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아깝잖아요 - 나의 베란다 정원 일기
야마자키 나오코라 지음, 정인영 옮김 / 샘터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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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작가인 저자는 처음부터 식물들과 함께 동거했던 것은 아닙니다. 식물을 하나도 키우지 않던 그녀가 베란다 정원을 시작한 것은 30살 친구들과의 여행에서 다 죽어가는 시들시들한 드래콘프루트를 사오게 되면서 부터 시작됩니다. 식물가게도 아닌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시들 시들한 화분을 사는 그녀를 의아하게 생각하는 친구들에게 작가는 "그냥 사고싶었어"라고 대답합니다. 당시 작가가 즐겨보던 만화에 드래곤프루트가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하는데 그냥 사고 싶었다고 합니다. 왜 그럴때 있지 않나요? 그냥 사고 싶을 때.

싹 트는 과정을 관찰하는 것은 무척 즐겁다. 한 생명의 시작을 보면 두근거림과 함께 큰 기쁨을 느낀다. 사람들은 씨앗을 두고 아직 살아 있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씨앗도 하나의 생명체로 인정해야 하는지 학문적인 견해는 잘 모르겠지만, 싹이 트고 나서야 비로소 생이 시작되는 것 같긴 하다. (p. 117-118)​

그렇게 시작한 식물과의 동거가 하나 둘씩 들어나 전셋집을 얻을 때 안의 시설보다도 풍경이 좋은지, 햇빛이 잘 드는지, 화물을 잘 키울만한 조건이 되는지가 그녀의 중요한 선택기준이 됩니다. 이 책은 소설가인 작가가 베란다 정원에서 식물을 키우면서 사는 일상의 이야기 입니다. 그래서 책의 부제도 "나의 베란다 정원 일기"이죠. 그렇다고 독자들에게 무조건 식물을 키워야 한다, 키워야 좋다고 강요하는 책도 아닙니다. 그냥 자신의 일상과 생각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식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뿌리를 뻗고 줄기를 둥글게 올렸다가 직선으로 일어나며 쌍떡잎을 피운다. 인간으로 치자면 먼저 손으로 땅을 짚고 다리를 폈다가 허리를 일으키며 일어나는 느낌이랄까. 흙 속에서 반들반들하고 작은 초록 동그라미를 발견하면 마치 행운이라도 찾아낸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빨리 초록 동그라미를 보고 싶어서 열두 시가 넘은 한밤중에도 손전등을 들고 한 바퀴 둘러보러 나간다. (p.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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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꼼꼼히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적인 마음을 가지고 읽을 책이 아니라, 아침 10시 햇살이 드는 의자에서 창문 밖, 옆의 화분들을 보면서 향기롭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 지는 책입니다. 더불어서 일본 작가 특유의 유머들도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

언젠가는 단독주택을 사서 정원에 아보카도 같은 나무도 심고 밭도 일구는 삶을 꿈꾸지만, 이미 저금한 돈도 바닥났다. 지금은 원세를 내면서 '빌린 경치'를 즐기며 "저 경치는 다 내 거야"라고 중얼거리는 게 마음이 편하고 좋다. 여럿이 같이 봐도 좋고 각자 나름대로 즐길 수 있으니 다행이다. 다른 사람의 경치를 빼앗아야 한다면 상당한 고통이 따랐을지도 모르니까. (p. 16-17)

저자는 돈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집이 아닌 남의 집에 월세를 내면서 삽니다. 집이 다소 노후되었지만, 창밖의 기가 막힌 풍경이 좋아 선택한 집에서 저자는 '빌린 경치'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빌린 경치를 즐기면서도 "저 경치는 다 내거다"라고 중얼거린다고 합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매우 재밌다고 생각했습니다. 카페에 가던, 공원에 가던, 산에 오르던 그 장소는 내 소유는 아니지만, 내가 지금 내 눈으로 보고 있는 경치는 바로 내 것이죠. 월급을 받아도 통장 바닥을 보이는 것이 순식간이고, 내 소유의 집은 언제 생기나 허무감이 들 때 이 주문을 외쳐봐야 겠습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건 다 내거야."

힘들 때는 잎을 떨구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거다. 인간에게도 괴로운 시기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절대 죽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다독여보는 건 어떨까. 언젠가 다시 따뜼한 볕이 들고 신선한 바람이 다정하게 찾아올테니,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손에 쥐었던 욕심을 내려놓고 조용히 지내면 된다. (p. 95-96)​


인간은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면서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자신의 리듬만으로 살아가던 흐름이 흐트러지는 쾌감. 매일 보는 경치가 나의 '타이밍'과는 상관없이 바뀌어간다. 내가 세상에서 그다지 중요한 인물이 아니라는 안도감. 그 안도감이 나를 구원한다. 내가 열심히 일하건 하지 않건 세상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가벼움. 아무리 훌륭하고 대단한 일을 해내도 지구는 그저 계속 회전할뿐이다. (p. 218)​

누구의 인생에든 그저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때가 있다. 그런 시기에는 몸과 마음을 평소처럼 유지하기가 힘들다. 그럴 때는 겨울잠을 자면서 이 시기가 지나가기를 믿어보자. '괜찮아, 괜찮아. 지금은 가만히 있어도 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가만히 있기만 해도 언젠가 다시 생활할 수 있는 때가 와.' (p. 96-97)​

먹고 남은 아보카도 씨앗을 심어서 아보카도 열매를 보고 파뿌리를 심어서 직접 길러 된장국에 넣어 먹고, 레몬 나무 등 여러 나무들과 함께 하며 자신만의 베란다 정원을 키웠던 저자도, 출산과 육아 및 일상생활의 다양한 변화들을 경험하면서 책의 마무리에서 이전보다는 많은 식물을 기르지 못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최소한의 식물들만 남게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죠. 보통 자신의 베란다 정원과 식물과의 동거 생활을 이야기 할 때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했다고 거창하게 마무리 하는 경우도 많을 텐데 오히려 저자는 줄어든 식물 라이프까지 밝힙니다. 그 부분이 저는 아주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나는 지구의 회전을 느끼고 싶다. 나 자신의 덧없음을 느끼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정원을 만들고 강가를 산책한다. 어쩌면 육아 역시 그 연장인지도 모른다. 내 타이밍과 상관없이 아이가 태어나고, 내 리듬과는 다른 리듬으로 성장해서 제멋대로 내 음악을 흐트러뜨린다. 그런 불협화음 속에서 오히려 나는 편안함을 느낀다. 나 혼자 연주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음악이 넘쳐나고 있으니 다양한 음악에 섞여들면 된다.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정원도, 강물도, 아이도 각자의 흐름으로 계속 변한다. (p. 218-219)



어릴 때는 솎음질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부모님이 제초 작업을 할 때면 "잡초를 왜 뽑는 거야? 생명은 다 소중하잖아"라고 질문을 해대는 통에 부모님을 꽤나 곤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니 그런 의문도 옅어졌다. 너무 자란 뒤에는 힘이 더 드니 조금 자랐을 때 뽑아야 한다. 소중하게 키운 꽃과 채소를 우선순위로 두면 제멋대로 커져 장소만 차지하는 풀은 점점 배제된다. 가슴아프지만 잘라내야 한다.

솎음질은 불합리하고 잔혹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식물 세계에도, 동물 세계에도, 인간 세계에도 존재한다. 이 잔혹한 세계에 맞서 새로운 가치관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 모색하는 것 역시 작가의 일인지도 모른다. (p. 129) ​

저자는 식물들을 키우면서 자신도 모르게 강해진 것은 아닐까 혼자 생각해봅니다. 저또한 이유없이 외롭거나 지치고 힘들 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신만의 세계인 흙 속에서 열심히 살려고 생명의 에너지를 내뿜는 화분 하나를 바라보는 일이 나도 모르게 큰 힘이 되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컴퓨터 앞에서 삶에서, 일에서, 사람으로부터 지치고 힘들 때 친하지도 않았던 숲이 생각나고 그럴 때 도로의 가로수 밑의 흙만 가만히 밡아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았던 때가 있습니다.

두 달 정도 지나 올리브 나무를 다시 베란다에 내놓으니 죽은 듯 보였던 가지에서 초록색 잎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랐다. 최소한의 에너지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잎을 떨군 것이 틀림없었다. 잎을 유지하려면 아무래도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가지만 남기면 최소한의 힘으로 버티는 데만 집중하고 앞날을 대비할 수 있다. 나무는 수난의 시기라고 여겨 겨울잠에 들었다. 수척해진 모습이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햇볕을 느끼고 다시 삶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채면 바로 눈을 뜨고 잎을 틔운다. 빛과 열, 물과 질소, 인산만 있으면 나무는 다시 생활할 수 있다. (p. 95)​

라면 한 그릇을 비우니 다시 기운이 났다. 맛있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암담했던 나의 미래도 괜찮게 느껴졌다. 배가 고파서 우울해졌던 것이었을까. 어쨌든 앞으로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화초를 돌보고, 밭을 일구고, 산책하면서 살아가야지 별 수 있나. (p. 197-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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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때로 갑자기 식물이, 흙이 가만히 위로가 될까 혼자 그 이유를 추측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온갖 소리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게 직장 상사가 되었던, 가족이 되었던, 다른 소음과 공해이던 내 마음과 원함과는 대부분 맞지 않을 힘든 소리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그런 소리들로 지쳤을 때 아무 소리 없이 움직이지도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식물이 묘한 위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아무소리도 없고 아무 움직임도 없는 그들이 때로 가장 큰 생명의 에너지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씨앗과 포자, 잎과 줄기에서 끊임없는 움직임을 보이며 생명의 에너지를 내뿜습니다.

그리고 식물이 본래 가진 힘을 응원하고 스스로 성장시키는 수밖에 없다. 우리 '인생 밭'도 자생의 힘을 믿어야 하는 것처럼. (p. 155)​

나팔꽃처럼 기르기 쉬운 식물은 싹도 빨리 트고 문제없이 잘 자라지만, 애초에 껍질을 잘 밀어내지 못하는 싹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도와줄까' 싶어 손으로 껍질을 벗겨주면 바로 시들어버린다. 과보호는 금물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스스로 자신의 힘에 맡겨야 한다. (p. 139)​

오늘도 그런 식물들과 자연을 보며서 힘들 얻어야겠습니다. 요즘 상황이 상황인지라, 자유로운 생활과 움직임이 제한되고 있는 이 시기에 가장 가까이에서 생명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대상은 식물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식물들에게 에너지를 얻기 위해 물을 주러 가야겠습니다.

잘라도 잘라도 또 자라는 드래곤프루트와, 세상에 남은 미련 하나 없다는 듯 시들었다가도 매해 다시 싹 트는 새싹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품고 내뱉은 글이나 공기 같은 것들은 어떤 형태로든 다음 세대에 남게 된다고. 우리는 결국 누군가에게 계속 자신의 그림자를 뻗으면서 살게 된다.

그렇게 내 그림자가 닿는 모든 곳이 따뜻해지길 바란다. (p. 213)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https://blog.naver.com/sak0815/221900578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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