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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떠났다 그리고 자유를 배웠다 - 짜릿한 자유를 찾아 떠난 여성 저널리스트의 한 달에 한 도시 살기 프로젝트!
마이케 빈네무트 지음, 배명자 옮김 / 북라이프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짜릿한 자유를 찾아 떠난 여성 저널리스트의
"한 달에 한 도시 살기 프로젝트"!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것이다. 단순히 어디를 갔고 무었을 보았다는 식의 여행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나도 적지 않은 나이에 15개국을 혼자 다녀보면서 여행 좀 해봤다는 사람이었지만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로 완전히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책이 내게 주는 의미는 강렬했고, 또 짜릿했다.
이 책은 부제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퀴즈쇼 우승자가 되어 상금을 덜컥 받아버린 바람에, 꿈꿔왔던 ‘한 달에 한 도시 살기 프로젝트’를 진행한 저널리스트가
그 글을 블로그에 공유한 아주 짜릿하고 모험이 넘치고 이야기이다. 때로는 오랜 여행자가 느끼는 당혹감과 낯섦, 고독감, 상실감도 여과없이 표현해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느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시드니를 시작으로 열두 개의 도시들을 한 달씩 살면서 느낀 생각과 감정, 삶의 가치들을 독자로서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볼 수 있었다.
단순히, 교훈을 주기위해서도 아니고 재미와 오락을 위한 여행기가 아닌, 작가가 스스로 고민해오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왜 우리가
“여행을 길 위의 학교” 라고 부르는지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이 책이 쓰일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퀴즈쇼의 상금으로 어마어마한 액수를 받았기에 실현 가능한 꿈이었다고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저자가 책 중반 무렵에 밝힌 것처럼 상금을 별로 쓰지 않고도 충분히 '한 달에 한 도시 살기 프로젝트'는 실현할 수 있는 것이었다. 고 말하며
(그녀 스스로도 놀란다) 우리는 이렇게 시도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무작정 편견과 두려움을 가지고 대하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는 스스로가
만든 한계라는 울타리를 쳐둔 채 울타리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스물 한 살에 처음 해외여행지로 인도를 택하면서 나 역시 두려워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내 마음 속 한 구석에는 왜 그런 곳을 가려는거야? 라는 물음이 나를 붙잡았고 또 한 편에서는 운명처럼 인도라는 단어가 내게 왔으니 가야해.
라고 말을 걸어왔다. 결국 나는 고민 끝에 내 운명의 소리를 들었고 그렇게 홀로 인도로 떠났다.
내 첫 번째 여행이 최상의 여행이었다고는 반추하기 힘들 것 같다. 클락션 소리와 거리의 소음과 치워지지 않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 구걸하는 빈민들을 바라보는 것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역이었다. 이럴려고 힘겹게 돈을 모아 온 여행이 아니었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첫 날 2천원짜리 숙소에서 빈대에 물린 허벅지를 벅벅 긁으며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때의 여행을 통해서 나는 한국과 전혀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험했으며 모든 변수와 우연이라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법을
배웠다. 20년간 한국에 살면서 나라는 존재는 타인의 판단과 평가에 익숙했었고 그러한 제도와 관념이 너무도 싫었던 나였지만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나 역시도 판단과 편견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인도사람들을 평가하고 인도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나의 모순되는 지점과 내 안에 뿌리박힌 관념과 제도들을 낯선 나라에 와서 털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때의 여행을 통해서 나의 이런 세밀한 부분들을 발견했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관용과 포용의 정신을
그때 처음 익힐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행이란 자신이 그동안 보지 못했던 부분을 보게 해주는 소중한 매개체이자 성장, 발전, 관용, 관대와 같은
긍정적인 명사들을 확장시키는 촉매제가 된다.
저자가 아르헨티나에서 배운 것처럼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뇌세포를 사용하게 되고 새로운 세계관을 덤으로 얻게”되는 것이다.
새로운 문화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의식의 확장을 불러일으키고 이는 새로운 세계관을 있는 힘껏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이렇게 오랫동안 여행을 하는 것이 기쁘고 즐겁기만 할까?
나는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3개월간 ‘본질적인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라 이름붙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매일 매일이 경이로움과 환희의 연속이었던 것은 아니다. 여행 중간 중간 찾아오는 이름모를 슬럼프와 우울증으로 하루 꼬박 앓았던 적도 있다.
간간이 SNS를 통해 확인하는 친구들의 소식에 나 혼자 뒤쳐져있는 건 아닐까? 기죽어있던 적도 있었다.
세계와 연결되기 이전에 가까운 사람들과 더욱 친밀하게 연결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고민들을 하면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머나먼 곳까지 떠나온 나 자신을 원망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나만 그런게 아니었나 보다. 작가 역시 여행 중반에 닥친 고충을 이야기한다.
“계속해서 작별하는 것도 지겹고 계속 0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도 이젠 싫어” 라고.
이러한 감정들이 여행하는 중에 휘몰아치는 건 아주 당연한거였다. 사실
여행을 떠났다고 해서 무턱대로 행복해지는 건 아니지않은가, 여행도 삶의 과정이고 일부일 뿐인데.
그런 생각을 하니 오히려 낯선 풍경과 따뜻하게 손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길 위에서, 사람들 속에서, 다양한 문화들 속에서 성장해나갔다.
“내 삶의 최대 장점은 앞으로 무엇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어차피 살아보면 알게 될 테니까.
1년의 여행이 나를 변화시킨 걸까? 그렇지 않다. 이미 내 안에 있었던 걸 그저 끄집어냈을 뿐이다.”
우리는 삶이란 미리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배웠다.
계획을 가지고 살지 않으면 인생을 멋대로 사는 사람이란 오명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여행을 한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삶의 우연성과 변수는 또다른 가능성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삶이라는 여행을 끊임없이 추구하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내게 여행이란 단순히 이곳에서 저곳으로 시,공간을 이동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에게 여행이란 ‘나’라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공간이자 기회였다.
샌프란시스코다혜, 오사카다혜, 델리다혜는 다 다른 인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각 기 다른 나는 그 모든 총합의 ‘나’였다.
여행은 이런 모순되는 지점을 받아들이게 해주었고 이제는 모순과 모순 사이에서 어떤 균형으로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나는 세계여행을 한 것이 아니라 나를 여행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