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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죽음 - 수전 손택의 마지막 순간들
데이비드 리프 지음, 이민아 옮김 / 이후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2번의 암과의 투병과정조차 거뜬히 이겨냈던 그녀가 2004년 12월 골수성 백혈병으로 결국엔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는 비보가 전해졌을 때 전 세계의 수많은 이들이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던 그녀였던지라 그 충격과 허탈함은 더 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수전 손택의 마지막 순간들』(이민아 역, 이후, 2008)에는 인생의 마지막 무대에 직면한 ‘인간’ 수전 손택의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있다.
『어머니의 죽음—수전 손택의 마지막 순간들』은 무엇보다도 저자가 수전 손택의 외아들인 데이비드 리프라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어머니의 사망 이후 3년 만에 그녀가 죽기 전 몇 달 동안을 기록한 것이 이 책이다. “‘각자의 필요에 따라’ 유지되는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어머니 수전 손택의 투병 과정을 저자는 “고통학 대학원 과정”이었다고 술회한다. 그는 어머니가 ‘죽었다’ 혹은 ‘사망했다’고 쓰지 않는다. 그 대신 “어머니는 존재하기를 멈추었다”라는 표현을 저자는 굳이 가져온다. 누구보다도 더 간절히 생을, 삶을 갈망한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들을 똑똑히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책 속에 묘사된 수전 손택의 생에 대한 집념은 굉장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어렸을 때 그녀는 자신의 일기에다 “언젠가 내가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썼다. 데이비드 리프는 손택이 항상 미래를 살았다고 말한다. “어머니에게는 미래가 모든 것이었다. 사는 것이 모든 것이었다.” 실제로 손택은 “화학적 불멸”을 꿈꿨다.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는 것”, “삶을 지속하는 것”을 말이다. 자신이 특별하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다. 그에 대한 일화가 있다. 스스로를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공격적인 서평을 접한 손택이 보인 반응이다. “내가 내 작품을 믿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그래 줘야 할 이유는 없겠지.”
가령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손택의 그것과는 정반대였다. 그는 병실에서 자신의 마지막 나날을 보내던 중 이렇게 노래한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면 (…) 아무것도 잘못될 게 없지. 이제 나는 내가 떠나고 난 뒤에 지저귈 지빠귀의 노래도 즐길 수 있다네.” 이렇듯 브레히트는 자신의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였지만, 손택은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리라는 사실과 화해할 수 없다”던 마르그리트 뒤라스처럼 손택에게 “‘나’를 초월하지 않는 한 죽음은 견딜 수 없는 문제”였다. 죽은 자에게는 그 무엇도 위안이 되지 못하는 법이지 않은가. 종합해보면 데이비드 리프의 결론은 이렇다. 브레히트의 죽음은 손택의 죽음보다는 훨씬 편안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예술의 위안이며, 예술의 거짓”이다. 저자는 손택을 옹호한다. “어머니에게는 어머니가 원하는 방식으로 죽을 권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손택에게 삶을 향한 저 가열찬 몸짓 외에 또 하나의 거대한 욕망이 있었다면 그럼에도 불구 그것은 예술이었다. 이는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던 그녀의 글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이미 명확히 드러난 바 있다. 손택은 단언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감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더 잘 보고, 더 잘 듣고, 더 잘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글의 마지막 문장은 또 어떠했던가. “해석학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의 성애학(erotics)이다.” 수많은 강연과 저술 일정 중간에도 짬짬이 연극과 춤, 영화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던 것도 필경 그 같은 연유에서였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별했던 것이 문학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손택이 이제는 “자신에게 정말로 소중한 일”을 하고 싶다고, 특히 소설을 많이 쓰고 싶다고 소망한다.
실비아 플라스의 죽음, 보다 정확히는 자살을 지켜보아야 했던 지인 알프레드 알바레즈는 학창시절 자신의 물리 선생님의 말을 쉬이 잊지 못했다. “누구든 목을 베어 죽으려는 사람은 언제나 세심하게, 먼저 자기 머리를 자루 안에 넣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끔찍한 혼란이 남게 된다”던. ‘존재하기를 멈추기’ 얼마 전 손택은 간호조무사에게 몸을 기댄 채 “내가 이제 죽나 봐요”라는 말과 함께 울음을 터뜨리며 너무도 무력하게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실비아 플라스와는 달리 손택은 코앞에 닥친 가혹한 죽음의 현실 앞에서 결코 초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두 권의 책에서 자연스레 우리는 그녀의 이름 앞에 그 어떤 수식도 붙지 않은, 다만, 그저 ‘인간’ 손택의 모습을 그려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