에게 참 와닿았다. 철학자들의 지적 사유나 고전의 사상을 따라가다 보면 물론 흥미 있고 재미있지만, 한편으로는 현실감이 동떨어졌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는데, 《탈무드》의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소확행을 추구했다고 해서 《탈무드》가 쉽게 배울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탈무드》의 내용은 매우 함축적이며, 수많은 지시대명사가 난무하고, 문체는 은유와 비유가 난무한다. 거기에 우리와 익숙하지 않은 배경에서 태어난 문헌이라는 점도 수월한 접근을 방해한다.

《탈무드》의 탄생은 성서로부터 시작됐다. 성서의 의미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미드라시가 생겨났고, 이러한 미드라시를 분류별로 정리한 것이 미슈나다. 미슈나는 축약적이고 함축적이라 이를 다시 구체화하면서 게마라가 등장했는데, 《탈무드》는 미슈나와 게마라를 통칭하는 것이다. 즉 《탈무드》는 성서의 의미를 현실에서 구체화하기 위해 태어났으며, 그렇기에 다른 철학이나 고전보다 더욱 현실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탈무드》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바로 율법, 정법 등등의 규범적인 부분으로 대표되는 할라카와 구전되는 이야기,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는 아가다로 나뉜다. 국내에 대세를 이루고 있던 토케이어 《탈무드》는 아가다에만 집중했다. 그렇기에 토케이어의 《탈무드》는 결국 반쪽짜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토케이어의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으며, 토케이어의 자의적인 견해로 편집한 우화가 많다고 한다. 토케이어는 미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가 그곳에서 《탈무드》를 알리려고 노력했다는데, 그런 배경 때문인지 그의 저서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토케이어의 《탈무드》는 이야기가 중심으로 전개된다. 마치 유대판 《이솝 우화》를 보는 느낌이다. 물론 《탈무드》의 구성에서 우화는 커다란 의미를 가지지만 우화 자체가 《탈무드》의 전부는 아니다. 《원전에 가장 가까운 탈무드》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어떻게 《탈무드》라는 텍스트를 공부해야 하는가.'라는 점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왜 이 우화가 등장한 것일까. 이 우화의 궁극적인 교훈은 무엇인가? 과연 이 우화는 오늘날에도 유효한가? 유효하지 않다면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가? 등등... 즉 《탈무드》 공부의 핵심은 '생각'에 있음을 강조한다. 우화 텍스트를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함축된 우화를 두고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는지를 강조한 셈이다.

역사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핍박받은 유대인들은 현실에서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나라를 되찾고 전 세계의 부를 거머쥐었다. 우리는 단차원적으로 유대인을 분석하여, 그들의 창의성을 쫓으려고 노력하지만, 이런 가벼운 태도는 견강부회라고 생각한다. 유대인의 힘은 그들의 정신에서 나온다. 유대인의 정신. 그것은 곧 그들의 지적인 정수라 할 수 있는 《탈무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유대인을 좀 더 깊이 있게 알기 위해서는 《탈무드》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유대인의 교육법이나 유대인의 부를 이야기하는 서적은 많지만 유대인의 정신을 깊이 있게 탐구한 저작은 드물다. 심지어 출판계를 지배하고 있는 《탈무드》 역시도 올바르지 않는 책이 대부분이니, 이런 환경에서 유대인의 본질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이 책의 발간은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책은 강조한다. 《탈무드》에 기록된 텍스트보다 사고하고 생각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유대인들은 이런 사고력과 지적 전통을 유구한 시간을 거쳐 계승했고, 그랬기에 오늘날의 민족적 위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자식을 위해 유대인 교육법을 고민하는 부모라면 유대인 교육을 어설프게 논설하는 책을 읽기보다 이 책을 자녀와 함께 읽고 토론하는 것이 더 유용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책은 미국에서 출간됐는데 두 명의 랍비가 공동으로 집필한 《탈무드》 안내서다. 원저의 제목은 'SWIMMING IN THE SEA OF TALMUD'인데, 유대인들은 흔히 《탈무드》를 바다에 비유한다고 한다. 그만큼 《탈무드》는 깊고 풍성하며, 때로는 위험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책은 방대한 《탈무드》를 원전의 체계에 맞게, 그리고 랍비들이 교육법을 고스란히 수용하여 내용을 전개한다. 책은 《탈무드》의 원전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원전의 내용과 흡사한 현대의 사례를 제시하여 과거의 규범과 오늘날의 현실을 비교하여 독자의 사고를 유도한다. 물론 이런 현대의 사례는 전적으로 저자들의 주관적 관점이므로, 이를 넘어 나만의 사례, 내가 생각한 사례와 함께 엮어 생각한다면 더욱 폭넓은 독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장점으로 인해 이 책은 모범적인 《탈무드》 입문서로, 서구권에서 널리 읽힌다고 한다.

500페이지 가량의 책에 유대인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탈무드》를 모두 담을 수는 없다. 그러나 책을 통해 《탈무드》의 전체적인 윤곽, 그리고 《탈무드》가 가지고 있는 느낌 등등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책을 단숨에 읽어나갔다. 그러나 속독을 하면서 깨달았다. 이 책은 속독으로 읽는 책이 아니라는 것을. 천천히 시간의 여유를 두고, 음미하며, 사색하며 읽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앞으로 돌아가 천천히 책을 음미하며 랍비들의 방식대로 다시 읽을 생각이다.

국내에 《탈무드》가 하루빨리 완역이 됐으면 좋겠다. 과거 나는 《리비우스 로마사》, 《대학연의》, 《자치통감》, 《탈무드》 4권의 고전이 완역됐으면 좋겠다는 글을 썼는데, 이 중 《탈무드》 외에는 모두 완역됐거나 완역이 확정됐다. 물론 《탈무드》는 방대한 양이라서 이를 한국어로 완역하려면 굉장한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늙어서 죽기 전에는 완역본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마 볼 수 있기를 막연하게 희망해본다. 아무튼 그전까지 완역의 아쉬움을 이 책으로 달래야겠다. 또한 이 책의 발간으로 인해, 오랜 시간 동안 간직했던 때묻은 토케이어의 《탈무드》를 마음 놓고 버릴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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