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임 스티커 - 제14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9
황보나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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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다. 이 책을 읽고 처음 느낀 감각은 '따뜻함'이었다.
시종일관 시크하고 무심한 말투로 얘기하지만 사실은 마음 여리고, 언제나 편견 없는 시선으로 세상과 타인을 보는 중학생 은서에게서 사춘기 여학생의 발간 얼굴이 그려졌다.

은서를 둘러싼 인물들 역시 다정하거나 귀엽다. 혹은 다정하고 귀엽거나. 어느 날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다가와 비밀을 불쑥 털어놓는 같은 반 아이 강민구, 어쩌다 가게된 민구네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으며 친해진 명두 삼촌을 비롯한 강민구의 가족들. 그리고 은서가 마음 편히 비밀을 말할 수 있는 말벗인 한 살배기 동생 루비, 늘 따뜻한 진심으로 은서를 대하지만 아직은 어색한 루비 엄마까지.

하지만 은서의 마음에 밝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원래 없던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고 각자 잘 살자는 말을 남기고 떠난 엄마, 그 애의 모든 것이 신경 쓰이지만 정작 나를 소중히 대하지 않는 친구인 혜주는 은서의 어둠 속에서 뾰족하게 빛난다. 네임 스티커에 이름을 써서 화분에 붙이고 뭔가 (안 좋은 것)를 빌면 이루어진다는 민구의 말에 혜주와 엄마의 이름을 적을 정도로.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민구가 내민 네임 스티커를 받으면 나는 거기에 어떤 이름을 적을까. 마음 깊은 곳 자리한 나의 어둠은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을까.

*

"속상하지는 않으세요?"
"마음이 이어져 있는데 뭣이 속이 상해."
"이어져 있다고요?"
"마음에는 기운이 있어. 그래서 떨어져 있어도 이어질 수가 있는 거야."

민구네 엄마가 하는 말의 의미를 모를 것 같기도 했고 알 것 같기도 했다. 마음의 힘이라면, 혜주의 일로 나도 경험치가 있으니까. - p.146-147

"너는 어때?"
"뭐가?"
"엄마랑 같이 살고 싶지 않아?"
"어떤 가족 관계는 거리두기도 필요한 것 같아. 엄마랑 나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마음은 멀지 않다고 생각해."

불쑥불쑥 어른처럼 말하는 민구는, 민구네 엄마와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어떠한 생각에 잠길 때 민구는 힘을 주어 입을 다물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입 주변에 생기는 촘촘한 주름들이 내 입술을 간지럽혔다. 나는 간지러움을 감추기 위해 입술을 안으로 말아 숨겼다. p. 148-149

어떤 가족 관계는 거리두기도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가장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많은 상처와 아픔을 주기도 하니까. 그리고 때로는 피를 나눈 가족보다 더 따뜻하고 힘이 되는 존재가 곁에 있기도 하고, 우연히 닿게된 옅은 인연에게서 뜻밖의 위로를 받기도 하니까. 이 작품에서 내가 가장 애정하는 은서와 명두 삼촌처럼.

*

무엇인가를 좋아함에서 오는 상처와 어둠은 내 마음이지만 마음대로 버릴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다만 책을 덮으며 한 번 더 바라게 될 뿐이다. 이 책 속 인물들처럼 우리가 살아갈 때 찾아오는 따뜻하고 다정한 순간이 언제고 우리의 마음 속 어둠을 산뜻하게 밝혀주기를.

* 본 서평은 문학동네로부터 도서 지원받아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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