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경고 - 우리 안의 간신 현상
김영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역사의 경고


 

고양이           - 다산 정약용


 

남산골 한 늙은이 고양이를 길렀더니

해묵고 꾀 들어 요망하기 여우로세


 

밤마다 초당에서 고기 뒤져 훔쳐 먹고

작은 단지 큰 단지 마구잡이 깨뜨리네


 

어둠 틈타 교활한 지 제멋대로 다하다가

문 열고 소리치면 형체 없이 사라지네


 

등불 켜고 비춰보면 더러운 자국 널려 있고

이빨자국 나 있는 찌꺼기만 낭자하네


 

늙은 주인 잠 못 이뤄 근력은 줄어가고

이리저리 궁리하나 나오느니 긴 한숨뿐


 

생각할수록 고양이 죄 극악하기 짝이 없네

긴 칼 빼어들고 천벌을 내릴거나

.

.

.

후략


 

역사학자 김영수님이 위즈덤 하우스 출판사의 <역사의 경고>- 부제 ‘우리 안의 간신 현상’이라는 책에서 실은 우화시 이다. 쥐를 쫓으라고 키운 고양이가 온 집안을 엎어놓은 형상이라니…... 긴 설명 붙이지 않아도 우리의 뇌리에 자동으로 떠도는 망령들이 있다. 전 국민을 상대로 집단 멘탈 붕괴 대하 드라마를 써 나간 그들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영원히 지워내고픈 망령에 다름 아니다. 비단 그들만은 아니라 하나,천지개벽이 되어 24시간 곳곳에 감시의 눈들이 불을 켜고 있어도 교활한 도둑 하나를 지켜내기 힘들다.


 

“청렴하지 않으면 받지 않는 것이 없고,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하지 못할 일이 없다.”

(不廉則無所不取, 不恥則無所不爲:불렴즉무소불취,불치즉무소불위)

이 한 문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간신된 자들의 본질을 잘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권력의 속성은 인성을 파괴하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권력이 독점화되고 사유화되면 통치자는 독재자· 폭군· 혼군 · 간군으로 흐르며 그에 기생하려는 간신들이 생겨난다. 이들은 이란성 쌍생아의 관계로서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고 만다. 우리나라도 역사가 보여준 엄중한 경고를 무시한 댓가를 다시 톡톡히 치뤘다.


 

책에서는 간신들의 행태가 천태만상으로 그려진다. 부부,형제,부자 등 간신 짓도 세트로 대를 이어 하는 모습들에서 인간의 악행이 어디까지 가능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동한 시대 양기는 마누라 손수와 환상의 커플을 이루었다. 자신이 챙길 수 있는 온갖 수단은 당연지사 나라의 금고 돈까지 무시로 빼내는 대담성,그렇게 긁어 온 더러운 돈을 사채놀이로 불린 손여사. 당시의 패션과 사교계를 이끌기도 했던 손수의 수완은 우리 현대사의 이철희와 장영자들 떠올리게 한다. 그들의 친인척 사촌의 팔촌까지 콩고물을 먹고 떵떵대며 살았다 하니 괜한 부아가 치솟는다.


 

600년 전 명나라의 6대 황제 영종(주기진)과 왕진은 혼군과 간신의 환상적 국정농단을 보여준다. 남-남이 여-여로 바뀌었을 뿐,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속이 다 끓는다. 환관으로 살아내는 결핍과 콤플렉스 때문이었을까? 탐욕을 채우기 위한 공작은 한 사람의 영혼을 송두리째 뽑아놓았다. 최태민 일가가 상실감에 사로잡혀 있던 박근혜를 우주의 기운을 운운하며 영적으로 사로잡은 것처럼…...


 

왕진은 주기진을 와랍 정벌이라는 사지로 몰아갔다. 후퇴하는 상황에서도 끌어모은 금은보화를 포기하지 못하다가 적군 와랍군이 아니라 자국의 금위군관 번충에 의해 철퇴를 맞고 최후를 맞았다. 황제 주기진도 와랍의 포로로 끌려갔다가 가까스로 죽음만은 면하고 돌아왔다. 그런 와중에도 주기진은 왕진의 목상을 새기고 초혼제를 지내고 묻어주기까지 했다하니 영적으로 사로잡힌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 책 내내 이런 간신들의 행진만 이어졌다면 급 우울해졌을 것 같다. 다행이도 제2부에서는 역대 간신들을 어떻게 알아볼 것이며 어떠 대책이 필요할지에 대해 준비라도 하려는 듯 간행을 심층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2부에서는 이런 간신들에 빌붙어 곡학아세 하고 있는 지식인들의 양태가 가감없이 드러나서 어용학자나 폴리페서들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같이 불러온다. 제3부에서 간신현상들에 대한 엄중한 역사적 경고들을 다루고 있다.


 

사마천이 ⟪史記사기⟫ <佞倖列傳영행열전>에서 미소년 미자하가 아첨과 잘 생긴 얼굴로 영공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일을 기록하며 여자가 미모로 남자의 비위를 맞추듯이 배운 자나 벼슬살이를 하는 자들 역시 갖은 방법과 수단으로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위해를 경고하고 있다. ⟪순자⟫에 실은 공자의 간신론이나 강태공의  ⟪육도⟫ <문도>편에서 제시한 육적 칠해의 분류들을 자세히 보면서 지인지감을 높여야 할 일이다. ⟪한비자⟫<팔간>에서 간신이 나라를 망치는 8가지 방법을 잘 보면서 행동강령이나 가치관을 세워야 한다.


 

왕충이 쓴 ⟪논형⟫<답녕>편에서 아첨꾼을 식별하는 방법을 참고할 수 있다. ⟪순자⟫<신도>편에서 간신의 종류를,서한시대 유향이 쓴 ⟪설원⟫의 ‘육정육사(六正六邪)’에서 신하된 이들의 도리를 살필 수 있다. 홍자성이 쓴 ⟪채근담⟫의 일갈이 아주 인상적이다.’ 차라리 소인이 꺼리고 헐뜯는 사람이 될지언정 소인이 아첨하고 기뻐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경고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간신은 비를 세우고 이름을 새겨 영원히 기억하게 하라.’는 역설로 우리가 간신들의 간행을 잊지 않아 법과 제도를 제대로 세우라는 주문을 한다.


 

‘촛불시위’의 시민혁명이 새 정권을 창출했다. 누가 되든 그녀만 못할 리는 없다라는 자조적 푸념이 반가울 수 없다. 선거가 치뤄지는 동안 곳곳에서 위험 징후가 보였다. 정치란 결코 혼자 하는 게 아닌데 선거판의 승리를 위해 급조 동원된 지지세력들을 보다보니 또 다른 개념의 파시즘이 존재할 수도 있겠다 싶어 우려도 된다. 새 정부의 청사진을 그려갈 정치인들이 특히 이 3부의 경고를 귀담아 듣고 눈여겨 보며 가슴에 제대로 새기면 좋겠다. 내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그 사람들부터 다시 재검증 절차를 거쳐서 진정성있는 정부를 세웠으면 좋겠다.   부제로  ‘우리 안의 간신 현상’으로 전한 것처럼 충신과 간신은 별개의 개체가 아니며,누구라도 간신이 될 수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안에 꿈틀대는 간신 현상에 대해 성찰을 통해 간신이 활개를 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선 안된다.



부디 대통령 선서 후 국민들에게 드린 글에서 그 자신이 말한 것처럼,임기 5년 후 청와대를 떠날 때, 평범한 시민으로 다정한 이웃으로 대통령사의 신기록으로 영원히 남아 있을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또한 시민들의 촛불 자각이 냉엄한 역사의 경고로서 형형하게 빛나고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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