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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짐승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불안과 공포는 되도록 마주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익숙한 감정이다. 17세기 프랑스의 고전작가 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는 “희망과 공포는 분리될 수 없다. 공포 없는 희망이 없으며 희망 없는 공포가 없다.”고 말했다. 헤르타 뮐러의 ‘마음짐승’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청춘들의 일기와도 같은 소설이다. 침묵하면 불편해지고 말을 하면 우스워지는, 그런 시대를 살았던 젊음들에게 주어졌던 것은 슬픔과 아픔이다.
‘나’는 트렁크에서 룸메이트 롤라의 공책을 발견한다. 남쪽의 빈곤한 지방에서 온 롤라는 손톱이 깨끗하고 하얀 셔츠를 입은 남자와 사랑에 빠질 수 있기를 소망하며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배우던 중이었다. 뭔가 되어가는 것 같았던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내 허리띠로 목을 매 자살을 하고 나는 공책의 마지막 장을 통해 이 죽음에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체육 강사가 저녁에 나를 체육관으로 불러 안에서 문을 잠갔다, 라고 롤라는 썼다. 두꺼운 가족 공들만이 우리를 지켜보았다…….중략……. 그가 교수회의에서 나를 신고했다. 나는 메마름을 떼어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신은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 아이는 발이 붉은 양 떼를 몰지 않으리라. (p.36)
헤르타 뮐러의 작품 ‘마음짐승’의 테마는 ‘전체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사상은 독재자들이 권력 강화를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이다. 작가 본인이 그런 시대를 살았고 생생한 경험과 참상들이 자신의 글들에 녹아들어 있다. 과연 이 소설에서는 어떤 경험을 이야기하고 얼마나 더 비극적인 참상을 보여주게 될 것인가. 뮐러는 ‘낱말상자’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갖고 있고 그 시스템을 바탕으로 새로운 말들을 탄생시킨다. ‘마음짐승’이라는 단어도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 단어는 불안의 공포의 삶 속에서 절망하는 이들의 모습을 의미한다. 또한 시적 언어들의 사용으로 인해 여타 소설가들의 작품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최신작인 ‘숨그네’와 이 작품을 비교, 대조하며 읽어본다면 작가의 문학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를 엿볼 수 있다. (‘마음짐승’은 1994년에 출간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루마니아를 통치했던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불안과 두려움이 감도는 와중에도 뮐러는 자신이 추구하는 문학의 명예를 잃지 않는다. 처참함을 고발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 이런 독특함이 악에 관한 한 편의 잔혹동화와 같은 소설을 탄생시켰다. 온유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속내는 칼날처럼 날카롭다.
소설에 등장하는 에드가와 쿠르트, 게오르크, 그리고 주인공이 친구가 되어 모임을 갖고 책을 접하는 것처럼 실제로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악티온스구루페’라는 젊은 지식인들의 집단을 결성해 금서들을 읽으며 활동했다.
최근에 한 인터뷰에서 뮐러는 그 당시 모든 걸 제대로 이해하고픈 욕구가 강했으며 불행한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런 작가의 생각은 ‘마음짐승’ 속에 상당 부분 반영되었다. 완치되지 않은 상처를 드러내는 것, 뮐러의 이야기들은 난해하고 고통스럽다. (우리에게도 그런 상처는 남아 있다. 아직도......)
‘마음짐승’은 독재치하에서 죽은 두 친구 롤프 보세르트와 롤란트 키르시를 위해 썼다고 한다. ‘숨그네’가 동료였던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죽음을 추모하는 의미로 완성된 작품이라고 본다면 이 두 소설에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하겠다. 독일의 철학자 폴 티리히는 “죽게 된다는 깊은 슬픔은 곧 영원히 잊혀진다는 두려움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뮐러의 세 친구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영원히 잊혀지는 두려움은 맛보지 않을 것이다.)
독재정권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나와 친구들은 감시의 대상이 되고 죽음의 피리소리에 힘겹게 대항한다. 나는 결국 루마니아를 떠나 독일로 망명하지만 죽음의 공포는 끊임없이 엄습해온다. 인내만이 그들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그 유일한 희망조차 완전한 동아줄은 아니었다.
그들은 불행한 현실에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침묵했고 죄책감에 시달렸으며 죽지 못해 살았다. 각자 자살을 통해 어떤 식으로 친구들을 버릴 수 있을까 상상하면서. (어떤 이에게 있어 하루하루가 사랑일지 몰라도 또 다른 이에겐 그 하루가 지옥이다.)
지옥 같은 삶을 영위해갈 여력이 없었는지 게오르크와 쿠르트는 죽음으로 삶을 마감하고 만다. 육 층 건물에서 떨어져 즉사하고 집에서 목을 매 시체로 발견된 친구들, 나와 에드가는 루마니아를 탈출하는 데 성공하지만 두 사람의 마음짐승은 너무나 지쳤고 큰 상처를 입었다.
이 소설이 독자인 우리들에게 남기는 질문과 의문점은 적지 않다. 당신의 ‘마음짐승’은 어떤 모습인가. 물론 우리가 독재치하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는 불안과 공포가 담겨져 있다. 현실의 불안정한 다리 위에 선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이 소설은 슬픔과 아픔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