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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20.5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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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에도 어김없이 월간 샘터가 저의 공간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샘터의 몸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스며 들어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어느새 내 마음이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으로 채워집니다.

코로나로 인해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요즘, 각자의 모습대로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묘한 매력을 선사합니다.

어두움은 빛이 없음을 말한다. 하지만 희망이, 가능성이, 사랑이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난 2월부터 시작된 바이러스 위기와 그보다 훨씬 더 전부터 현실이 되어버린 경제적 불안정도 그렇지 않을까? 우리에게 자주 찾아오는 개인적 역경은 잠시 빛을 사라지게 할 뿐이다. 역경과 고난은 우리 곁의 소중한 것들을 잠시 볼 수 없게 할 수는 있지만 그것들을 파괴하지는 못한다. (p. 15 어두워지면 사라지는 그림자 글 속에서)

이번 달 샘터를 읽으면서 제 눈에 유난히 들어왔던 것은 각 글을 쓴 작가들의 자기 소개였습니다. 전문 시인, 작가들의 글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연과 기고 글에도 글쓴이에 대한 소개가 담겨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글쓴이를 소개하는 글은 편집자가 썼을 수도 있고 글쓴이가 썼을 수도 있으나, 편집자가 다듬었더라도 기본적으로 글쓴이가 스스로 자신을 소개하는 글에 기반을 두었을 것입니다. 특히 작가가 아닌 일반 독자들의 글에 실린 자기 소개는 분명 글쓴이가 적었을 텐데, 몇자 되지 않은 작은 박스 같은 공간에 각자를 표현하는 글을 쓰기 위해 그들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세상에 자신이 어떻게 소개되고 싶은지 고심하였을 겁니다. 자신을 소개하는 공간에는 사회적 경력과 자신의 관심 분야를 위주로 소개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앞으로 살아가는 모습들을 함께 담아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부분에서 각 개인들이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에 그동안 살아온 자신들을 삶의 정수를 담아낸 글들이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작은 종이책이지만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우리 삶의 이웃들이 함께 하고 있어서 왠지 외롭지 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번 달은 가정의 날을 맞이해서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면!' 특집이 실렸습니다. 어떤 육아 전문가가 나와서 좋은 육아에 대해 가르침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부모이기도 하고 자식이기도 한 샘터 독자들의 다양한 사연으로 꾸려진 것이 마음이 들었습니다.

'좋은 부부가 되는 것이 좋은 부모의 출발점이구나.' (p. 27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첫 단추 글 중에서)

"이젠 저를 위해 욕심을 부려요. 누군가의 우위에 서려는 게 아니라 저의 즐거움이 일의 기준이 됐어요.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를 행복하게 만드는 건강한 욕심들을 충족시키면서 제 자신을 오래오래 빛내고 싶어요." (p. 21 전효성씨 인터뷰 중에서)

로마시대의 문인이 소 플리니우스의 '누군가의 소유가 된 물건은 그것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자극했던 매력을 계속 유지하지 못한다'는 말처럼 일단 내 소유가 된 옷은 점점 매력을 잃어가고 최신 아이템에 조금씩 밀리다가 이내 관심 밖 대상이 되고 만다. (p. 31 처음 느낌대로 입고 싶은 헛옷 글 중에서)

제가 요즘 샘터에서 제일 좋아하는 코너는 창간 50주년을 맞아 지난 샘터에 소개되었던 독자 투고 글을 다시 만나는 코너입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의 옛날에 실린 글들을 읽어보자면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지금의 저보다 훨씬 어린 상태에서 사연을 보낸 독자가 지금은 중년을 훌쩍 넘기셨겠지요. 현대 사회와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닮은 듯 다른 듯 그 시대 삶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코너가 저는 참 재밌습니다.


이번호에서 특히 좋았던 것은 2020년 샘터 당선작들이 수록된 부분이었습니다. 시조, 생활수기, 동화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모든 글들이 좋았지만 평소 그림책을 좋아하던 저는 동화 부분이 제일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림책으로도 꼭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다음 호에도 다양한 이웃들의 삶의 이야기를 빨리 만나보고 싶네요.


"절대 잊지 마세요. 진짜 그림자는 이 세상에 빛을 데려오는 겁니다. 우리 그림자가 움직여야 밝은 빛이 따라온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세요." (p. 62 2020 샘터 동화 당선작 '그림자 어둠 사용법' 중에서)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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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아깝잖아요 - 나의 베란다 정원 일기
야마자키 나오코라 지음, 정인영 옮김 / 샘터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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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작가인 저자는 처음부터 식물들과 함께 동거했던 것은 아닙니다. 식물을 하나도 키우지 않던 그녀가 베란다 정원을 시작한 것은 30살 친구들과의 여행에서 다 죽어가는 시들시들한 드래콘프루트를 사오게 되면서 부터 시작됩니다. 식물가게도 아닌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시들 시들한 화분을 사는 그녀를 의아하게 생각하는 친구들에게 작가는 "그냥 사고싶었어"라고 대답합니다. 당시 작가가 즐겨보던 만화에 드래곤프루트가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하는데 그냥 사고 싶었다고 합니다. 왜 그럴때 있지 않나요? 그냥 사고 싶을 때.

싹 트는 과정을 관찰하는 것은 무척 즐겁다. 한 생명의 시작을 보면 두근거림과 함께 큰 기쁨을 느낀다. 사람들은 씨앗을 두고 아직 살아 있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씨앗도 하나의 생명체로 인정해야 하는지 학문적인 견해는 잘 모르겠지만, 싹이 트고 나서야 비로소 생이 시작되는 것 같긴 하다. (p. 117-118)​

그렇게 시작한 식물과의 동거가 하나 둘씩 들어나 전셋집을 얻을 때 안의 시설보다도 풍경이 좋은지, 햇빛이 잘 드는지, 화물을 잘 키울만한 조건이 되는지가 그녀의 중요한 선택기준이 됩니다. 이 책은 소설가인 작가가 베란다 정원에서 식물을 키우면서 사는 일상의 이야기 입니다. 그래서 책의 부제도 "나의 베란다 정원 일기"이죠. 그렇다고 독자들에게 무조건 식물을 키워야 한다, 키워야 좋다고 강요하는 책도 아닙니다. 그냥 자신의 일상과 생각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식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뿌리를 뻗고 줄기를 둥글게 올렸다가 직선으로 일어나며 쌍떡잎을 피운다. 인간으로 치자면 먼저 손으로 땅을 짚고 다리를 폈다가 허리를 일으키며 일어나는 느낌이랄까. 흙 속에서 반들반들하고 작은 초록 동그라미를 발견하면 마치 행운이라도 찾아낸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빨리 초록 동그라미를 보고 싶어서 열두 시가 넘은 한밤중에도 손전등을 들고 한 바퀴 둘러보러 나간다. (p. 136)​

​​

뭔가 꼼꼼히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적인 마음을 가지고 읽을 책이 아니라, 아침 10시 햇살이 드는 의자에서 창문 밖, 옆의 화분들을 보면서 향기롭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 지는 책입니다. 더불어서 일본 작가 특유의 유머들도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

언젠가는 단독주택을 사서 정원에 아보카도 같은 나무도 심고 밭도 일구는 삶을 꿈꾸지만, 이미 저금한 돈도 바닥났다. 지금은 원세를 내면서 '빌린 경치'를 즐기며 "저 경치는 다 내 거야"라고 중얼거리는 게 마음이 편하고 좋다. 여럿이 같이 봐도 좋고 각자 나름대로 즐길 수 있으니 다행이다. 다른 사람의 경치를 빼앗아야 한다면 상당한 고통이 따랐을지도 모르니까. (p. 16-17)

저자는 돈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집이 아닌 남의 집에 월세를 내면서 삽니다. 집이 다소 노후되었지만, 창밖의 기가 막힌 풍경이 좋아 선택한 집에서 저자는 '빌린 경치'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빌린 경치를 즐기면서도 "저 경치는 다 내거다"라고 중얼거린다고 합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매우 재밌다고 생각했습니다. 카페에 가던, 공원에 가던, 산에 오르던 그 장소는 내 소유는 아니지만, 내가 지금 내 눈으로 보고 있는 경치는 바로 내 것이죠. 월급을 받아도 통장 바닥을 보이는 것이 순식간이고, 내 소유의 집은 언제 생기나 허무감이 들 때 이 주문을 외쳐봐야 겠습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건 다 내거야."

힘들 때는 잎을 떨구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거다. 인간에게도 괴로운 시기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절대 죽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다독여보는 건 어떨까. 언젠가 다시 따뜼한 볕이 들고 신선한 바람이 다정하게 찾아올테니,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손에 쥐었던 욕심을 내려놓고 조용히 지내면 된다. (p. 95-96)​


인간은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면서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자신의 리듬만으로 살아가던 흐름이 흐트러지는 쾌감. 매일 보는 경치가 나의 '타이밍'과는 상관없이 바뀌어간다. 내가 세상에서 그다지 중요한 인물이 아니라는 안도감. 그 안도감이 나를 구원한다. 내가 열심히 일하건 하지 않건 세상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가벼움. 아무리 훌륭하고 대단한 일을 해내도 지구는 그저 계속 회전할뿐이다. (p. 218)​

누구의 인생에든 그저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때가 있다. 그런 시기에는 몸과 마음을 평소처럼 유지하기가 힘들다. 그럴 때는 겨울잠을 자면서 이 시기가 지나가기를 믿어보자. '괜찮아, 괜찮아. 지금은 가만히 있어도 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가만히 있기만 해도 언젠가 다시 생활할 수 있는 때가 와.' (p. 96-97)​

먹고 남은 아보카도 씨앗을 심어서 아보카도 열매를 보고 파뿌리를 심어서 직접 길러 된장국에 넣어 먹고, 레몬 나무 등 여러 나무들과 함께 하며 자신만의 베란다 정원을 키웠던 저자도, 출산과 육아 및 일상생활의 다양한 변화들을 경험하면서 책의 마무리에서 이전보다는 많은 식물을 기르지 못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최소한의 식물들만 남게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죠. 보통 자신의 베란다 정원과 식물과의 동거 생활을 이야기 할 때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했다고 거창하게 마무리 하는 경우도 많을 텐데 오히려 저자는 줄어든 식물 라이프까지 밝힙니다. 그 부분이 저는 아주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나는 지구의 회전을 느끼고 싶다. 나 자신의 덧없음을 느끼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정원을 만들고 강가를 산책한다. 어쩌면 육아 역시 그 연장인지도 모른다. 내 타이밍과 상관없이 아이가 태어나고, 내 리듬과는 다른 리듬으로 성장해서 제멋대로 내 음악을 흐트러뜨린다. 그런 불협화음 속에서 오히려 나는 편안함을 느낀다. 나 혼자 연주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음악이 넘쳐나고 있으니 다양한 음악에 섞여들면 된다.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정원도, 강물도, 아이도 각자의 흐름으로 계속 변한다. (p. 218-219)



어릴 때는 솎음질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부모님이 제초 작업을 할 때면 "잡초를 왜 뽑는 거야? 생명은 다 소중하잖아"라고 질문을 해대는 통에 부모님을 꽤나 곤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니 그런 의문도 옅어졌다. 너무 자란 뒤에는 힘이 더 드니 조금 자랐을 때 뽑아야 한다. 소중하게 키운 꽃과 채소를 우선순위로 두면 제멋대로 커져 장소만 차지하는 풀은 점점 배제된다. 가슴아프지만 잘라내야 한다.

솎음질은 불합리하고 잔혹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식물 세계에도, 동물 세계에도, 인간 세계에도 존재한다. 이 잔혹한 세계에 맞서 새로운 가치관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 모색하는 것 역시 작가의 일인지도 모른다. (p. 129) ​

저자는 식물들을 키우면서 자신도 모르게 강해진 것은 아닐까 혼자 생각해봅니다. 저또한 이유없이 외롭거나 지치고 힘들 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신만의 세계인 흙 속에서 열심히 살려고 생명의 에너지를 내뿜는 화분 하나를 바라보는 일이 나도 모르게 큰 힘이 되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컴퓨터 앞에서 삶에서, 일에서, 사람으로부터 지치고 힘들 때 친하지도 않았던 숲이 생각나고 그럴 때 도로의 가로수 밑의 흙만 가만히 밡아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았던 때가 있습니다.

두 달 정도 지나 올리브 나무를 다시 베란다에 내놓으니 죽은 듯 보였던 가지에서 초록색 잎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랐다. 최소한의 에너지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잎을 떨군 것이 틀림없었다. 잎을 유지하려면 아무래도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가지만 남기면 최소한의 힘으로 버티는 데만 집중하고 앞날을 대비할 수 있다. 나무는 수난의 시기라고 여겨 겨울잠에 들었다. 수척해진 모습이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햇볕을 느끼고 다시 삶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채면 바로 눈을 뜨고 잎을 틔운다. 빛과 열, 물과 질소, 인산만 있으면 나무는 다시 생활할 수 있다. (p. 95)​

라면 한 그릇을 비우니 다시 기운이 났다. 맛있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암담했던 나의 미래도 괜찮게 느껴졌다. 배가 고파서 우울해졌던 것이었을까. 어쨌든 앞으로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화초를 돌보고, 밭을 일구고, 산책하면서 살아가야지 별 수 있나. (p. 197-198)

​​

왜 때로 갑자기 식물이, 흙이 가만히 위로가 될까 혼자 그 이유를 추측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온갖 소리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게 직장 상사가 되었던, 가족이 되었던, 다른 소음과 공해이던 내 마음과 원함과는 대부분 맞지 않을 힘든 소리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그런 소리들로 지쳤을 때 아무 소리 없이 움직이지도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식물이 묘한 위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아무소리도 없고 아무 움직임도 없는 그들이 때로 가장 큰 생명의 에너지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씨앗과 포자, 잎과 줄기에서 끊임없는 움직임을 보이며 생명의 에너지를 내뿜습니다.

그리고 식물이 본래 가진 힘을 응원하고 스스로 성장시키는 수밖에 없다. 우리 '인생 밭'도 자생의 힘을 믿어야 하는 것처럼. (p. 155)​

나팔꽃처럼 기르기 쉬운 식물은 싹도 빨리 트고 문제없이 잘 자라지만, 애초에 껍질을 잘 밀어내지 못하는 싹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도와줄까' 싶어 손으로 껍질을 벗겨주면 바로 시들어버린다. 과보호는 금물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스스로 자신의 힘에 맡겨야 한다. (p. 139)​

오늘도 그런 식물들과 자연을 보며서 힘들 얻어야겠습니다. 요즘 상황이 상황인지라, 자유로운 생활과 움직임이 제한되고 있는 이 시기에 가장 가까이에서 생명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대상은 식물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식물들에게 에너지를 얻기 위해 물을 주러 가야겠습니다.

잘라도 잘라도 또 자라는 드래곤프루트와, 세상에 남은 미련 하나 없다는 듯 시들었다가도 매해 다시 싹 트는 새싹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품고 내뱉은 글이나 공기 같은 것들은 어떤 형태로든 다음 세대에 남게 된다고. 우리는 결국 누군가에게 계속 자신의 그림자를 뻗으면서 살게 된다.

그렇게 내 그림자가 닿는 모든 곳이 따뜻해지길 바란다. (p. 213)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https://blog.naver.com/sak0815/221900578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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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20.4 - 창간50주년 기념호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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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작지만 강하고, 얇지만 따뜻한 이 책이 우리 주변에 항상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병원의 대기실에, 미용실의 쇼파에, 은행 등. 그런데 휘황찬란한 패션들과 멋진 색감들에 둘러쌓인 다른 잡지들에 저는 더 눈이 갔었죠. 그래서 한번도 진지하게 이 작은 친구를 제대로 들춰본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그랬던 제가 이 작지만 강한 친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올해 샘터사에서 모집하는 물방울 서평단에 당첨이 되고, 서평단 자격으로 매달 이 작은 친구와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되면서 부터였죠. 그리고 놀랐던 것은 이 친구가 벌써 50주년이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은 인생 선배인거죠. 그 50년의 세월 동안 이 안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삶이 녹아내렸을 것입니다.

샘터의 한 발행인이 언젠가 뒷표지에 이렇게 샘터를 소개했다고 합니다.

"희망을 쉽게 잊는 딱딱한 콘크리트 세상을 천천히 허물고, 물길을 내어 새싹이 돋아날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샘터의 목적"

그 취지에 맞게 샘터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납니다. 그 중 제가 특히 눈길이 갔던 것은 현재 사회적으로 성공을 하고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 같은 것으로만 채워진 것이 아니라, 물론 최근 이슈가 되는 부분들을 다루고 인터뷰도 다루고 있지만 그보다 더 주가 된다고 느끼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고,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게 될 수록 삶이 바빠서 또는 여러 이유로 관계의 폭이 더 좁아지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특히 지금같이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한 상황에는 더 그렇겠죠. 그런데 작은 샘터 안에는 결코 작지 않은 이 세상의 다양하고 자신만의 멋진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그들의 결코 특별하지 않은 듯 특별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음속에 참으로 여러 생각들이 지나갑니다.


각자 있는 곳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 이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나와 너가 샘터에 있는 느낌입니다. 이 작은 책을 통해 공감과 연결의 물꼬가 트입니다. 특히 창간 50주년을 맞아 올해의 샘터에는 그동안의 시간들 속에서 샘터와의 추억을 독자들이 들려줍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오래 전 일이나 기억 나지 않는 시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납니다.


샘터에는 화려한 장신구, 멋진 음식 레시피, 멋들어진 사진들은 많이 없지만 오늘도 이 세상을 채워 살아가고 있는 나와 너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위로가 됩니다. 오늘 위로가 필요하다면, 빵하나 사먹을 돈으로 샘터를 데려오는 것이 어떨까요? 이것으로 마음이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https://blog.naver.com/sak0815/221870586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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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도제희 지음 / 샘터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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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아도, 같은 일상의 에피소드를 겪어도 유난히 재미있고 흥미있게 말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런 친구가 있을 때 때로는 직접 그것을 보기 보다 그 친구의 입을 빌어서 그 이야기를 듣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은 맛깔나고 찰지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구가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 혹은 막장 드라마를 보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저자의 글이 참 맛깔나고 재밌으며 찰지다는 느낌을 받았죠.

"이봐, 수도사 나리, 어리석음이란 이 지상에 너무나 필요한 것이야. 세상은 어리석음 위에 세워져 있고 그것이 없다면 세상에는 아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지 몰라.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 알고 있는 거라고!"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중에서)

눈이 번쩍 뜨였다. 어리석음이란 게 세상에 그렇게 필요한거야? 정말? 나는 아주 큰 위안을 얻었다. 애써 짚어 볼 필요도 없이 내 인생은 어리석음으로 점철돼 있으니 말이다. (p. 50)​

고전 문학을 잘 알지 못하고 많이 읽어 보지 못한 저에게 저자의 글은 도스토옙스키와 저를 이어주는 다리와도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한번도 읽어보지 않았더군요. 이름도 어려운 그의 작품, 그리고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어려운 이름. 막연히 도스토옙스키는 굉장히 어려운 내용의 책들을 썼겠구나 생각했는데 웬걸요. 제가 살고 있는 지금과는 훨씬 옛시대를 살아온 그의 작품에 나타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 스토리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 흥미를 갖게 만드는데에는 저자의 찰진 글이 한몫했던 것 같습니다.

도스토엡스키를 읽는 동안, 나는 고전이야말로 막장 드라마의 기원이었구나 싶었다. 어디 도스토엡스키뿐일까. 철학도 문학도 공부하지 않았지만 알 수 있다. 삶의 많은 순간이 막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막장에 우리가 그토록 궁금해하는 인생의 진짜 얼굴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품격 있고, 아름답고, 따뜻한 순간은 마구 달리는 막장 열차가 드물게 정차하는 기차역 같은 것일 뿐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천하의 도스토엡스키 소설이 이렇게까지 콩가루가 흩날릴 순 없지 않을까.

그래서, 위로가 되었다. 아, 예로부터 인간이란 이렇게 비루하고 남루해서 삶의 의미를 잃기도 했겠구나. 이렇게 가족 친구, 동료와 불화하고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르면서 자괴했구나. 누군가를 죽일 듯이 증오하고 욕망에 눈이 멀어 도의를 저버리기도 했구나. 인간이란 존재가 원체 이렇게 생겨 먹은 걸, 나인들 어쩌겠어. 최선을 다해도 누구나 형편없는 상황에 처할 떄가 있는 건 삶의 이치인지도 몰라(p. 281-282)

나 역시 열차 안의 로고진과 예빤친 장군처럼 <백치>를 읽기 시작하고 얼마 안 돼 백치미 '뿜뿜'하는 이 공작에게 빠져들었다. 도스토엡스키 소설 주인공들은 대체로 '지하 생활자' 같은 존재들이기에 단숨에 매력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그런 점에서 공작은 대단히 새로운 존재였다.

아니, 이 남자 뭐야? 어쩌자고 이렇게 솔직하지? 이 정도 형편이라면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도 모자라지 않을까? 그래서 자신의 허약함과 궁색함을 감추기 위해 적당히 거짓말을 일삼거나 허세를 부려야 원만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 의문은 더욱 깊어졌다.

무언가 숨기거나 꾸밀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정신상태로 사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이럴 수 있다는 건 열등감을 느끼지도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는다는 뜻일 텐데, 상대적 박탈감으로 자괴감에 빠지지 않는 내적 힘을 어떻게 갖추게 되었을까? (p. 167-168)

저자는 오랫 동안 일하던 회사를 때려치고 재취업에 성공하여 새로운 직장에 들어갔는데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드럽고 치사한 그곳에서 상사와 맞짱을 뜨고 직장을 박차고 나왔다고 합니다. 호기롭게 나오는 과정에서 책상에 남겨진 자신의 물품들은 그대로였죠. 그런 상황들 속에서 온갖 생각이 다 들었을 저자는 과외 알바를 하며 읽었던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을 펼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멋짐 반 허세 반 읽으며 다녔지만 내용이 제대로 와닿지 않았던 20대와 달리 최악의 상황 속에서 그의 소설안에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마주하게 되고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해고 통보를 받은 것이다. 이때부터였다. 가정교사의 태도가 달라진다

"이 일의 책임은 바로 장군님 자신에게 있습니다. 어째서 장군님이 저를 대신해서 남작님께 책임지겠다고 나섰습니까? 제가 장군님 집안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도데체 무슨 말씀입니까? 저는 단지 장군님 집에 있는 선생에 불과합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당신의 자식도 아니고 당신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장군님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저 또한 법률적으로 권한을 갖는 한 인간이고 나이도 스물다섯 살입니다. 대학의 박사 후보생이고 귀족입니다. 그리고 장군님과는 완전히 남남입니다." (미성년 중에서)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뭐야, 왜 이렇게 멋있는데. 왜냐하면 나라면 내 언행이 고용주의 체면과 인간관계에 흠을 냈다니, 용서를 구하느라 정신을 잃고 해고 통보라는 중요한 문제를 뒤늦게 인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p. 209-210)

애석하게도 가정교사에게는 먹히질 않는다. 왜였을까? 그들이, 그 귀족들이 결코 눙치고 넘어갈 수 없는 무엇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삶의 주도권 문제였다.

"남작은 나를 마치 장군의 하인 취급하면서 나에 대한 불만을 장군에게 호소했는데, 바로 그것 때문에 첫째, 내가 일자리를 잃게 되었고 둘째, 내가 마치 자기 한 몸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리고 같이 얘기할 가치도 없는 사람처럼 업신여김을 당했다는 요지였다." (노름꾼 중에서)

설득에 실패할 듯하자 프랑스인은 사탕을 발라 가며 말한다. ... 그러자 가정교사가 빽 소리를 지른다. "무슨 말씀입니까, 나는 쫓겨났다는 말입니다!" 가정 교사는 자신이 장군의 집안이나 권세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곳은 단순히 일자리였고, 자신은 약속했던 노동력을 제공할 뿐이었다. 자기 인생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걸 해결할 권리는 오직 자신에 있었다. 자기 인생은 자신이 대변할 뿐이었다. 브라보! 브라보! 나는 그에게 정말 박수를 쳐 주고 싶었다. (p. 211-212)

원래 몇 장만 읽고 다른 일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이 책을 펼치고 나서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버렸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 속의 그들이 내 주변에 있는 누군가, 혹은 어디선가 들었던 누군가, 혹은 나 자신과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들을 보고 저자가 느낀 것들을 따라가는 재미도 쏠쏠 했습니다.

"내 생각 때문에 마음의 평정을 잃지는 마십시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중에서)​

나는 뭔가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맞아, 그렇지. 적어도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는 타인의 생각보다 내 생각과 감정이 우선이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지. 너무 당연하잖아. 만약 사람이 정말 이럴 수 있다면 조시마 장로의 말대로 평심을 잃지 않을 수, 즉 자신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을 수 있다. <미성년>의 돌고루끼만 해도 우역곡절 끝에 첫 월급을 받은 날을 이렇게 마무리 한다

"다만 위안이 되는 것은 내가 그 정도의 비용을 받을 만큼은 일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역시 내 말을 듣고 나서 내게 정당한 비용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는 점이다." (미성년 중에서) (p. 86-87)

<백야>의 주인공처럼 친구도 없고, 애인도 없고, 직장과 돈도 없이 있는 것이라곤 낮은 자존감뿐인 사람을 여전히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 많은 시대 아닌가. 누군가에게는 혹은 어느 시대에는 당연시 되었던 연애와 결혼, 출산과 취업, 내 집 마련과 건강, 돈독한 인간관계가 시나브로 높디 높은 허들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삶의 조건들 속에서 이방인이 아니라고 느끼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그러므로 기성세대는 저성장, 저출산을 염려하며 젊은이들에게 건네는 덕담을 이제는 조금 바꾸었으면 좋겠다. 우선은 자기 자신과 화해하라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그러자면 사회가 변해 주어야 마땅하겠지만 변화란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우선을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p. 133-134)

마침 이 책을 읽기 전에 도스토옙스키가 도박에 빠졌던 유명인 중 한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재정난에 시달렸고,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빚을 갚기 위해 출판사와 무리한 계약을 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늘 마감에 쫓겼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도박하는 인물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고 합니다. 이런 밑바닥 속에서 그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과 인간의 날 것 그대로의 상태를 많이 마주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그러한 날 것 그대로가 사람들의 겉모습 이면에 있는 진짜 모습을 통관하여 보게 하고 그러한 모습들을 작품에 녹아내지 않았을까 합니다.

'바샤를 구해야만 해. 그를 자기 자신과 화해시켜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자신을 망치고 말거야.' (약한 마음 중에서)

정확한 판단이었다. 행운 같은 연인의 애정도, 진실된 우정도 바샤의 약한 마음을 구원해 주지 못했다. 그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었다.

모든 사람이 어느정도는 바샤와 같지 않을까. 내 뒤에서 누군가 수군거리면 내 얘기를 하는 건 아닌가 싶어 신경 쓰일 때, 어렵게 던진 유머에 분위기가 썰렁해져 나 자신이 싫어질 때, 주문한 짜장면이 아닌 짬뽕이 나왔는데도 아무 말 못 하고 꾸역꾸역 먹을 때, 상대의 요구를 잘 거절하지 못하는 데다 어렵사리 거절해도 미안한 마음이 들 때 우리 안에 있는 바샤가 고개를 드는 것 아닐까? (p. 224)

도스토옙스키가 살았던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사는 곳은 비슷하구나,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그들도 느꼈구나 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묘하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마 가장 힘든 시간에 저자가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읽고 이와 같은 책을 내기까지 저자도 같은 느낌을 받았겠지요. 자신이 느낀 감정을 과하거나 호들갑 떨지 않으면서도 재치있고 담백하게 풀어내어 세상에 낸 저자가 감사하게 여겨졌습니다. 저자의 글을 통해 저도 위로를 받았으니까요. 저자의 다음 책이 궁금해집니다. 다른 문학작품을 저자의 눈을 통해 어떻게 비춰지는지 기대가 됩니다.

"당신은 나를 영원히 행복한 인간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요! 행복한 인간으로요. 누가 알겠습니까. 어쩌면 당신은 내가 나 자신과 화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는지도 모릅니다." (백야 중에서)

나는 이 난데없는 고백에서 '나 자신과 화해'라는 구절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렇구나. 사람은 누군가가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 주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가 될 수도 있구나. (p. 128-129)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https://blog.naver.com/sak0815/221859609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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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세상을 균형 있게 보는 눈 - 시장경제를 알면 보이는 것들 아우름 43
김재수 지음 / 샘터사 / 202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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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경제학 교수인 저자가 경제학도가 아니여도 누구나 각자의 삶을 살면서 뗄레야 뗄 수 없는 경제학적 사고 및 시장에 대해서 알기 쉽게 풀어쓴 책입니다. 친근한 유투버가 알기 쉽게 재미있는 영화에 대해서 리뷰하듯이 이 책은 강의체, 대화체로 쓰여 있어서 전혀 딱딱하거나 고리타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얽혀 있는 시장 경제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에 대해서 친절하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에 대해서 어렵다고 여기던 저도 이 책을 통해 '경제'라는 것을 매우 친숙하면서도 흥미롭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경제학은 제한된 자원, 제한된 선택의 영역에서 희소성이 낳는 선택의 문제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합니다. 즉 무엇을 생산할 것이고, 어떻게 생산할 것이고, 누가 소유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들이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적 사고방식의 첫걸음은 모든 일에 어떤 대가를 지불하는지 확인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경제학적 사고방식의 첫걸음은 모든 일에 어떤 대가를 지불하는지 확인하는 일입니다. 저는 이를 '양면의 얼굴 보기', 또는 '무대의 뒷면 보기'라고 이름 붙입니다. (p. 15)​

이러한 선택의 상황들 속에서 경제학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최적의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 또 강조되는 것은 바로 균형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눈앞에 놓인 한 물건의 가격이 그냥 결정된 것 같지만, 아주 복합한 여러 이해관계와 상관관계가 얽혀져 있다는 것이죠. 그런 것들을 이해 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은 멍청하지 않다', '복잡한 상호작용이 벌어진다'라는 두 가지 균형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인 즉슨,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직선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극단적이 아니라 균형 있게 사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균형이 내포하는 두 가지 특징을 이해해야 합니다. 첫째, 사람은 멍청하지 않습니다. 줄이 길게 늘어선 계산대 앞에 서는 사람은 없습니다. 경제학자가 즐겨 쓰는 표현처럼, '사람은 인센티브에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다들 빠른 계산을 통해 가장 짧은 시간 동안 서는 줄을 찾습니다. 둘째, 세상은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결과는 단순하지만, 이것은 이미 수많은 최적 선택이 상호작용해서 낳은 결과입니다. 계산대 앞 줄은 거의 비슷하고, 어디에서든 비슷한 시간을 기다립니다. 결과는 단순하게 나타나지만, 과정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람은 멍청하지 않다', '복잡한 상호작용이 벌어진다'라는 두 가지 균형 특징은 경제학적 세계관이라 할 수 있어요. 가격이나 거래량 같은 숫자 하나도 균형 개념을 통해 이해해야 합니다. 상품 가격은 숫자 하나에 불과하지만, 수많은 사람의 의사 결정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나타납니다. (p. 36-37)​

제가 경제학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생각하였던 경제학의 이미지는 굉장히 계산적이면서 숫자적이고 어떤 부분은 명확하게 딱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는데 오히려 경제학이 강조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고, 세상은 흑과 백으로 무자르듯이 자를 수 없으며 균형이 필요하다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접하게 되어 어떤 부분은 문화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만큼 제가 경제에 대해서 무지하게 살았다는 뜻이겠죠.

균형 개념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세상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는 가르침을 담습니다. 보이는 것만 바꾼다고 해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세상이 변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보이는 것 뒤에 똑똑한 인간과 복잡한 세상이 존재하니까요. 균형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보이는 것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성급하게 문제를 분석한 후 간단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p. 39)​

경제학에서 '한계적 사고'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최적 선택을 하기 위해서 한계편익과 한계비용이 같아지는 지점을 찾는 사고방식입니다. 저는 이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싶어요. 한계적 사고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직선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극단적이 아니라 균형 있게 사유하는 방식입니다.

만약 편익이 없거나 비용이 없다면, 잉여 곡선은 포물선이 아니라 항상 증가하거나 항상 감소하는 단순한 선형이 됩니다. 그렇다면 선택은 너무 쉽습니다. 하루 종일 게임만 하거나, 게임을 하예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선택은 대가를 요구합니다. 게임을 하면 공부할 시간을 포기해야 하고, 게임을 하지 않으면 게임에서 얻는 재미를 포기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잉여 곡선처럼 비선형의 모습을 띠고 있다는 말과 같아요. 따라서 흑과 백, 모와 도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적절한 시간만큼 비디오 게임을 해야지, 하루 종일 게임만 하거나 아예 안 하는 것이 답이 될 수 없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기본적이고 당연한 경제적 선택 원칙을 쉽게 무시합니다(p. 31-32)​

우리가 살아가는 삶속에서 시장경제를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시장경제에서 함께 늘 거론되는 것들은 소비자와 판매자, 정부의 시장 개입에 대한 역할, 이익과 불이익, 공평함과 불평등, 독과점과 같은 개념일 것입니다. 특히 요즘 바이러스로 인해 온나라와 전 세계의 시장경제가 뒤집어 지게 되는 상황들 속에서 더 건강한 시장 경제는 무엇이고 그 시장이 잘 돌아가기 위해서 정부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며, 개인과 기업과 상인들은 그 속에서 어떤 선택들을 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질문들에 경제학자인 저자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은 사람이라면 경제학을 꼭 알아두라고 말합니다. 경제학을 통해 균형의 개념을 이해하고 좋은 의도가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고, 왜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는지 먼저 이해하라고 말이죠.

경제학자는 좀처럼 낭만적인 미래, 선동적인 문구, 사이다 발언에 현혹되지 않습니다. 균형 개념을 이해하기 때문이에요.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은 사람이 경제학을 꼭 공부하면 좋겠습니다. 좋은 의도가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고, 왜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는지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뜨거운 꿈을 가지세요. 순진하지 않은 냉철한 이성으로 꿈을 꼭 이루기를 응원합니다. (p. 40)​

경제학이 준수하는 확률적 사고는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재미있고 영향력 있는 하나의 이야기를 조심해야 해요. 우리는 인상적 이야기에 너무 쉽게 빨려들고 다른 가능성을 무시한 채 성급한 결론으로 뛰어들려고 해요. (p. 43-44)​

그리고 시장과 정부, 개인 등이 각자 어떠한 역할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저자는 경제학의 입을 빌어 답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성패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포용적 시장 제도와 적극적인 정부의 역할이 서로 보완적이라는 것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은 서로 보완적이라는 것이겠죠. 둘중의 하나, 흑백 논리와 같은 협소한 접근으로는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경제학자인 저자는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국가의 성패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포용적 시장 제도와 적극적인 정부 역할이 보완적이라는 것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대부분 시장과 정부에 대한 토론은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라는 흑백 논리로 이뤄집니다. 이런 협소한 접근은 이해를 왜곡시킵니다. 시장제도를 거스르는 착취적인 정부개입은 성공할 수 없고, 정부가 아무 역할을 하지 않는 자유시장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p. 90)​

그리 두껍지도 않은 책이지만 한 학문의 정수, 그리고 한 개인으로써 세상과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에 대한 정수를 아주 알기 쉽게 잘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샘터사에서 나온 '아우름 시리즈' 43번째 책입니다. 아우름 시리즈는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은 한 가지는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 인문교양서들로 이뤄진 시리즈입니다. 지난번 다른 주제의 아우름 시리즈 책을 한번 읽었었는데, 그 책도 중요한 인문교양의 한 주축을 그 분야의 전문가가 두껍지 않은 지면을 빌어서 아주 알기 쉽게 설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 주제도 경제학자인 저자가 아주 쉽게 중요한 개념을 설명해주는 것을 보고 시간이 되면 아우름 시리즈 전권을 다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기회비용 개념이 불온함이라는 정신을 담는다면, 매몰비용 개념은 냉정함이라는 정신을 담습니다. 합리적인 결정을 위해서 이미 써버린 비용을 냉정하게 무시해야 합니다. 경제학적 사고방식은 기회비용을 찾는 불온함과 매몰비용을 무시하는 내정함을 넘나들 것을 요구해요. (p. 26)

요즘 바이러스로 온 나라와 전 세계가 시끄럽고 동요되며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가운데, 이런 위기 상황일 수록 한 개인은 어떠한 태도와 선택을 하며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마음에 깨달아진 것은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잘 지내며, 나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잘 헤아려 그에 맞는 결정들을 후회 없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고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알려면 우선 세상의 중요한 가치와 개념들을 이해해야겠죠. 그러기 위해서 나의 분야, 일상 뿐만 아니라 세상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학문들과 개념들을 읽혀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그 안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 소중한 가치를 잘 탐색해 인생을 재밌게 꾸려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나에게 다가온 이 책,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책들이 더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그만큼 이 책이 쉽고 재미있게 쓰여져 있으면서도 세상과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들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좋은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잘 작동하는 시장경제는 전체 파이 크기를 키우고, 사회 구성원이 더 큰 조각을 차지하도록 만들어요. 모두가 크기가 같은 조각을 먹지 않지만, 자신이 기여한 만큼 공평하고 정당한 크기의 파이 조각을 갖습니다. 경제성장이 잘 이루어지고, 성장 과실이 모두에게 분배되며, 불평등이 심하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시장경제가 잘 작동하지 않으면 파이 크기도 자라지 않고 불평등이 커질 수밖에 없어요. 독과점과 정실자본주의는 이미 큰 조각을 가져가는 소수가 더 큰 조각을 가져가도록 하고, 작은 조각을 가져가는 다수가 더 작은 조각을 가져가도록 만듭니다. 외부효과, 공공재, 공유재, 비대칭 정보와 같은 시장실패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다수 약자에게 비용을 떠넘기거나 그들을 시장의 혜택에서 배제합니다. (p. 183-184)​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https://blog.naver.com/sak0815/221855328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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