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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역설 (보급판) - 폭력으로 평화를 일군 1만 년의 역사
이언 모리스 지음, 김필규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2년 2월
평점 :


이언 모리스의 전작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를 대학시절에 흥미롭게 읽었던 것도 있어 이번 책도 들게 되었습니다.
도입부에서는 1983년 우발적 핵전쟁으로 이어질 뻔 했던 10억명이 (그 중엔 방공기지로 둘러쌓인 케임브리지에서 대학원생으로 있던 본인을 포함한) 몰살당할 뻔 했던 순간을 다루며, 앨버트 공이 중국에 인질로 잡혀갔던 대체 역사를 그려냈던 전작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처럼 흡인력있는 도입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장에 들어서서는 고대시대의 로마의 전쟁을 다루며 도입부에서 말한 것과 같이 잔혹한 전쟁의 결과이기는 하나 역설적으로 그 덕에 "라마가 위대한 평화를 가져주었던"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적절하게도 전쟁의 면모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로마의 안정을 유지하며 세금도 적절히 걷기 위해 어떤 관리자적 자세로 대처하는 지도 다루고 있습니다.(티베리우스와 도미티아누스를 폭군의 반열에 단순히 두고 있는 것은 전연령 독자를 생각한 너무 깊게 파고들지 않는 터라 그렇다고 생각되긴 합니다.)
말미의 현지인에게 안타깝게 기만당해 엉뚱한 연구를 진행한 마가렛 미드의 사모아섬에서의 이야기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뉴기니아섬에서의 열정적이고 사교적인 살인광 운전기사 이야기도 흥미롭게 읽혀지는 모습입니다.
2장에서 가장 흥미로운 파트는 12세기경 실전되었다가 20세기 (1904)년에 이르러서야 인도의 고대 행정에 대해 알 수 있게 만든 '아르타샤스트라'의 재발견이었습니다. 저도 이름조차 처음 들은 얘기였던터라 남아시아사의 무지에 대해 다시금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찬드라굽타의 초대 재상이던 카우틸랴의 작품이라는데, 추가적 가필의 요소도 있으리라 생각된다합니다. 한, 마우리아제국, 파르티아제국, 로마제국, 멕시코 테오티와칸국의 위도를 다루며 위도상 농경이 먼저 시작된 곳에서 거대 제국이 전쟁도 농경을 바탕으로 더 큰 전쟁을 치를 수 있게 만들었다는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장에서도 언급하긴 하지만, 다시금 2장에서도 폭력에 의한 사망자 수치가 시대가 흐르고 제국이 안정화됨에 따라 점차적으로 감소(석기시대10~20%->로마의 황금기인 2세기 즈음에는 2~5%)됨이 언급됩니다.
3장에서는 2장에서 다룬 그 위도상 농경이 먼저 시작될 수 있던 행운을 지녔던 제국들의 몰락을 도입부에서 다룹니다. 저자는 로마 붕괴 후 권력의 빈틈을 들고 일어난 영주들의 봉건적 무정부상태를 재미있는 예시로 다루는데 "성주님, 이 훌륭한 와인은 얼마나 주고 사셨습니까?" "아, 감히 목숨 걸고 나에게 돈을 받으려 한 자는 아직 못봤소"(...) 이런 점에서, 당나라의 문민 통제를 유럽 중세 봉건제보다 낫다고 본 저자의 시각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장의 말미에서는 역설적으로 위도상 농경이 먼저 시작된 곳에서 스텝지역 유목민의 침략에 시달리게 된 터라 전쟁의 악순환 속에서 '위도상 운좋지 않은 지역'이 되어 버렸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4장에서는 전작의 이름을 약간 비튼 '유럽이 (거의) 세계를 지배하다',라는 장명을 달고 있습니다. 서장에서 전쟁이 발전을 낳는 역설을 이야기 하긴 했지만 여기에서 저자는 1415년 포르투갈의 세우타 점령으로부터 시작된 500년간의 이 전쟁이 역사상 가장생산적인 전쟁이었다고 언급하며 1914년에는 유럽인과 식민지배자들이 대륙의 84%, 바다의 100%를 지배하고 있던 사실 및 제국이 심장부인 북대서양 연안에서의 폭력으로 이한 사망율이 그 어느때보다 낮았던 사실을 언급하면서도 패배자의 이면도 다루고 있습니다.
중국에서의 총포 사용(1288년의 총포 발굴이 가장 이른 것)을 다루며 한반도에서는 1356년, 인도에서는 1456년, 시암에서는 1500년경에 대포가 주조되었던 이야기를 하며 일본에 총포가 전해진 것은 1542년이라 다루고 있고(이는 조선 정부가 화포 기술의 유출을 막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사족을 다는데 타네가시마 철포 전래를 설명하려 했었다면 안 다느니만 못 했을 것 같습니다...
대양으로의 진출과 군제 개혁, 전함전술의 발달도 다뤄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는 하나 서유럽의 지도는 거의 바꾸지 못했지만 다른 지역을 뒤흔들어 놓았던 점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수백명 정도의 인원으로 식민지를 점령할 수 있었던 정도로 기술적 격차가 컸었던 터라, 팍스 브리타니카에 대한 캐머런 총리의 회고 처럼 '좋았던 적도 있었던' 19세기가 실제로 점점 나아지는 모습(367P)을 보이고 있는 점도 엿볼 수 있습니다.
5장은 이어지는 유럽에서의 전쟁의 시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1차대전,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러시아 혁명과 내전으로 인한 사망, 그리고 일본의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415P에 꽤나 끔찍한 참상의 사진도 있으니 주의하시는게 좋습니다.) 그리고 2차대전.. 전후 핵무기로 인한 상호확증파괴의 시대를 상징적인 그래프롤 보여주는 443P의 소련과 미국의 핵무기 보유 상황도 한번 눈을 둘 만 합니다. 왜 그당시 반전음악이 그렇게 성공을 거두었는지 알게 되더군요.
6장에서는 인간이 아닌 곰베의 침팬지들의 싸움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침팬지들끼리의 영역확장을 위한 무시무시한 물어뜯고 뼈를 으스러뜨리고 얼굴가죽까지 벗겨내는.. 모습에서 갑자기 꼭 그런것만은 아니라며 다른 두 침팬지 집단이 서로 경계하더니만 서로 성기를 만져대며 화합하는(..) 모습을 또 묘사하며 어째서 아그리콜라와 칼가쿠스가 그로피안 산에서 서로 검을 꺼내 찌르기 보다는 토가를 벗고 서로의 성기를 문지를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며 여기에 대한 설명이 또 이어집니다. 평화주의자의 딜레마 이론, 고르바초프의 냉전에서의 패배를 다루며 최종장인 제 7장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지구의 마지막 최선의 희망:미 제국, 1989~라는 제법 의미심장한 장 제목으로 시작되는 장의 527P의 그래프의 제목이 인상깊습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그 말대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감소되는 폭력에 의한 사망 비율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미국이 노련하게 팍스 아메리카나를 유럽 비둘기들을 잘 관리하며 이어가고 있음이 드러나게 되는데 이러한 잘 대처한 서유럽과는 달리 서남아시아에서의 대처는 썩 그렇지 못했다는 평가가 그럴법하게 다가옵니다. 마지막으로 전쟁 책 답게 우리가 진실로 전쟁이 아무 소용 없는 세계를 원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전쟁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맺고있는데 비단 이 말 때문이 아니더라도 최근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그점은 여실히 느껴지고 있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