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 도시 그리고 추억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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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문제를 다룰 때 그것을 단순히 양적 연장(extension)의 맥락으로만 파악할 수는 없다. 공간은 결코 즉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공간을 실생활에서 체험하므로 그것은 차라리 ‘삶세계’(Lebenswelt)로서의 공간이다. 다시 말해 일종의 ‘생활역학’으로서의 공간이라 할 수 있겠는데, 여기에는 개인이 그 공간을 받아들이는 ‘지각’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개입 된다. 오르한 파묵의 『이스탄불: 도시 그리고 추억』(이난아 역, 민음사, 2008)과 데틀레프 블룸의 『고양이 문화사: 작은 발이 걸어간 길을 찾아서』(두행숙 역, 들녘, 2008)는 이러한 맥락에서의 공간-삶세계로서의 공간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스탄불』은 작가 오르한 파묵의 자전 에세이다. 파묵과 그의 작품에 있어 이스탄불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공간이다. 파묵은 말한다. “나는 내가 태어난 날부터 시작하여 내가 살았던 집, 거리 그리고 마을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 파묵은 조셉 콘래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나이폴 등의 작가들과 달리 “언어, 국민, 문화, 나라, 대륙, 더욱이 문명을 성공적으로 바꾸면서 글을 쓴 작가”가 아니다. 파묵의 문학적 창조의 정체성은 유배나 이주가 아닌, “항상 같은 집, 거리, 풍경 그리고 도시에 매여 사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때문에 파묵에게는 “도시의 운명도 사람의 성격이 된다.”


파묵에게 이스탄불은 ‘기억’의 공간이다. 파묵은 터키어 고유의 시제인 ‘비한정 과거시제’로 이를 설명해낸다. 이 시제는 “터키어에서 남에게 들은 이야기나, 사건이 일어난 것을 나중에 보고 알게 되었을 때 사용하는 과거시제”를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말했던 것이 우리가 스스로 경험했던 것 자체보다 더 중요한 기억으로 변한다. 때문에 “나는 한때 그림을 그렸고, 이스탄불에서 태어났고, 이스탄불에서 자랐고, 그럭저럭 호기심 많은 아이였고, 그 후 스물두 살에 어떤 이유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와 같은 말로 종결돼서는 안 된다. “시작했다고 한다”로 마무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파묵은 이 책의 초입에서 독자에게 자신과 자신의 이야기를 기억해줄 것을, 추억해줄 것을 부탁한다. “아, 독자여, 이는 당신의 집중에 달려 있다. 나는 당신에게 진솔함을 보여 줄 테니, 당신도 나에게 인정을 베풀어 주길.”


파묵에게 기억의 문제는 공간의 문제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이스탄불이라는 공간은 파묵에게 정확히 ‘비애’라는 상실감의 그것으로 표현된다. 파묵이 이스탄불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 단어 하나로 요약할 수가 있겠지만, 비애는 『이스탄불』에서 여러번 곱씹어봐야 할 개념이다. 역자 역시 비애의 원어인 ‘h¨uz¨un’의 번역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비애가 “시간적으로 오랜 세월을 걸쳐 축적되고 문화적으로 의미가 덧씌워진, 공동체가 함께 연대하고 공감하여 느끼게 되는 어떤 살아 있는 느낌”일 것이라 말한다. 비애는 서구가 바라보는 시선-제국의 영광이 사라진 곳으로서의 이스탄불-에 포섭되지 않는 것이다. 그저 한 사람이 느끼는 멜랑콜리도 아니다. “수백 명의 사람이 공통으로 느끼는 그 암담한 느낌”, 그것이 바로 비애이다. “이스탄불 전체의 비애”인 것이다. 그것은 그저 단순한 슬픔이 아니다. 차라리 이스탄불의 비애는 벗어나야 할 고통이 아니라 도리어 직접 “자신이 택한 그 무엇”이다. 때문에 비애는 “이스탄불을 마비시키는 동시에 이 마비의 변명”이 된다. “이스탄불을 무대로 한 흑백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이며 진정한 사랑 이야기는 소년이 태어날 때부터 명백하게 지니고 있는 ‘비애’ 때문에 멜로드라마로 끝난다.” 이런 식으로 파묵은 이스탄불의 비애를 일종의 ‘영광’으로 긍정한다. 파묵은 평생 동안 한 곳에서 자신의 두 눈으로 이스탄불의 비애를 보아온 사람이다. 그런 그가 비애의 이스탄불을 끝내 부정할 수는 없었던 것일 테다.


인간적 지각의 대상으로서 공간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 매력적인 소재임에 틀림없다. 그간의 ‘도시’ 담론은 급속한 자본주의의 발달로 대두된 ‘대도시’(metropolis) 담론으로 그 외연이 확장되고 있는 추세이고, 최근에는 지난 2002년 월드컵 때 보여줬던 서울시 시청 앞 공간 담론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로 인해 촉발된 광화문 일대의 공간 담론으로 하루가 다르게 첨예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이스탄불』과 『고양이 문화사』는 미시-문화사적 맥락에서의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 담론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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