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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처럼, 채은이 - 그날에도 우리는 사랑했다
김윤환 지음 / 삼인 / 2026년 6월
평점 :



책을 배송받으면 읽기 전에 항상 하는 습관이 있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천천히 넘기며 책 한 권을 훑어보는 일이다. 작가의 진가는 글을 읽어야 비로소 알 수 있다면, '책'이라는 물성의 진가는 그 짧은 순간에도 어느 정도 드러난다고 믿는다. 종이의 질감과 디자인, 여백, 활자의 배치, 페이지마다 스며 있는 정성은 책을 펼치는 순간 가장 먼저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그런 의미에서 삼인출판사의 신작 『기적처럼, 채은이』는 오랜만에 만난, 페이지 하나하나에서 섬세한 손길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글을 읽기도 전에 이미 한 권의 책으로서 충분한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김윤환 작가는 제목 속 '채은이'의 아빠다. 2014년, 그의 셋째 아이로 태어난 채은이는 출생 당시 '특이사항 없음'이라는 판정을 받은 평범한 아이였다. 그러나 불과 몇 달 뒤, 당시에는 이름조차 낯설었던 희귀 유전질환을 가진 아이가 되면서 그 '평범함'이라는 판정은 가족에게 오히려 지울 수 없는 아쉬움이 되었다.
병을 그대로 방치하면 자가호흡조차 어려워질 수 있는 절박한 상황. 하지만 작가와 가족은 절망에 머무르기보다 길을 찾기로 선택한다. 치료법을 찾아 연고 하나 없는 미국으로 건너가고, 어렵게 임상시험에 참여한다. 투여받는 약이 실제 치료제일지, 위약일지조차 알 수 없는 시간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버텨낸 끝에, 채은이는 2026년 현재도 가족과 함께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한 권의 책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었을 수많은 시간과 감정들. 그 무게를 감당하고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깊게 고민했을 김윤환 작가는 지나치게 감정을 앞세워 독자에게 버겁게 표현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대신 담담하지만 그때의 감정과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는 문장으로 가족이 지나온 시간을 들려준다.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기적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오늘을 살아낸 시간들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아이를 품에 안았다. 작고 가벼운 몸이 팔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 제 몸의 무게를 온전히 세상에 맡기는 법 밖에 모르는, 연약한 존재의 무게였다. -38p
가능성은 희망이 아니라 조건을 통과해야 하는 절차라는 사실을 우리는 그때 처음 배웠다. -13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