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설기도
김소진 지음 / 베다니출판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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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는 거의 서평작업을 하지 않았다. 최근 내 처지가 한가하게 독서삼매에 빠질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가족들을 서울에 놔두고 혼자 제주로 내려와 살길을 모색중이다. 몇달 째 길이 막혀 있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같이 따라나오지 않는 아내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가슴 속 깊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어떤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토설기도>라는 책을 만났다. 

책은 나에게 외식의 벽을 깨고 정직하게 토해내라고 주문한다. 우리들은 기도로 나아가지 않고 분노의 감정에 빠져서 자신이 칼을 들고 설치기가 쉽다. 아니면 사람에게 우리의 감정들을 토해내기 쉽다. 우리가 직접 분노하고 칼을 들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더 악순환이 일어나게 된다. 사람을 의지하여 사람에게 아픔을 토해내면 실망하고 허무함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 문제 해결에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내에게 내 감정을 토해냈다면 아내와 나는 영영 남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토해내야만 했다. 따라오지 않는 아내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로는 내 응어리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은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토설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토해 내는 기도하라는 것이다. 솔직한 감정을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다. 그렇게 토설기도를 계속하게 될 때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를 만져 주시며, 우리 안에 평강을 주신다는 것이다. 답답한 마음이 ‘펑’하고 뚫리도록 해주신단다. 속사람이 강해지도록 하나님이 힘을 주시고 기도하면 미래에 대하여 걱정하던 것이 사라지게 만든단다. 오늘에 집중할 수가 있게 되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시게 되므로 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토설기도는 마치 만병통치약 광고처럼 내게 다가왔다. 믿음으로 살려고 했던 다윗도 계속적으로 주변으로부터 비난과 공격을 당하였다. 그때 어떻게 했나?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은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저희가 그를 그 높은 위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62:3-8)

이 책은 저자의 삶과 주변인의 삶 속에서 경험한 토설기도의 체험을 담고 있다. 토설기도가 현학적인 인식의 산물이 아니라 현실에서 건져낸 삶의 지혜라는 이야기다. 제주의 주변 지인들에게 토설기도를 하느냐고 물었다. 대부분은 그런 기도는 안한다고 말을 한다. 요번 주에 서울에 잠시 다녀와야 했다. 서울의 지인들에게도 토설기도를 하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대부분이 토설기도 경험이 있다고 말을 한다. 제주와 서울의 지역적 차이말고 또 다른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제주보다는 서울의 삶이 더 치열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있다는 것일까? 모든 사람들은 문제를 안고 산다. 또한  그 문제들을 풀 수 있는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건강한 삶을 살 것이다. 서울에서 수리를 맡긴 노트북을 찾아나오다가 버스정류장에서 한눈 파는 사이에 도난을 당했다. 그 순간 사람들이 다니는 한 길가에 서서 열심히 토설기도를 했다. 노트북을 가져간 놈의 다리가 부러지게 해달라고 저주하며 기도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마음에 평정심이 돌아왔다. 지금은 노트북을 가져간 사람이 잘 쓰게 해달라고 기도가 나온다. 그 노트북엔 수천장의 기독교 성화사진이 들어있다. 수년간 모아놓은 수고의 산물이다. 그 성화들로 그 사람이 변화되기를 기도해 본다.

아내는 역시 그냥 서울에 남겠단다. 그런 아내를 보면서도 지금은 담담해진다. 나는 이미 하나님께 그녀에 대한 문제를 토설했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이 일을 하실 차례다. 아내도 나에 대해 토설기도를 했단다. 나를 저주하고 비난하고 그리고 이젠 용서했단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이제 서로에게 직접적인 언어공격을 피한채 하나님께 의지한다.

다시 제주에 내려왔다. 다음달부터는 조그만 여행자카페를 시작한다. 그걸 운영하면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토설기도의 소재로 등장할까? 내겐 원수같은 사람들이 결국 내 선한 이웃이 될 것이다. 나는 이제 그 방법을 안 셈이다. <토설기도>의 저자에게 감사를 드린다. 또한 저자에게 영감을 준 성령님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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