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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더 레터 - 편지에 관한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
사이먼 가필드 지음, 김영선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편지에 대한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란 부제에 끌려서 선택한 책이다. 개인적인 삶을 돌아보면 편지를 많이 쓰지는 않았다. 오히려 적게 쓴 편에 속할 것이다.
이메일이나 문자가 편지의 자리를 차지했다. 종이 우편으로 받는 대부분의 것들은 고지서나 광고안내문이 대부분이다. 덕분에 아주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구시대의 전달 방식이 되어버렸다. 편지가 갖고 있던 이전의 이미지 때문에 『투 더 레터』란 책을 선택했다.
편지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영화들이 기억에 있다. 우연하게도 전쟁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한 영화는 이렇게 기억된다. 학자가 될 전도유망한 독일 청년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징집이 되어 전장에 나간다. 그는 전쟁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는 사랑하는 연인에게서 편지를 받고, 그 편지를 읽기 위해 본대에서 처진다. 편지를 읽고 있는 그를 미군 척후병이 발견한다. 주위에 아무도 없이 홀로 편지를 읽고 있는 그를 미군이 저격한다. 독일 청년은 비가 와서 질척해진 땅으로 고꾸라지고, 편지는 그의 손에서 떨어져 빗물에 젖어 간다.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전쟁의 비극성을 말하려는 영화였을 것이다. 영화를 본 것은 30년 가까이 전이고, 당연히 제목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영화를 볼 때마다 정보를 적어 두었던 수첩을 언젠가 불태운 덕분이다.
또 다른 영화는 같은 부대에 소속된 두 미군 청년이 주인공이다. 한 친구는 고향에 그를 기다리는 연인이 있었는데 공부가 짧은 친구였다. 그는 늘 고향으로 보내는 편지를 또 다른 친구의 도움을 받아 적었다. 불행히도 그는 전사하여 고향에 가지 못했고, 그 소식을 도움을 주던 친구가 갖고 연인이 기다리는 친구의 고향으로 갔다. 어느 날 둘이 대화를 나누던 중에 여자는 자신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들이 죽은 애인이 아니라, 소식을 전해주러 온 친구에게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역시 제목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편지가 사라지면서 이야기의 시대가 끝났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이야기는 있다고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물 위에 쓰는 이야기들처럼 너무 빠르고 깊게 새겨지지 않는다.
『투 더 레터』의 분량은 상당하다. 600페이지에 달한다. 그만큼 다양한 편지들이 수록되어 있다. 편지의 기록은 개인적인 것에서 출발하지만, 편지가 쓰인 당시의 상황을 파악하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책에 실린 내용 중 ‘베수비오 화산’ 폭발에 대한 정황을 담은 편지가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편지가 쓰인 시대의 우편체계를 엿볼 수도 있었고, 편지 검열의 역사에 대한 것도 읽을 수 있었다. 문학 전공자들에게는 편지에 쓰인 문체들을 통해 당시의 화법과 작법을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벼운 내용을 기대하는 대중들에게는 600페이지를 읽어나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수 있다. 특정의 관심사를 통해 엮어간 책이지만, 그 창을 통해서 보이는 면면들이 다양해서 집중도를 갖기 어려울 수도 있다. 편지라는 방식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삶의 면면들을 엿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