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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소풍 가네
임인숙 지음 / 짓다(출판하우스) / 2025년 10월
평점 :
♣ 얼마 남지 않은 이야기
절안마을을 두 번째 방문한 날 큰주홍부전나비를 발견했다. 처음 만난 나비였다. 고향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비였다. 어느 곳에 자리했느냐에 따라 공간은 특별한 존재들을 키운다. 나비뿐이 아니다. 사람도 키우고, 말도 키우고, 문화도 키운다. 그리고 그 존재들은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는다. 언어도 풍습도 그런 과정을 겪는다.
『자전거 소풍 가네』 속 이야기들은 10년쯤 지나면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이다. 이후에는 박물관에서나 발견될 것이다. 인류 역사 내내 무수한 세대가 이야기와 말을 품고 사라졌으니 그대로 두는 것이 순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문학은 과거다. 과거, 현재, 미래 모두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다고 믿겠지만, 현재는 단어 하나를 쓰는 그 순간에 이미 지나가고 미래에 관한 이야기는 과거의 것을 조합한 것일 뿐이다. 문학 작품 속 모든 것은 과거의 유산이다. 그런데 어떻게 과거를 쓰지 않을 수 있을까. 누구의 과거를, 어떤 과거를, 어떻게 쓸 것인가가 선택지로 있을 뿐이다.
『자전거 소풍 가네』는 생명의 이야기다. 공간들은 하나하나의 생명체다. 그 안에서 만들어진 것들도 모두 하나하나의 생명체다. 물질적 생명과 비물질적 생명으로 겨우 구분할 수 있지만, 이해를 위해 허용될 뿐이다.
절안마을을 두 번째 방문했을 때, 붉은머리오목눈이 둥지를 훔쳐보았다. 네 개의 푸른색 오목눈이 알 옆에 유독 커다란 푸른색 알 하나가 보였다. 뻐꾸기 알이었다. ‘탁란’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 해도 한쪽은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슬픈 운명을 품은 둥지였다. 삶이 스민 모든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운명의 모습이 그렇지 않을까.
그리고 그날, 꽃을 정리하고 계신 정읍댁을 뵈었다. 잔잔한 기품을 지닌 분이셨다. 장작을 메고 산길을 오르셨던 일화가 단정한 얼굴에서 흘러나왔다. 지난했던 시간을 기품으로 다독이지 않고서는 가질 수 없는 얼굴이었다.
다른 분들이라고 다를까. 이야기에 등장하는 분들마다 최선을 다해 사신 표정을 지니고 계실 것이다. 임인숙 작가의 『자전거 소풍 가네』는 그런 얼굴들을 사랑의 마음으로 가만히 들여다본 이야기다. 그런 마음이 아니었다면 읽는 내내 가슴속에 내려앉은 물기 짙은 아지랑이를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이야기를 들려주신 임인숙 작가님께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