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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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태어나서 삶을 즐기다 죽는 사람이 있고 삶이라는 외줄 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있다. 배우들이 있는가 하면 줄타기 곡예사가 있다.” (막상스 페르민)

 

영국 근대소설의 개척자로 불리는 새뮤얼 리처드슨이 “소설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 이후 수많은 작가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랜만에 새 장편소설 『위풍당당』으로 우리들을 찾아온 성석제, 익살과 재치가 있는, 진정한 이야기꾼이라는 평가를 받는 소설가가 바로 그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로 사람들의 배꼽을 빼놓을 것인가.

 

하늘에 닿는다는 이름을 가진 백여 미터 높이의 절벽인 지천벽 아래에 있는 용소 근처에 자리 잡은 마을 같지 않은 마을이 『위풍당당』의 배경무대이다. 속세에서 멀리 떨어진 궁벽한 강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은 모두 여섯 명이다. (여산, 영필, 소희, 이령, 새미, 준호) 그들이 인적 드문 곳에 거주하게 된 사연이 살짝 궁금하긴 하지만 그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한다.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삶을 영위해 가던 사람들의 공간에 침입자들이 들이닥치면서 위기가 찾아온다. 성석제의 손을 통해 표현되는 위기, 분명 심각한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중간 중간에 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실제로 많이 웃었다.) 『위풍당당』은 작가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는 소설이다.

 

유쾌한 코미디 속에 숨어있는 진실

 

생리대를 사러 산 넘어 태강면 면소재지까지 간 새미, 그런데 새미를 지켜보는 눈들이 있었다. 그들은 양정묵이 이끄는 건달, 아니 조폭들이었다. 새미는 조폭들의 끈적끈적한 시선을 눈치 채고 숨지만 정묵의 똘마니인 세동에게 발견되고 만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녀를 뒤따라왔던 동생 준호가 세동의 뒤통수를 후려쳐 큰 상처를 입힌다. 바로 이 일이 발단이 되어 촌스러운 강마을에 조폭들이 침입하게 되는 것이다. 약간은 심심하게 진행되던 이야기는 마을을 접수하려는 정묵 일행과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려는 여섯 사람이 대치하는 상황이 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고비의 순간이 되었으나 성석제의 표현은 유쾌하기 그지없다.

 

“아 뭐, 이런 개젓같은 일이 생긴 거야? 어이, 아저씨 아줌마 지금 뭐하자는 거야? 우리 올려보내줘.”

양구가 하늘을 향해 소리친다. 하늘에서 누군가 말한다.

“저 봐, 저 말하는 거 좀 봐. 싸가지 없고 버르장머리도 없고 예의도 없고. 조폭 맞아. 진짜 조폭이라고. 재들이 밖으로 나와 보지? 우린 저 중에 한 놈도 못 당할걸.” (p. 138~139)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시골 사람들에 의해, 똥냄새 나는 구덩이에 빠져 죽을지도 모르는 상태에 빠진 조폭들, 그야말로 주객전도가 된 것과 같다. 이처럼 독자의 웃음보를 자극하는 장면들을 목격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성석제의 소설(글)이 해학적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위풍당당』 역시 작가의 입담이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게 이 소설의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작가의 말’을 통해 『위풍당당』이 진정으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주어진 운명으로서의 식구가 아닌, 자신이 선택해서 한 식구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외부의 부당한 간섭과 편견에 맞서 싸우며 가까이서 부대끼다 어느 결에 서로의 세포가 닿고 혈액이 섞이며 연리지처럼 한 몸이 된 사람들, 그들에게 강 같은 평화가 함께 하기를. (‘작가의 말’ 중에서......)

 

운명을 거부한 사람들, 그리고 피안의 세계

 

자! 이제 궁금증을 해결할 때가 되었다. 전혀 모르는 사이(새미와 준호는 남매)였던 여섯 사람은 왜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 강마을 한 가족이 되었을까.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면 이들에게 각각 아픈 과거가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지역사회 유력자의 후취로 들어가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노력했지만 인정받지 못한 소희, 부잣집의 적장자였으나 친인척들의 농간에 의해 모든 것을 잃고 정신병자 취급까지 당한 영필, 설상가상으로 아내의 쓸쓸한 죽음은 그에게 큰 충격을 준다. 자신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모욕과 아픔을 주고 딸까지 죽인 남편을 피하는 마지막 방법으로 스스로 몸을 던졌던 이령, 의붓아버지에게 추행을 당하는 새미와 그 사실을 알게 된 준호……. 이런 연유들로 여섯 인물들은 운명이 정한 길을 따르지 않았다. 정형화된 틀보다 자신의 선택으로 한 식구가 된 사람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한 몸이 된 그들, 그네들에게 있어 마을이라는 공동체는 목숨만큼이나 소중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외부에서 볼 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세계 같지만 그곳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꿈꾸는 피안(彼岸)의 세계인지도 모른다. 강을 배경으로 여유롭게 떠 있는 일업편주, 그 위에서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고 자연과 영혼이 연결된 세계, 상처받은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자연의 품에서 치유 받는다. 그 공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조폭들과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위풍당당』에는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조폭 선발대를 잡은 마을 사람들이 흥분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술에 취해 미친 듯이 노래하고 춤추는 대목이다. 모든 것을 잊고, 정묵이 지켜보는지도 모르는 채 그들은 몸을 흔들어댄다. 마치 장례식장에서 춤을 춘다는 어느 나라의 조문객들처럼 참 아이러니하다.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코미디 속에 진실이 숨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성석제는 이 소설이 새로운 식구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했지만 그 이면에는 숭악하고 못생긴 늑대 호랑말코들(현대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한 비판이 있다. 그리고 그는 소망한다. 모든 이들에게 강 같은 평화가 함께 하기를.

 

프랑스의 작가 막상스 페르민은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삶을 즐기는 사람과 애쓰는 사람,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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