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고전과 역사 속의 여성 주체들'이라는 부제를 가진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도서출판 길)에서 한정숙은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속 여성들을 논문에 담으면서 메데이아가 놓인 처지를 분석한다('에우리피데스 극 속의 여인들-메데이아, 파이드라, 바코스의 여신도들').

알다시피 그리스 고전 비극 3대 작가 가운데 가장 나중에 태어난 "에우리피데스는 여성 등장인물들에 대한 복합적 묘사로 특히 잘 알려져 있다."  이런 비극의 완성자의 작품답게 두 친아들을 죽이면서까지 아버지로서의 아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아들들에게 사랑을 받을 아버지의 권리를 앗아가면서까지 복수를 실행에 옮긴 메데이아의 '범행' 동기를 어느 한 가지에 집중하여 살피기란 쉽지 않다. 다만 한정숙의 글에서 메데이아가 이방인 여성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남성 중심의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이방인이기 때문에 이중의 고통을 안아야 하는 점을 살핀 점을 흥미롭게 읽었다.

 

 

 

 

 

 

 

 

 

 

 

 

*가운데 비극걸작선에는 세 작가의 작품들이 두 편씩 실려 있는데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가 실려 있다. 소포크레스의 <안티고네>도 실려 있다.

콜키스 여인인 메데이아가 이국 땅 코린토스의 여인들(코러스장과 코러스들)을 상대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듯 말한다. 코러스로 이들 여인들을 설정했다는 극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메데이아는 고국에서 왕녀였으나 지금은 이방인으로 살고 있다. 어디에서나 이방인들은 시민들의 공동체에 속하지 못하고 소외된 존재이다. 가령, 국내의 경우도 귀농한 가족을 오래 전부터 터를 잡고 살아왔다는 것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자연스럽다. 뒤농 10년 만에야 청첩장을 받았다는 한 후배의 얘기가 와 닿는 지점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여성은 더욱 소외된 존재이다. 더구나 정권 회복을 기도하다가 이아손도 이방인 신세, 그러나 그는 코린토스 왕의 궁정에서 왕녀와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메데이아에게는 두 자녀 외에는 아무 것도 남겨진 것이 없다. 고립무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 말인가!

한정숙 님이 글을 쓰던 당시에는 한국사회의 다문화가정의 문제가 그리 심각하지 않았을 때인 듯하다. 비극 <메데이아>를 읽으면서 또한 한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대체로 우리나라의 농촌총각들과 결혼해서 살아가는 외국인여성이 처한 현실을 생각한다. 언어의 소통 문제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남성(부권) 중심 사회이기에, 더구나 농촌의 남자들이 좀더 보수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전제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안고 살아가는 어려움에 이주민 여성이라고 안아야 하는 중첩된 문제가 예견되고, 그러한 갈등이 폭발한 사건들이 가끔 뉴스가 되곤 한다.

"여성 일반 중에서도 이방인 여성인 메데이아는 코린토스 여자들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는

다. 여자들은 비록 지위가 낮더라도 일반적으로 사적 영역에서 친한 사람들과의 정서적 교감을 통해 위안을 얻곤 하지만 부모 형제를 떠나 오직 남편 한 사람만을 의지한 채 코린토스로 온 메데이아에게는 이러한 가능성마저 없기 때문이다. 메데이아는 사고무친, 고립무원한 상황에 있다."

길게 얘기하지 않아도, 뻔한 살림에 친정마저 멀리 있는 다문화가정 주부들은 이러한 존재 자체가 외롭고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금만 역사를 거슬러올라가보면, 주로 미국 시민권을 획득해서 혹은 획득하기 위해 주한 미군과 결혼하였던 우리네 누나 언니들의 삶이 있다. 그런데 그 상당수가 결국은 버림을 받아 극도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고 미국 현지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한 목사님이 방한하여, 그녀들이 주로 목회 대상이라면서 들려준 이야기는 눈물겹고 울분이 일게 했으며 놀라웠다.

메데이아의 경우는 눈에 사랑의 콩깍지가 씌여, 그놈의 사랑 때문에 조국을 버리고 아버지를 부정하고 오빠마저 살해하여 토막냄으로써 아버지의 추격을 지연시키는 등 씻을 수 없는 죄과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왕국이라는 친정이 있지만 돌아갈 수가 없다. 사랑 때문에 웃고 사랑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울고 또한 사랑 때문에 또 울어야 하는 메데이아. 메데이아에게 (남편을 두고) 코러스 장(여인들 중)에게 하소연하는 다음 대사를 보자.

 

"하지만 그대는 나와 처지가 달라요. 그대에게는/ 여기 고향 도시와 아버지의 집과 인생의 행복과/ 많은 친구들이 있어요. 그러나 나는 외톨이로/ 고향 도시도 없고 이민족의 나라에서 납치되어 와/ 남편에게 수모를 당하고 있어요./ 이런 폭풍을 피할 수 있는 항구가 되어줄/ 어머니도 오라비도 피붙이도 없어요. (251~268행)

 

비극 메데이아를 비롯해서 이아손과 메데이아가 등장하는 신화의 부분들을 촘촘하게 살펴지만 "납치되어 와"는 (격분한 상태에서 하는, 시쳇말로) 좀 오버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아손 자신도 조국에서 추방되어 이방인으로 사는 마당에 동병상련이라는데 아내를 잠싸주지는 커녕 자기는 새장가를 드는데, 그것도 이미 있는 두 아들이 꿀리지 않고 살아가도록 배다른 형제들(왕손)이 필요하다는 얼토당토 않은 핑계까지 대고 있으니 화가 치솟을 수밖에 없다.

비극에서 한 가지 주목할 곳은 그녀의 한탄이 코린토스 여인들에게도 공감을 얻는 지점이다(코린토스 여인들이 코러스들이다). 코린토스 여인들은 자기네 공동체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그들 역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기의 땅에서 소외되어 있고, 그러므로 출신지역과 지위는 다름에도 메데이아와 코린토스 여인들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인이라는 공통점을 매개로 더불어 슬품을 나누고 공감하는 것이다. 귀농을 한 선배의 부인 곧 형수가 젊은 시절 사회운동을 했는데, 농촌지역 다문화가정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남자들은 다 그래, 하면서 남편들 흉을 보는 가운데 공감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얘기.. 그러나 생각해보면 비단 한국의 남자들과 살아가는 외국인 여성들만의 심정이겠는가! 무슨 이유에서건 친정이라는 뒷배, 때론 힘이들면 자신에게 힘이 되어줄 피붙이를 가지지 못하게 된 아내의 심정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아손은 이기적이다. 이기적인 남자의 전형이라고 해야 할까? 메데이아는 아버지를 배반하고 떠나온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이아손의 고향(시댁)에서는 국왕 펠리아스의 딸들을 속여 왕을 죽이게 했다. 해서 그곳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녀에게는 말 그대로 퇴로(출구)가 없다. 이런 그녀 앞에 나타난 이아손은 메데이아의 비난 앞에서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 메데이아가 자기를 도와준 것은 단지 그녀가 이아손 자기에게 반해서 그런 것일 뿐이고, 자기와 결혼한 덕분에 그녀는 야만의 땅 콜키스에서 문명의 땅인 그리스로 와서 정의와 법을 배웠으며 지식이 많은 현명한 여성이라는 명성까지 얻게 되었으니, 오히려 자기가 그녀에게 더 많은 것을 베푼 셈이라고 주장한다. 메데이아가 외국 출신 여성이라는 것을 빌미로 이아손은 그리스 중심주의적 문명론을 들먹이며 그녀를 배은망덕한 오랑캐 취급을 하여 모욕한다.

 

"메데이와와 이아손 사이의 대화는 이른바 문명-야만 구분에서 비대칭적인 위치에 있는 사회 구성원들이 결혼한 후 성적 매력이 사라질 때 찾아오는 긴장된 관계가 어떤 모습을 띌 수 있는지 보여준 다음, '거래로서의 결혼'의 내부사정을 좀더 세밀히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한정숙)"

 

분명 한국의 다문화가정의 문제는 '거래로서의 결혼'에서 깊이 연구되었다는 데에 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내국인들끼리의 결혼도 '거래로서의' 측면으로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나쁜남자' 이아손을 좀더 지켜보자. 이아손은 메데이아를 질투에 사로잡힌 나쁜 여자로 비난한 다음, 자기가 새 아내를 맞이하기로 한 것을 열심히 옹호한다. 그것은 자기의 신분상승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자기와 메데이아 사이에 난 자식들의 앞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 앞서 언급했듯이 . 그는 코린토스 왕녀와 결혼하여 새로운 자녀를 얻으려고 하는 이유를 이렇게 강변한다.

 

"그리고 나는 자식들을 내 가문에 어울리게 양육하고,/ 당신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에게 형제를 붙여주고,/ 그들을 모두 동등한 지위에 올려놓고, 그들을 모두/ 한 씨족으로 묶음으로써 행복해지고 싶었소. 당신에게/ 아이들은 더 필요 없을 것이오. 하지만 나는 태어날 아이들로/ 이미 태어난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소."(562~567행)

 

메데이아의 머리꼭지가 확 돌아버리는 지점이다. 그리고 이아손은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냐고 묻는다. 코린토스 왕은 이미 메데이아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라고 명령했다. 그러므로 이아손은 뻔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아손은 모험하는 시대의 영웅이었으나 약자인 여성의 처지를 헤아리고 대화로 아루만지는 다정함이랄까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은 가지지 못하였다.

 

"당신도 새 신부 때문에 기분이/상해 있지 않다면 '아니오'라고 말하겠지요. 당신들 여자들은/어떤가 하면, 결혼생활만 원만하면 모든 걸 다 갖고 있다고/생각하고, 결혼 생활이 여의치 않으면 가장 훌륭하고/가장 아름다운 것조차 가장 적대적인 것으로 여기지요. "


여성 전체로 일반화하면서 사실은 질투가 아니냐, 왕녀 때문에 질투하는 것이라면서 적반하장, 그리고 결정적인 대사를 날린다.


"사람들이 다른 방법으로 자식들을 낳고,/여자 같은 것은 없어져버렸으면 좋으련만!/그러면 인간들에게도 불행이라는 것이 없어질 텐데!"(573~575행)


아이를 낳는 것만 아니라면.. 결혼도 여자도 필요없다는 식인데, 그렇다면 새로운 결혼도 앞서 말했듯이 출산을 위해서라는 얘기인가! 갈수록 태산이다. 어쨌거나 문제제기가 하고 만 것 같은데, <메데이아>를 함께 읽고 토론하는 자리에 제기할 발제 형식의 글을 미리 올렸다. 토론 결과로 다시 글을 올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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