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집 함께 놀 궁리 5
마야 슐라이퍼 지음, 김서정 옮김 / 놀궁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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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스윗 홈~♡
집이라는 공간은 우리에게 편안한 휴식과 안정을 주는 공간이어야 한다. 하루의 피로를 씻고 몸을 깨끗이 하고 충분히 충전하는 공간 말이다.

집 안으로 잔뜩 구겨 넣은 거인의 몸은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 누군가를 초대하기는커녕 재채기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집은 누구를 위한 집일까. 나를 지켜주어야 할 집이 혹여나 망가질세라 오히려 받들어야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집이 아니다.

제 기능을 상실한 집은, 신념은, 부모는, 사회는 내가 믿고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시간동안 내 곁을 지켜온 그 집과 타자에 대한 진실은 하루아침에 알아채기 어렵다. 삶의 곳곳에서 함께하는 동안 너무 익숙해져버린 탓도 있거니와 한 때는 나를 보호하고 나를 성장하게 했고 계속 그렇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사슬에 묶여 자란 아기코끼리가 어른이 된 이후에도 터무니없이 약한 사슬을 끊고 도망가지 않는 이유와도 비슷할 것이다.

인지의 방향이나 굳어버린 정신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흔히 사람들이 기존의 삶을 벗어 던지고 제2의 삶을 산다고 할 때는 인생의 큰 시련을 겪고 난 후이다. 불치병이나 불의의 사고와 같이 죽음에 다다르는 정도의 큰 충격이나 아픔이 아니고서야 평소에 우리가 갖고 있는 인지적 관성을 바꾸기 힘들다.

삶은 우리가 고집부리지만 않는다면 원래 가야할 곳으로 흐른다. 인간의 손으로 지은 집은 한 달만 방치되어도 폐허가 되지만 숲과 들, 시내와 강, 바다와 하늘은 인간이 손대지 않는 한 꾸준히 제 모습을 복구하고 유지한다. 자신의 삶에 대한 고집이 자기 안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몇 번이고 전복 되더라도 그 길을 따라 흐를 것이다.

내게 다가오는 사건이나 존재는 미미하더라도 있을 자리에 있는 것이며 때로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기적을 일으키기도 한다. 누군가에겐 그 존재가 거미가 되겠고 누군가에겐 집이 뻥 터져 버리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어떤 작은 계기가 나를 진정한 나에게로 이끌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한 것은 그저 열심과 성실 그리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배운 대로 살려던 것뿐인데. 어느 날 갑자기 집은 날아가고 해가 뜨나 바람이 부나 도시와 시골을 걸어가며 새로운 집을 찾아 헤매야 한다니. 거인의 마음이 어땠을까.
피곤하고 지치고 다 그만두고 싶었을 테지. 그런데 거인은 정말 자신을 위한 집을 찾아 떠난 걸까?

애초 자신을 보호하고 지켜주어야 할 집이 자신을 구겨 넣게 하고 누구도 곁에 들일 수 없게 했으며 재채기도 함부로 할 수 없게 만들었는데 부서진 집 앞에서 거인은 자신을 탓하고 집 없이 어떻게 사느냐며 좌절했다. 과연 그 집이 자신을 위한 자신이 선택한 집이었는지 생각해 볼 순간이다. 내가 지키려하고 슬퍼한 집의 주인은 누구인가!

지치고 힘든 거인은 깊고 긴 잠에 빠져들었다. 그때 거미가 나타나 하얗고 포슬포슬한 가느다란 거미줄로 따뜻한 이불을 짜서 거인을 덮어준다.
"그게 거미가 할 일이잖아요."라고 당연하다는 듯 말하며...
깊고 긴 잠에서 깨어난 거인은 일어나자마자 뭐라고 했을까?
“야, 거미 너 뭘 한 거야? 다른 거인들이 뭐라고 하겠냐고!”
그 오랜 잠의 시간을 지나고서도 벗어나지 못한 과거의 습관과 틀이 망령처럼 따라 붙는다.

하지만 그가 잠들어 있던 시간 동안 거미줄에 쌓여있던 그의 몸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란 깊은 생각과 분석 남의 눈치나 과거에 습득한 것이 휘둘리지 않고 직관과 무의식 속에 잠든 나를 꺼내 올릴 수 있는 어떤 스위치 같은 것이다. 집의 보호 아래서가 아닌 거미가 수천 수억 개의 실로 포근히 감쌌던 그 안에서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무수히 걷고 찾아 헤매기만 했다면 오히려 만 날 수 없었을 경험일 것이다.

거인은 이제 맡지 못하는 향기를 맡고 볼 수 없었던 아름다움을 보고 곁을 내어주는 일, 마음을 나누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어떤 것이 자유로운 것이며 어떤 것이 나 인지, 어떤 것이 집이고 어떻게 집이 되어 줄 수 있는지 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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