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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3 - 10月-12月 ㅣ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그녀는 죽을 수 없었다. 그리운 따스함이 깃든 목소리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1Q84 3권’(7월 25일 출간)은 첫사랑의 애틋함과 안타까운 엇갈림과 상처와 비밀, 그리고 달의 로맨틱함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을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드는 소설이라고 정의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 한 예로 이 장면을 들 수 있다.
그 목소리는 어딘가 먼 곳에서, 어딘가 머나먼 시간에서 찾아온 것 같았다. 귀에 익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굽이굽이 구부러진 모퉁이를 돌아온 탓에 그것은 본래의 음색이나 특성을 상실했다. 남겨진 것은 의미가 떨어져나간 텅 빈 메아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그 울림 속에서 아오마메는 그리운 따스함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목소리는 아무래도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아오마메는 손가락에 넣었던 힘을 빼고 눈을 가늘게 뜨고서 귀를 기울였다. 그 목소리가 발하는 언어를 들어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가까스로 들은 것은, 혹은 들었다고 생각한 것은 자신의 이름뿐이었다. 나머지는 빈 동굴을 빠져나가는 바람의 웅웅거림뿐이었다. 이윽고 목소리는 멀어지고, 다시금 의미를 상실하고, 무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p. 43)
아오마메에 의해 리더가 살해되자 ‘선구’는 우시카와를 앞세워 그녀를 찾는다. 뛰어난 직감을 가진 우시카와는 사건의 키워드를 탐색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무엇인가가 자신의 의식의 저 먼 가장자리를 걷어차고 있었다. 덴고, 아오마메에 이어 우시카와가 제3의 주인공으로 등장함으로서 (예전부터 이미 등장은 했었지만) 1Q84는 좀 더 복잡해지고 새로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2권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그의 과거가 공개된다.
이 작품은 2001년 9.11 테러와 1995년에 일어난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지하철 사린 사건의 주범 옴진리교를 연상시키는 종교단체 ’선구‘나 작품 전체적으로는 어두운 분위기가 감도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또 다른 이면으로 ’1Q84' 3권은 사랑의 판타지를 더 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아오마메는 리더를 살해한 후 은신처에 잠적한다. 제아무리 숨을 죽이고 있어도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낼 것이라는 불안감은 늘 공존한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덴고를 생각한다. 눈을 감은 채.
덴고, 너는 어디 있어? 빨리 나를 찾아줘. 다른 누군가가 나를 찾기 전에. (p. 121)
덴고에게 있어서도 그녀를 찾는 것은 시급한 일이었고 재회하는 것만이 유일한 바람이었다. 세계의 룰이 느슨해질 대로 느슨해져서 모든 것이 상실되기 전에 아오마메를 찾아야 했다. 그는 요양소에 입원해있는 (침묵의 늪에 빠져있는)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 바보같이 들릴지도 모르지만 있는 것 그대로.
“아버지는 지난여름에는 아직 의식이 있었어요. 상당히 혼미한 상태이긴 했지만 의식은 아직 의식으로서 기능하고 있었죠. 그때 이 방에서 나는 한 여자애와 재회했어요. 아버지가 검사실에 실려 간 뒤 그녀가 여기에 찾아왔어요. 그건 아마 그녀의 분신 같은 것이었을 거예요. 내가 이번에 이 마을에 와서 오래 머물렀던 건, 다시 한 번 그녀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게 지금 내가 여기 있는 진짜 이유예요.” (p. 284~285)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 인터뷰에서 “내 마음속에는 수많은 서랍들이 있다. 내 서랍에는 수많은 소재들이 있다. 필요한 기억과 이미지들을 서랍으로부터 끄집어낸다.”라고 말했다. 과연 그 서랍들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고독, 오컴의 면도날, 엄지의 욱신거림, 솔리드한 증거, 고양이 마을, 로맨틱, 콩깍지 안에 든 콩 등……. 수많은 기억과 이미지들이 그 서랍에서 나왔고 이번 1Q84 3권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고 강한 중독성을 지닌 소설을 쓰기로 유명한 하루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와 그의 소설을 ‘난해하다.’라거나 ‘사기꾼’이라고 혹평을 하기도 한다. 하나 모든 걸 떠나서 확실한 것은 그가 대단한 면이 있는 작가라는 사실이다. (여러 가지를 섞어 놓아 복잡하긴 해도 이런 대작을 완성…….시켰다는 점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1Q84 3권’의 절정은 뭐니 뭐니 해도 두 남녀 주인공의 재회 장면이다. 시간의 흐름에 관계없이 공원 미끄럼틀 위에서 손을 마주잡고 말없이 달을 보는 덴고와 아오마메.
“덴고.” 아오마메가 귓가에 속삭였다. 낮지도 않고 높지도 않은 목소리, 그에게 무언가를 약속하는 목소리다. “눈을 떠.”
덴고는 눈을 뜬다. 세계에 다시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달이 보여.” 아오마메가 말했다. (p. 677)
다시 만난 그들은 고양이 마을을, 혹은 1Q84년을 떠날 수 있을까. 그리고 외톨이지만 고독하지는 않았던 두 사람은 어떻게 하나가 되었을까. 진정한 사랑은 모든 걸 진짜가 되게 만들고 그것은 우리들 삶의 마지막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