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관율의 줌아웃 - 암울하고 위대했던 2012~2017
천관율 지음 / 미지북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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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책장을 넘기고 있으니 그녀가 묻는다. '내가 볼 때마다 너는 과거와 관련되거나, 과거를 다룬 책만을 보는 것 같아.' 그녀의 말에 나를 돌아본다. 물론 개인적 취향으로 인해 인문고전을 좋아하긴 하지만, 나름 책을 읽는 데 있어서 밸런스를 신경 쓴 것 같은데, 그런 내 노력이 그녀에게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애써 변명하고자 하기보다 그냥 웃음으로 넘겼다. 내가 남겼던 서평들을 쭉 살펴봤다. 확실히 역사, 인문학, 철학, 고전에 관련된 책이 압도적이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여기서 한 가지 변명을 하자면 나는 역사나 철학을 그저 지적 유희를 위해 읽는 것은 아니다. 물론 과거에 대한 호기심도 있겠지만, 그것을 넘어서 오늘날과 미래에도 통용될 수 있는 지혜를 얻고자 읽는다. 대부분의 일반인이 고전을 읽는 이유도 나와 비슷할 것이다. 나는 역사나 과거에 관심을 가지는 것 이상으로 현실 문제를 민감하게 인지한다. 그렇기에 쇼 프로나 버라이어티는 보지 않더라도 주요 뉴스는 꼬박꼬박 챙겨서 본다. 정치권에 대한 관심도 많다. 단지 티를 내지 않을 뿐이지.

현실 문제는 민감하다. 나름 많은 것을 읽고 배웠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지식으로 현실의 문제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아는 것과 아는 것을 활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렇기에 조심스럽다. 그래서 현실에 관한 기사나 뉴스를 접하면서 최대한 감정적으로, 무비판적으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다고 내가 적극적으로 내 주관을 억제하려고 노력하진 않았다. 오히려 남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는 사회적 이슈나 정치적 문제 등등을 스스로의 관점으로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가치중립을 지키는 것이나 회피하는 태도로는 내가 가진 주권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늘 어떠한 현상을 관찰할 때 줌인의 관점을 고수했다. 무엇이든 직접 파는 쪽이었고, 그 안에서 관찰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생생하게 이해하고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탐구하려는 대상 안에서 탐구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부제에 나와있듯 암울하고 위대했던 2012 ~ 2017년의 시기를 줌인이 아닌 줌아웃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직접 들어가서 몰입해서 보기보다, 멀어지는 시각으로 시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방법이 물아일체라면 저자의 방법은 서정적인 관조라고 할 수 있겠다. 나의 방법이 나무를 앞에서 겪는 것이라면 저자의 방법은 숲을 관조하는 법이라 할 수 있다.

2012년에서 2017년 사이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보수 정권은 유례가 없는 타락을 보여줬고, 지도자는 무능했다. 국정은 농락당했다. 노무현의 죽음을 시작으로 진보 역시도 좌충우돌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안철수라는 새로운 정치 프레임이 등장했다. 배가 침몰했고, 메르스 소동으로 시끄러웠다. 참다못한 국민들은 광장으로 뛰어나와 정부를 응징했다. 젊은 세대의 일부는 극우주의인 일베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고, 남녀 감정의 골은 역대급으로 높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으며, 임기중인 문재인 정부는 핵심 공약인 '사회적 공정'의 실현을 두고 어려움을 겪고 있다. 책의 핵심은 보수와 진보, 즉 정치권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것 외에도 오늘날 만연하고 있는 굵직한 사회적 이슈를 놓치지 않고 있다. 

줌아웃이라고 해서 현상의 개괄과 표면만을 다루고 있진 않았다. 전체적인 시각은 사건과 현상을 관조하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반대로 핵심 부분이나 강조할 만한 부분에서는 심도 있는 줌인의 시각으로 현상을 해석한다. 말 많고 탈 많은 작금의 시대, 우리의 현대사를 저자는 융통성 있게 조망하고 있었다.

책의 내용은 당위적인 결론, 그리고 통속적인 결론도 있긴 했지만, 신선한 해석도 많았다. 저자의 해석이 타자와 비교하여 통속적이고 당위적인 해석이라 하더라도, 그 통속적인 생각으로 해석하는 저자의 사유 과정에서 나는 내가 놓친 부분이나 알지 못하는 부분들을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같은 생각, 비슷한 생각을 하더라도 누군가는 그러한 결론에 이르는 데, 비약적이고 통념적인 부분에 의존하여 쉽게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저자는 비슷한 생각과 관념에 도달하면서도 그러한 사유의 흐름을 꼼꼼하게 분석하여 책에 제시했다. 이런 저자의 글에서 나 역시 통념이나 감정에 의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사회 현상 대한 해석을 꼼꼼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책을 읽은 지는 꽤 됐지만, 선뜻 서평이 쓰여 지진 않았다. 지나왔던 아픈 일들, 그리고 분노했던 일들을 다시 끄집어내서 관조하는 데에는 필요 이상의 감정 소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끝으로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숙제가 남아있다. 올바르지 않은 정부를 혁명으로 응징했지만, 여기에 멈춰 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많은 문제점이 남아있다. 정치적으로는 '올바른 정부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숙제가 남았으며 사회적으로는 극단적인 커뮤니티에 대한 문제, 남녀 성별에 대한 극단적인 갈등, 이민자 문제, 노동, 정규직, 실업 문제, 양극화 등등이 남아있다. 2012년에서 2017년 사이에 많은 일들과 격변을 겪었고, 커다란 성과를 거뒀지만, 인류가 사회를 형성하기 시작한 이래로 어느 시대가 그렇듯, 유토피아적인 평화로운 시대가 도래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2018년 그리고 그 이후의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에 '작금의 시대적인 문제와 숙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우리는 지나왔던 길을 줌아웃한 친절한 사진기자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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