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흑역사 - 왜 금융은 우리의 경제와 삶을 망치는 악당이 되었나
니컬러스 섁슨 지음, 김진원 옮김 / 부키 / 2021년 9월
평점 :
절판


책은, 길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만약 어떤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할 때, 한 종류는 그 세계에서 성공하는 법을 보여주고, 다른 하나는 그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좀 더 근접한 이해를 위하여 ‘자기계발서’의 세계를 예로 들어본다면,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들은 성공의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런데 드물게 어떤 책들은 자기계발의 출발과 그 목적에 집중한다. 두 종류의 책은 같은 세계에 속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의 지향점은 권력을 두고 싸우는 이복형제처럼 다르다.

 

『부의 흑역사』 는 경제·금융 장르에 속하는 책이지만, 두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돈을 굴려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금융의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돈을 누가 어떻게 벌고 있는가애 대해 말해주는 책이다.

 

우리는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모르고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높은 장벽 안에 갇힌 죄수처럼. 그러나 그것은 누군가가 만든 상황에 무력하게 끌려 다니는 것일 수 있다. 상황을 안다고 해서 끌려 다니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힘이 대단히 강력할 때는 상황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피하기 어렵고 도망치기도 어렵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힘이라도 그것이 작동하는 원리를 모두가 알고, 고치기 위한 의지들이 모이게 된다면 세상은 바뀔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아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부의 흑역사』가 주는 것이 바로 ‘먼저 아는 것’에 해당하는 지식이다.

 

 

금융은 필요악이다. 그런데 악惡이 어느 정도인가는 알아야 한다. 악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가 어떤 악에 물들어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악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던 ‘스탠더드 오일’을 비롯한 독점기업들을 해체하기 위한 셔먼 반트러스트법이 1890년에 제정되었다. 저자는 그 주인공인 존 셔먼 의원의 입을 빌려 통제되지 않는 금융권력을 경계할 것을 주문한다.

 

이 법이 이름을 따온 존 셔면 상원의원은 이렇게 선언했다. “황제에 굴복하고 싶지 않으면 시장의 절대권력에 무릎을 꿇으면 안 됩니다.” (140쪽.)

 

모든 내용이 눈여겨볼만한 내용이었지만, 신자유주의와 '경쟁력'의 관계에 대한 부분은 새기며 읽어야 한다. 저자는 『부의 흑역사』에서 ‘경쟁력’의 신화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경쟁력’은 바로 지금 이시대의 가장 강력한 화두다. 그 ‘경쟁력’이 누구의 이익을 위하여, 어떤 분위기를 연출하며 탄생했는가를 니컬러스 섁슨은 경제사를 상세히 설명하며 알려주고 있다.

 

거대한 탈세의 고리이자, 치외법권 지역으로 존재하는 ‘조세도피처’의 뒤에 영국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읽으면 전율이 몰려올 것이다.

 

고약한 구린내가 풍길 때마다 영국 공무원은 언론에 떠들었다. “보십시오, 여러분. 이런 곳은 우리와 크게 동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요.” 하지만 무능력을 주장하는 이 말은 틀리다. 바로 여왕폐하가 이 영국 해외령의 총독을 임명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해외령에서 집행하는 법은 전부 런던으로 보내 승인을 받았고 지금도 받는다. 게다가 영국에게는 언제든 이 법을 철회할 전권이 있다. 거의 휘두르지 않지만. (121쪽.)

 

현대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거의 모든 금융 범죄와 왜곡된 현상들을 『부의 흑역사』는 탄탄이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떤 마수에 걸려들어 살고 있는지를 깨닫는 일은 결코 편안할 수 없다. 모른 척하고 살아가고 싶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알아야 한다. 우리가 경제학 교과서에서 배운 ‘보이지 않는 손’은 너무 순진한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저는 이 책을 제가 만들어가고 있는 <나무그림자 서재 비문학 명작> 목록에 넣었습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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