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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란사 - 조선의 독립운동가, 그녀를 기억하다
권비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7월
평점 :
나는 드라마, 영화, 소설 할 것 없이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모든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몇 해 전, 개화기 시절 독립운동을 했던 양반 가문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방영됐었다. 너무너무 재밌게 봤었고 그 이후로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도 많이 찾아봤었다. '덕혜옹주'를 쓴 권비영 작가님의 신간을 보니 읽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으로 간 의화군이 일경에 붙잡혀 송환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화영은 그와 함께 떠난 란사를 떠올린다. 란사가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거짓이라고 믿으며 그녀를 회상한다.
하란사는 그녀의 본명이 아니다. 그녀의 본명을 알 수 없다. 어렵게 입학허가를 받은 이화학당에서 선교사님이 지어주신 영어 이름 '낸시'를 한자식으로 바꾼 이름이다. 성도 원래는 김 씨였다고 하는데, 남편인 하상기의 성을 따라 '하란사'가 되었다. 란사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서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그곳에서 의친왕을 만나게 되면서 독립 활동에도 함께 하게 된다.
란사의 딸의 이야기에서는 사실 그녀에게 마음이 가지 않았다. 아무리 어린 나이에 원하지 않는 결혼을 했다고 해도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요절한 딸의 죽음에 슬퍼하던 란사의 모습에 나도 마음이 아팠다. 딸을 잃은 후 그녀는 더욱더 여성들을 가르치고 독립운동에 열정을 쏟는다.
"여자라고 해서 차별받아야 할 일은 없습니다.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175쪽)
그녀의 거침없는 말과 행동은 책 처음부터 나와서 알고 있었지만, 이 시대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여성이 있었나 하고 깜짝 놀랐다. 윤치호가 발표한 글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며 반박한 그녀의 당당한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수많은 여성들이 얼마나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까. 모든 여성이 요리를 하고, 바느질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자신이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엔 누구나 다 동의한다. 요즘 너무 페미니즘을 외치며 책임과 의무는 뒷전이고 바라기만 하고 누리기만을 원하는 사람들이 생각나서 좀 씁쓸해지긴 했다.
"제 것 빼앗기는데 가만히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애국은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게 아니고 우리 모두 해야 하는 것이다." (본문 215쪽)
이 책에는 주인공인 란사와 대한 제국의 왕자인 의친왕 말고도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화영이를 비롯해서 강 씨 아주머니, 건어물 가게 이 씨 아저씨, 병수, 순이. 그들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10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저 사람들은 분명 내 이웃이었을 텐데. 매번 그런 생각이 든다. 과연 나는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 겪어본 적 없고, 앞으로도 겪을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선뜻 독립운동을 할 거라는 생각이 들진 않지만 한편으로는 꼭 큰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뭐라도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나 몰라라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름이 남겨진 많은 분들과, 이름도 없이 스러져 간 더 많은 분들. 그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임을 잊지 않도록... 기억하고 기억하고 계속 전해지길 바란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