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의 유명한 영화감독 우디 알렌의 <매치 포인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소포클레스가 말했지. 태어나지 않는 게 더 큰 축복일 수도 있어.” 소포클레스는 아이스킬러스, 유리피데스와 더불어 그리스 3대 비극작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또한 그는 삶에 관한 수많은 명언들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과연 태어나는 것보다 태어나지 않는 게 더 큰 축복일까. 이 말에 대해서는 아마도 의견이 분분하지 않을지……. 소설가 김영하가 5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주인공 ‘제이’의 삶을 보노라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보게 된다. 이 소설은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제대로 된 사랑도 받지 못했지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한 평범하지 않은 소년의 짧은 일대기를 이른바 김영하식 슬픔의 미학으로 표현하고 있다.

 

귓가에 솜털이 보송한 소녀가 고속버스터미널의 한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는다. 그 아기는 어린 친모의 손을 떠나 작은 구멍가게를 하는 돼지엄마의 품으로 넘어간다. 그 아이의 이름이 바로 ‘제이’이다. 그에게 있어 돼지엄마는 단순히 자신을 키워준 여성이 아닌 마음의 안식처였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마음의 안식처는 점점 황폐해지고 멀어져간다.(술과 마약으로 인하여) 결국 제이는 돼지엄마에게 버림을 받게 된다. 그 후 보육원을 거쳐 차마 입에 담기에도 거북한 십대들의 밑바닥 삶 등을 체험하며 성장한다. 그렇게 제이는 책 후반에 나오는 진샘의 말처럼 강한 아이가 되어간다. 하지만 그는 어른이 아니었다. 어쩌면 작품의 서두에 등장하는 끔찍한 현장에 홀로 남겨졌을 소년의 후생(後生)이 즉, 제이가 아니었을까. 두 소년의 모습이 희한하게 오버랩 된다.

 

검은 꽃, 퀴즈쇼와 함께 소위 ‘고아 트릴로지(3부작)로 평가받는 이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고통과 슬픔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아이러니한 알레그로이다. 빠르게, 빠르게 주마등처럼 모든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홀로 감수하는 어린 소녀의 얼굴, 심장이 아파 한강 다리 아래에서 가슴을 쥐어뜯는 제이……. 우리가 미처 지각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작가 특유의 시선으로 포착해낸다. 건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생생한 문체가 두드러져 보인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대목은 제4장이다. 어린 나이에 산전수전을 다 겪고 열여덟 살에 폭주족의 리더가 된 제이가 광복절 대폭주를 저지하려는 순찰차와 의경들의 눈앞에서 승천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력을 느끼지 못하는 그의 영혼은 끝없이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그렇게 버림받았던 한 아이는 전설이 되었다.

 

서평의 첫머리에 언급했던 소포클레스가 남긴 또 다른 명언처럼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일로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는 존재이다. 하지만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제이는 통곡도, 눈물도 거의 흘리지 않는다. 애초에 타인과 똑같이 행동하는 것 자체가 허락되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참 슬픈 운명이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분명 독특한 매력을 가진 책이다. 그러나 이야기 곳곳에 보이는 적나라함이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물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문제들이 우리들의 불편한 진실이라고 해도 말이다. 이 소설이 출간되기 한 달 전에 김영하는 단편 『옥수수와 나』로 제36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는데 재미있었다는 평들이 많았다. 그에 반해 이 이야기는 지나치게 진지하고 무거운 느낌이다. 그 무거움을 약간만 벗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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