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어린 시절이 울고 있다 - 몸에 밴 상처에서 벗어나는 치유의 심리학
다미 샤르프 지음, 서유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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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은 책을 만났다. 오히려 그저 그런 책을 만나면 책의 많은 부분 중 좋았던 부분은 일부분이기 때문에 책에 대한 감상과 좋았던 구절을 찾아 쓰기가 수월해진다. 그런데 너무 좋은 책을 만나면 책 전체가 좋고 밑줄의 천지라 어느 한 부분을 꼭 찝어 말하기가 굉장히 애매하다. 그래서 더 책에 대한 느낌과 서평을 쓰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바로 이 책이 그렇다. 정말 좋은 책이다. 이 책은 크게는 트라우마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리고 몸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어려운 용어가 남발하는 심리학 책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저 그런 뻔한 이야기를 내뱉는 책도 아니다. 정말 자신의 분야에서 뼈가 굻은 이론의 핵심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가 이론의 정수를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책이다. 그래서 트라우마와 치료와 몸과 심리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촘촘하고 밀도있게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어렵지 않다. 상담사나 심리치료를 하는 분들이라면 정말 꼭 보기를 권하고 싶으며, 그보다 더 권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다.

우리의 고통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진짜 문제가 우리의 기억 속, 마음속 그리고 몸속에 꼭꼭 숨어 있기 때문이다(p.10) ​

 

트라우마라는 심리학적 개념이 요즘에는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쉽게 쓰인다. 그렇다는 것은 이 사회가 그만큼 트라우마를 경험하기 쉬운 사회라는 반증일 것이다. 트라우마는 교통사고나 어떤 사고 등과 같이 예기치 못하게 일상에 찾아오는 단일 트라우마 일수도 있고, 자라면서 일상적인 상처를 통해 얻거나 반복적으로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에 큰 영향을 미치는 환경에 노출되면서 얻게 되는 것도 트라우마에 속할 수 있다. 후자를 이 책에서는 '발달 트라우마'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를 테면 트라우마 중에는 자라면서 일상적인 상처를 통해 얻은 '발달 트라우마'가 있다. 성인이 된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별로 대수롭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어린 시절에 감당하기에는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험을 했을 때 생긴다. 이것은 주로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극단적인 사건이나 잔혹함 때문이 아니라 부모의 무지나 선입견, 능력 부족 때문에 벌어진다(p. 18).

우리의 몸은 위험에 처했을 때 경계 경보를 울리게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위험속에서도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본능이다. 이런 생존 메커니즘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투쟁, 도피, 경직(fight, flight, freeze). 맞서 싸우거나 달아나거나 그 자리에 얼어 붙거나 이 셋이다. 위험 상황에서는 이 세개의 반응이 꽤 효과를 나타낸다. 그런데 문제는 위험이 끝났을 때 발생한다. 위험이 이미 끝났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는데도 아직 경계 경보가 울리고 있는 상황이 쉽게 말해 PTSD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은 태어난 이후 불과 몇 년의 시간 안에 일어난다. 그런데 성인이 된 우리에게 이미 그 기억은 사라지고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시기가 우리의 일생을 좌우하고 있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히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안정적 토대가 마련되며 이때 받은 상처는 이러한 토대가 생성되는 것을 방해하거나 제한해서 많은 사람의 인생에서 긴 그림자를 남긴다(p.10).​

우리의 몸을 조절하는 체계 중 많이 알려진 것이 자율 신경계다. 자율신경계는 교감 신경계와 부교감 신경계로 나눌 수 있는데 교감 신경계는 흥분을 담당하고 부교감 신경계는 이완과 안정을 담당한다. 건강한 자율 신경계는 무엇보다 유연하게 반응하는 체계이다. 상황에 따라 양쪽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몸이 적응하도록 한다. 이것을 쉽게 '감정 내성의 창문(window of tolerance)'이라 할 수 있다. 건강한 사람은 감정 내성의 창문이 커 많은 감정들을 자신의 창문안에서 담을 수 있고 그것들을 올라가면 내리고, 내려가면 올리면서 자유자재로 조절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

 

이에 반해,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은 감정 내성의 창문의 폭이 좁아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창문의 폭이 좁다는 것은 금방 한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창문 안에서 감정이 아래 위로 움직여야 편한데 창문의 폭이 좁다 보니 위로 넘칠 수도 아래 뚫고 들어가기도 쉬운 것이다.

 

 

감정이 위로 넘치게 된다는 것은 교감 신경계가 과잉 활성과 되는 것을 뜻하고, 아래로 너무 뚫고 들어간다는 것은 부교감 신경계가 과잉 활성과 된다는 것을 뜻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되면 신경 체계가 계속 해서 아주 높은 수준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극도로 흥분되거나 예민해지거나 안절부절 못하는 것과 같은 한 극단과 해리되는 것과 같이 멍한 상태가 되거나 우울해 지거나 무언가 차단된 느낌과 같은 또다른 극단이 번갈아 나타날 수 있다. 아니면 계속 한 극단에만 주로 머무를 수도 있다.

모든 형태의 트라우마는 항상 자기 자신과 몸을 분리하며, 다른 사람들과도 분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생명력 있는 삶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또 주변 사람들과도 분리되면서 도움 받는 것을 힘들게 만들고 만다....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을 몸을 통해 잘 관찰하면 자기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지각도 변하게 된다. 자신만 소외되어 있다는 감정도 줄어들고 불편했던 마음도 훨씬 잦아 들 수 있다. (p. 163-164)​

이렇게 되면 안정 적인 감정 내성의 창문의 범위안에서 감정의 파도가 치는 것과 비교하였을 때 그 창문의 범위를 넘어서는 감정들을 경험하게 되면 항상 힘들고 피곤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 내성의 창문의 범위를 점차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일 텐데 신체 감정 통합 치료법(SEI)을 주치료로 사용하는 저자는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아차리고 몸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학습 과제, 자기 조절, 애착 관계는 생각에만 반영되지 않고 몸과 삶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몸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여 성격과 태도를 만들어낸다. 우리 몸이 곧 나다. 점점 더 가상의 시대가 되어가고 몸은 그저 물리적인 기능을 하는 대상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는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이성과 감정은 몸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몸을 느끼지 못하면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공허해질 뿐이다. 인생에 깊이가 없다. ... 몸 안에는 억압된 상처들이 들어 있기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몸을 통해 드러나게 마련이다. 어린 시절에는이런 패턴이 일시적으로 일어나도 감정과 행동이 여러 번 반복되면 결국 우리 몸의 일부가 된다. (p. 50~51)

저자가 말하는 몸에서 나타나는 일들을 알아차리고 몸을 돌본다는 것은 자신의 몸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몸을 키우고 살을 빼고 근육량을 늘리고 땀을 빼고 이런 것과는 다르다. '지금 내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이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지금 이야기를 할 때 당신의 몸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 나고 있나요? (p. 165)

수시로 소파에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몸에 어떤 감각이 나타나는지 관찰해보자. 이때 해석하거나 평가하지 말고 그냥 인지만 해야 한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5분 동안 그저 몸을 느끼고 가만히 있는 것이 매우 힘들 수 있다. 아니면 불안하거나 내일까지 급히 처리해야 할 일 등등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그런 증상은 지극히 정상이다. (p.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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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몸을 돌보고 자각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나와 세상, 나와 타인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나의 감정과 욕구에도 귀를 기울인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온전히 내 몸과 마음으로 존재할 때, 즉 자기 자신과 만날 때 타인과도 건강한 관계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온전한 나로 서 있지 못하고 경계의 기본 단계인 몸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쉽게 나의 몸과 마음을 침범 당할수도, 또 누군가의 경계를 침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반대의 경우도 함께 존재할 것이다. 건강한 관계와 거리가 없다면 원래는 내 몸을 잘 유지하고 경계를 명확히 해야하는데 써야 할 에너지를 다른데 쓰게 되고, 그러면 분명 몸의 어딘가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치유를 '통합'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과거에 벌어진 이야기를 바꾸거나 지워버릴 수 없다. 과거는 그냥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한 번 부러진 다리는 절대로 '안 부러졌던' 다리가 될 수 없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면 다리가 부러졌던 흔적은 평생 남아 있다. 하지만 잘 치료하면 달리고 뛰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오히려 부러졌던 부분이더 단단해질 수 있다. 몸은 상처가 난 부분을 과도하게 보상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 맥락이다. 트라우마 치유라는 개념은 내가 더는 과거의 내 모습으로 규정되지 않고 다른 여러 가지 가능성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트라우마 경험을 성공적으로 통합했을 경우 이를 '외상 후 성장'이라 부른다. 트라우마 자체는 많은 고통을 일으키지만 이렇게 다른 측면도 있는 것이다. (p. 125-126)

개인적으로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서평단에 신청하고 당첨되어 책을 받게 되어 읽었지만 정말 좋은 책이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심리치료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오히려 이 책을 쓴 저자는 전문가들 보다 일반 대중들을 염두해 두고 책을 썼을 것이다. 그렇기에 책을 읽을 때 속도가 나가지 않거나 어렵지 않고 아주 술술 읽히면서도 중요한 부분들 담아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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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적으로 인지하지 못해도 만성적인 감정 상태는 몸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런 억압된 감정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자각하고 새로운 경험을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뿐 아니라 몸에도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내 안에 있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것들이 내 삶을 결정하고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나의 감정 상태와 생가그이 패턴이 내 것이 아닌 내 몸에 각인되어벌니 과거에서 온 것이라면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일까? 우선 우리는 몸이 감정뿐 아니라 생각까지 결정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잘 알게 되면 '몸'을 통해 감정과 생각도 바꿀 수 있다. (p. 52-53)​

특히 나는 작년에 이 책의 내용의 베이스가 된 신체감각기반 치료 워크샵과 집단 등에 참여하였는데 며칠 간 배웠던 이론과 내용들이 이 책에 아주 쉽고도 다 들어가 있어서 놀랬다. 그렇지만 책이 전혀 두껍거나 내용이 방대하지도 않아서 놀라울 뿐이다. 주변 동료들에게도 내가 직접 사서 꼭 권하고 싶고,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분들을 상담할 때 이 책을 꼭 권해주어야겠다. 현재 내가 트라우마로 딱히 힘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은 사건들에 노출되고 나의 주변 사람들이 노출된다. 이 책을 통해 내 마음과 몸에 대해서 이해를 한다면 나와 타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격대비, 두께 대비 내용을 봤을 때 근래 최고의 책이다. 이 서평에 내용을 다 담지 못해서 아쉬울 뿐이다. 모두가 꼭 한번 봤으면 좋겠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몸을 느끼고 친숙해지는 것이다. (p. 145)

이렇게 몸을 하찮게 여기면 인생의 질은 현격히 낮아진다. 우리의 몸은 이번 생에서 우리의 집이자 안식처이자 감정의 공명판이다. (p. 147)​

 

 

 

 

 

살아가면서 무엇을 경험하든지 그 경험을 지워버릴 수도, '벗어던질' 수도, 그냥 없었던 일로 생각할 수도 없다. 그 경험들은 모두 우리 역사의 일부분이다. 따라서 치유는 흉터가 남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원래 의학적으로도 그런 치유는 불가능하다. 내가 생각하는 치유는 '통합'한다는 의미이다. 과거에 벌어진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과 통합한다는 뜻이다. 이와 더불어서 새로운 좋은 경험을 만들어서 옛 상처가 더는 지금의 삶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통합하기 위해서는 지금 주어진 대로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뭔가 새로운 행동을 해야 한다. 즉, 여기서 말하는 통합이란 내가 살아가는 인생에서 유대감을 만드는 것이다. (p.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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