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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 2021 뉴베리상 대상 수상작 ㅣ 꿈꾸는돌 28
태 켈러 지음, 강나은 옮김 / 돌베개 / 2021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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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서부터 느껴지는 우리나라 고전에서 등장할 법한 호랑이의 모습.
2021뉴베리수상작인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의 표지예요. 그런데 작가가 조금은 낯선 이름의 외국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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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태 켈러는 1998년 아메리카 북어워드 수상작 『종군위안부』의 작가 노라 옥자 켈러의 딸이다. ‘태’(TAE)라는 이름은 한국에서 이민 온 외할머니의 이름 ‘태임’에서 첫 글자를 따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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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에서 태 켈러는 자신을 “4분의 1만 한국인”이라고 설명하기를 그만두고 “완전한 내가 되고 싶어서” 어릴 적 외할머니에게 들었던 옛이야기들을 다시 찾았다고 말한다. 그 결실이 바로 이 책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이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때만큼은 나는 부분적인 백인도, 부분적인 아시아인도, 4분의 1 한국인도, 혼혈도 아니었다. 그저 완전한 나였다. 뼛속에서부터 그것을 느꼈다. 수년이 흘러 대학을 가기 위해 하와이를 떠나게 되었을 때, 나는 그 이야기들을 버렸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 그저 어쩌다 보니, 마치 그 이야기들이 내 침대 밑으로 굴러 들어가 먼지만 쌓이게 되듯 그렇게 되었다. 머지않아 나는 그 이야기들이 내 삶에서 사라졌다는 사실마저 잊었다. 그러다 내게 그 이야기들이 무척이나 필요함을 깨닫게 된 것은 대학 재학 기간 후반, 누군가가 내게 한국인이냐고 물었을 때였다. “4분의 1만 한국인”이라고 나는 대답했다. 하자마자 잘못된 대답이라 느꼈다. 한국인이냐는 질문에는 언제나, 퍽 단순하게도, 그렇다고 하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내 피를 부분 부분으로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나뉘지 않은 완전한 내가 되고 싶어서, 나는 다시 그 이야기들을 찾았다.
"4분의 1만 한국인"이라는 말에서 외할머니는 한국인, 그리고 외할아버지, 아버지는 미국인(또는 다른 나라 이민자일수도 있지요)으로 추측되요. 그런데 이 책을 읽는동안 태 켈러의 자서전이 아님에도, 태 켈러의 삶, 주변의 인식 등이 주인공 '릴리'에 반영되어 나타남을 알 수 있었어요. 그 4분의 1의 한국인의 피를 물려주신 외할머니가 태 켈러에거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도요.
‘조아여’(조용한 아시아 여자애)
우리가 생각하는 "좋아요."가 아닌 "조용한 아시아 여자애"
물론 원서에서는 비슷한 다른 영어약자로 쓰였겠지만, 저 말에서 느껴지는 주인공 릴리는 아마도 태 켈러 자신이였을지도 모르겠어요. 아니면 조아여에서 벗어나고자 필사의 노력을 한 릴리의 언니와 같은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는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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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 시작, Thanks to 같은 책의 헌정글로 쓰여진 글이에요.
Halmoni 우리 말로 하면 할모니에 가깝겠지만, 책 중간중간 이렇게 우리 나라 말을 영문으로 표기한 단어들이 등장해요. 보는 동안 반갑기도 하고, 표현이 재밌기도 했어요.
실제로 원서로 읽는 사람들에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도 궁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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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시작부에요.
'나는 투명 인간이 될 수 있다.'라는 말에서 갑자기 판타지, SF, 히어로물들이 다 떠올랐는데,
몇 줄을 읽고 나니 가슴이 쓰렸어요.
선생님들도 친구들에게도 존재감이 없는 아이.
그래서 있는지 조차 몰라서 투명 인간이 되는 아이.
동양인아이들, 또는 동양계 혼혈아이들이 서양권에서 살게 되면 겪는 일들일까요?
원래 조용하고 수줍은게 아니라, 그게 편하다고 느끼기에 타의로 만들어지는 모습이 아닐까요.
혹시 그래서 이 소설을 읽게 되면 인종차별을 당하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져서
너무 우울하거나 슬프거나 하진 않을까 걱정스러웠어요.
아이가 읽는동안 동양인이어서, 한국인이서 혹시 외국에 나가게 되면 똑같은 대접을 받게 될까 두려움이 생기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함께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기우였어요. 오히려 '조아여'릴리의 성장기, 강인한 극복기라고 생각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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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언니의 언쟁 속에서 역시나 투명 인간이 된 릴리.
그러다가 갑자기 호랑이를 발견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제대로 시작이 되요.
엄마도 언니도 보지 못한, 릴리만 본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나 나올 법한 거대한 호랑이.
길을 막고 서있는 호랑이 때문에 차를 세우라고 했지만 결국 지나치고만 그 뒤로,
차에 치여 죽었을거라 생각한 호랑이는 보이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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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본 것이 실제인지 멀미탓인지 확신하지 못하지만
벌렁이는 심장을 가라 앉히고, 릴리가 가장 먼저 떠올린건 할머니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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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릴리와 언니에게
"옛날 옛날 호랑이가 사람처럼 걷던 시절에.."처럼 한국식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곤 했어요.
바로 여기서 호랑이와 할머니, 릴리의 관계가 생겨난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호랑이이야기를 들은 할머니는
바로 할머니가 이야기를 훔쳐서 온걸거라는 이야기를 해주어요.
병 속에 담긴 별.
그 별이 사실은 이야기라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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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릴리의 할머니는 편찮으세요. 병원에 계시죠.
"서툴면서도 능숙한 영어로."
할머니의 영어는 늘 조금 부족하게 나와요.
고조할머니와 한국에서 함께 살던 릴리의 할머니.
릴리 할머니의 엄마, 즉 증조할머니는 미국으로 가셨고, 엄마를 찾아 릴리의 할머니 역시 미국으로 왔지요. 할머니는 엄마를 만나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미국에서 시작된 할머니의 삶.
그래서 할머니는 조금은 부족한 영어와 한국어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어요.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등장하는 떡, 김치, 고사, 같은 우리 정서, 우리말 단어들이 나와서 순간순간 재밌기도 반갑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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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책을 읽다보면 우리 옛 이야기들과 비슷한 이야기들이 나와요.
구전이야기다보니 할머니가 조금 다르게 이야기했을 수도 있고, 태 켈러의 기억이 조금 변한 걸 수도 있겠지만 큰 줄기로 보면 "해님달님"이야기에요.
매 년 릴리와 언니에게 들려주었다는 이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호랑이.
어쩌면 그 호랑이가 추방당한 이후에 할머니를 찾아온걸지도 모르겠어요.
이 릴리의 눈에만 보이는 호랑이.
과연 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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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힌트가 되는 부분들이에요.
호랑이는 할머니를 해치러 온 적일까요? 아니면 친구일까요?
할머니가 훔쳐갔다는 이야기들을 찾아서 되돌려주면 할머니의 병이 나을 수 있을까요?
<이 사진은 스포일러를 싫어하시는 분이시라면, 확대하여 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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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반전인 듯한 호랑이의 정체도 있지요.
책을 읽는동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전개 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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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슴 아픈 할머니와의 이별도..힘들고 아프게 찾아와요.
참 너무 슬프고 아팠어요.
릴리의 가슴에 생겨난 구멍, 그런데 그걸 상실을 넘어서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아이.
할머니의 죽음도, 용감한 할머니가 이미 떠날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아이.
호랑이와 함께한 시간동안 릴리는 이만큼 성장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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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의 이별로 릴리는 좌절하지 않아요.
늘 할머니가 자매에게 해주었듯 옛날 이야기를 하며,
더이상 안 보이는 아이, 투명인간이 아닌
눈에 안 보이는 것을 보는 아이로 자기를 정의 하지요.
정말 더 용감한 호랑이 소녀가 되었어요.
책을 읽는동안
여러가지 감정이 드는 책이었어요.
호랑이와의 모험이라면 모험일 수 있는 부분,
릴리가 극복해 나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뿌듯하고 재밌기도 했고
중간 중간 회상장면으로 등장하는 할머니와의 시간들,
그리고 편찮으신 할머니와의 시간들, 투병하는 모습과 떠나는 모습들에서
그리움과 애절함도 느껴졌어요.
이미 뉴베리수상작이기에 외국에서도 인정받을 만큼 훌륭한 소설임을 넘어서
이 책은 한국인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더 담겨져 있어요.
아마 이 상을 선정한 사람들도 한국인이 아니라면 느끼지 못했겠지요.
뉴베리 자체가 아동문학상이지만,
저학년이라면 스토리 위주로 읽게 될 것 같아
이 책이 줄 수 있는 것을 모두 받지 못해 조금은 아쉬움이 느껴질 거 같아요.
이 책에 담긴 것들을 모두 이해하고 충분히 감정적으로 느낄 수 있을
고학년부터 중등, 고등, 성인까지도 두루두루 추천하겠습니다.
-엄마표 홈스쿨링을 도와주는 <도치맘 카페>를 통해 <돌베개>에서 책만 제공받아 가이드 없이 제가 솔직하게 적은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