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이 각시는 당신이 아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심조원 지음 / 곰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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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이 각시는 당신이 아는 그-----런 얘기가 아니다>는 제목을 봤을 때부터 궁금증이 마음에 불을 붙였다. 나는 아침드라마 같은 막장 서사나 교훈으로 약자들을 꽁꽁 옭아매는 그런 옛이야기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상하게 옛이야기 안에는 나의 마음을 흔드는 어떤 부분이 늘 있었다. 역사는 승리한 자들의 것이라는 말처럼 구술로 전해 내려오던 옛이야기들은 문자로 기술되어 학교나 사회, 문화 안으로 들어오면서 많은 부분이 장막과 휘장으로 둘러싸였으리라. 그렇게 가려지고 포장된 부분들은 어떤 식으로든 서사 안에 남아 나의 무의식을 자극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첫 번째 목차는 ‘어디든 가는 나-----쁜 여자들’ 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분명 앞에 선행하는 한 문장이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떠올려도 입안에서만 맴돌고 생각이 나지 않아 나는 바로 검색에 들어갔다. 검색을 시작하자 뜨는 문구 바로 그 문장이었다. 내가 무릎을 탁치며 감탄했던 문장.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

우리 사회는 어디든 가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디든 가는 여자는 나쁜 여자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아이를 양육해야하고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집을 깨끗이 하고, 아름다운 외모로 다소곳이 앉아 남편을 기다려 수발을 들어 주어야 하는데 어디든 가고 싶은 곳으로 갈수 있는 욕망하는 여자라니 안 될 말이지 않는가.

우렁이 색시는 자기만의 방이 있었을 때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이 있었고, 방귀쟁이 며느리는 마음껏 소리를 내고 냄새를 피울 수 있었으며 선녀는 자신의 영혼인 날개옷을 입고 훨훨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있다. 남편과 시아버지와 가부장 사회 속 여자들은 있어도 없는 척, 없어도 있는 척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 살았지만 완전히 그렇게 살지는 않았다. 특히 구술로 전해지는 서사에서는 세상의 강압과 폭력에 대해 더욱 과감하게 자신들의 욕망을 존중하려는 노력과 시도들을 멈추지 않았다.

<여우누이>를 보면 여느 여성 악당과 달리 피해자 서사가 없으며, <내 복에 산다>에서는 예쁜 고명 막내딸이 똑 부러지는 자기주장으로 아버지에게 쫓겨나지만 숯덩이 안에서 황금을 찾아내 뜨거운 생명력을 불처럼 일으킨다. 가장 공감이 가는 이야기는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이야기인데 여기에 할머니의 조력자로 등장해서 호랑이를 물리치는 캐릭터들을 보면 (이 책 안에서는 예수님과 12제자에 빗대서 아주 흥미로운 비유를 선사했다) 애잔한 마음이다가 결국에는 더욱 큰 힘을 받는 감동을 만나게 된다.
호랑이가 노리는 것은 늙고 궁핍하며 산 속에 홀로 사는 여자의 몸이다. 치사하고 비겁하기 짝이 없다. 보호해줄 사회의 안전망도 의지할 이도 없이 외떨어져 살아가는 가장 약한 자에게 동물의 왕이나 되는 거대한 존재가 입맛을 다시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지금의 사회와도 전혀 다르지 않다. 옛날의 호랑이는 더욱 뻔뻔하고 겉으로 드러났다면 현실의 호랑이는 좀 더 복잡하고 드러나지 않는다. 성폭력자의 대부분이 아는 사람이거나 절대 그럴 리 없는 사람들 중 하나라는 것 보면 알 수 있다.

할머니는 누구에게도 도와달라고도 하지 않는다. 세상의 눈과 말은 모두 호랑이의 편이란 걸 알기 때문에 팥죽이나 배불리 먹고 죽을 수 있게 해달라고 협상한다. 여름내 힘들게 지은 농사로 얻은 팥을 몽땅 넣고 큰 가마솥에 삶자 점점 뻘겋게 끓어오르는 팥죽 그것과 함께 서서히 끓어오르는 할머니의 서러움과 분노는 보이지 않던 이웃들을 깨운다. 달걀이 알밤이 송곳이 바늘이 지게가 멍석이 맷돌이 절구통이 자라가 가래가 파리가 개똥이 저마다 팥죽 한 그릇을 달란다. 하나같이 누추하고 하찮은 것들 할머니의 삶과 늘 함께하는 동지들이다.

마침내 호랑이가 할머니를 잡아먹으러 왔을 때 이 누추하고 보이지 않던 존재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착착 자신의 일을 해 낸다. 달걀은 뜨거운 불덩이가 되어 호랑이 눈에 탁 뛰어 들고 그걸 씻어 내려고 물동이에 손을 넣자 자라가 콱 물고 늘어지고 맷돌짝이 천장에서 떨어져 대가리를 깨트리고 송곳이 밑구녕을 푹 찔러 호랑이가 죽었다. 멍석이 들어오더니 뚜르르 말아서 지게가 턱 걸머지더니 가래가 구덩이에 파묻고 제사를 지냈다. 할머니는 손가락 하나 델 것 없이 깨끗이 호랑이가 해결된 것이다. 마치 그곳에 없던 것처럼. 이것이 진정한 연대가 아닐까. 말 뿐인 동정이나 공감, 가르치려는듯한 제스쳐가 아닌 제대로 약한 것들의 연합.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한가지로 그 무서운 호랑이를 물리친 것이다.

최후의 만찬이었던 팥죽은 죽음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봄을 약속하는 축제의 만찬이 되었다. 그 옛날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이야기가 신기하게도 개인주의와 자의식 과잉 상태인 지금의 내게 하나의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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