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눈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11월 인터넷에 흥미로운 기사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한 메이저리그 투수의 킬리만자로 등반 준비 소식이었다. 연봉 425만 달러(약 50억 원)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가 해발고도 5,895미터의,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을 올라야만 했던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중학생 시절 읽었던 헤밍웨이의 단편 『킬리만자로의 눈』이 준 감동 때문이었다. 그 감동은 꿈이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그 투수는 올해 1월 킬리만자로의 정상에 올랐다고 한다. 평생의 꿈을 이룬 그는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이렇게 어린 소년에게 감동과 꿈을 선물했던 헤밍웨이의 단편 13편을 묶은 단편집 『킬리만자로의 눈』 (문학동네)이 출간되었다. 『노인과 바다』가 작가의 노련함을 보여주는 소설이라면 이 단편집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 노련함이 ‘형성되고 축적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시인 거트루드 스타인의 말처럼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적인 문인(文人) 중 한 명이었던 어니스트 헤밍웨이,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체험한 후 등단한 그의 작품들에는 환멸. 공허와 고독, 그러면서도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우리 모두를 위한 기록 <킬리만자로의 눈>

 

『킬리만자로의 눈』은 헤밍웨이 최고의 단편으로 사랑받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생생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작품은 실제로 킬리만자로산과 인접해 있는 아프리카 케냐의 암보셀리 국립공원에서 집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소설이 발표된 1930년대의 암보셀리 지역은 국립공원이 아니었으며 사냥도 가능했다.) 이 시기 그는 이미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라 있었지만 침체기를 겪고 있었다. 무릎이 가시에 긁혔을 때 완벽한 치료를 못해 오른쪽 다리가 썩기 시작하는 소설가 해리는 제대로 된 글이 나오지 않아 초초해하는 헤밍웨이 자신과 닮아 있다.

 

이제는 잘 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알게 되면 쓰려고 아껴두었던 것들을 영영 쓰지 못할 터였다. 뭐, 그것을 써보려고 애만 쓰다 결국 쓰지 못하는 일도 함께 없어지는 것이지만, 사실은 영영 쓸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랬기 때문에 옆으로 밀어놓은 채 쓰는 일을 미루어왔던 것인지도 몰랐다. (p. 14)

 

남편과 한 자녀까지 잃어버린 미망인 그녀(헬렌)에게 해리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다. 그녀는 그를 통해서 새로운 삶을 구축했고 그 또한 자신의 옛 것을 팔아 안정과 안락을 얻었다. 그러나 그 삶은 너무나도 공허하게 끝을 향해 달려간다. 마치 하얗게 빛나는 킬리만자로 정상의 만년설이 지구온난화로 인해 소멸되어 가는 것처럼 말이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어찌 보면 일장춘몽과 같은 인생을 영위하고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기록이다.

 

허무한 존재들의 안식처 <깨끗하고 불이 환한 곳>

 

일명 두꺼운 책의 대명사…….로 불리는 『율리시스』의 저자 제임스 조이스는 헤밍웨이에게 문학과 삶 사이의 장막을 축소한 작가라는 찬사를 보내면서 단편 『깨끗하고 불이 환한 곳』을 언급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늦은 시간 텅 빈 카페에 홀로 남아 있는 노인, 그리고 두 웨이터가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절망에 빠져 자살을 기도했던 노인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웨이터들의 상반된 시선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연로(年老)한 손님이 어서 집에 가주기를 바라고 나이가 위인 사람은 나뭇잎 그늘에 앉아 있는 손님의 심정을 이해했다.

 

“잠들고 싶지 않은 그 모든 사람 가운데 하나이고, 밤에 불을 켜두어야 하는 그 모든 사람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지.” (p. 131)

 

8페이지에 불과한 이 짧은 소설의 전면에는 허무가 깔려 있다. 연장자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것이 알고 보면 허무 그 자체라는 것을. 또 그들이 필요로 하는 건 깨끗하고 불이 환한 곳, 즉, 안식처라는 사실을……. 솔직히 내가 이 이야기의 참맛을 느끼기엔 아직은 좀 이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삶의 허무에 대해 논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게다. 『깨끗하고 불이 환한 곳』은 독자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혹시 당신에게는 내가 필요하지 않나요?”라고.

 

영웅이 되기를 소망했던 청년 <이제 내 몸을 뉘며, 가지 못할 길>

 

이 단편집에 포함되어 있는 『이제 내 몸을 뉘며』와 『가지 못할 길』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품이라고 한다. 영웅이 되기를 소망했던 청년 헤밍웨이는 적십자사의 운전병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두 단편을 통해 우리들은 그야말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었던 젊은 시절의 그를 간접적으로 만나 볼 수 있다.(그때 헤밍웨이의 나이가 19세였다고 하니 두려울 게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영혼이 언제 빠져나갈지 모르는 전쟁터, 여기저기 누워있는 시체들, 더운 날씨로 인해 그들의 몸은 부풀어 오른다. 그런 상황 속에서 편히 잠을 잔다는 건 쉽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수면욕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다. 그 욕구를 물리치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유년시절 송어낚시를 하던 냇물을 떠올리고, 기도문을 외우고, 깨어있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젊은 운전병은 자신이 원하던 영웅이 되지는 못했지만 훈장을 받고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을 쌓는다.

 

단편소설은 적은 분량 안에 심오한 메시지를 담아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간결해야 하는데 바로 그런 면에 있어서 헤밍웨이가 제격이라고 하겠다. 그는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체를 구사한 작가였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킬리만자로의 눈』은 대작가의 탄생과정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인 동시에 그의 특색 또한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끝으로 라이프지의 글을 인용하며 리뷰를 마친다.

 

헤밍웨이의 스타일은 간결하고 깔끔하면서도 생생하고 풍부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스타일을 흉내 냈지만 그 누구도 똑같이 해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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