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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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습당한 도시의 폐허를 관통하는 도로를, 미군과 하얀 관의를 입은 소녀가 손을 잡고 걸어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는 광대하게 느껴지는 어두운 실내에 앉아 있던 소녀가 일어서서 걷는 모습이 비치고 있다. 소설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는 아름답지만 고통스러운 한 여인의 삶에 대한, 아니 더 엄밀히 이야기하면 우리 모두에 대한 소설이다. 세월이 흘러 소녀가 여인이 되고 자신이 미처 몰랐던 비참한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의 고통은 실체를 드러낸다. 이것은 아픔의 기록이자 치유의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 노인이 언덕에서 뒤를 돌아다본다. 그의 눈에 세련된 사람의 걸음걸이가 보였다.

노년의 곤경에 빠진 채 괴팍하게 고립되어 있는 나는 바로 이 소설 <애너벨 리>의 저자이자 등단 50주년을 맞은 오에 겐자부로이다. 친구 고모리의 등장으로 나의 기억은 30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여배우 사쿠라를 만났을 때 그는 은사를 잃은 슬픔이 사라져 있음을 깨닫는다. 고모리는 사쿠라와 함께 <미하엘 콜하스의 운명>을 영화로 제작할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그에게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할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세 사람의 협력 관계가 형성되면서 아픔과 치유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소설은 오에 겐자부로의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오에의 다른 작품들이 자주 인용되고 있다. 그의 다른 작품들을 통해서도 우리들의 상처를 볼 수 있고 그것을 치유하려고 노력하는 작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분주하게 뛰어다녔지만 그 어떤 성과도 이루지 못하고 영화 제작은 실패한다. 아역배우에서 출발해 세계적인 스타가 된 사쿠라였지만 그녀는 고통과 악몽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영화에 정열적으로 몰두하지만 결국 영화는 좌절되고 자신이 후견인이자 남편이었던 데이비드의 끔찍한 장난에 당했었다는 진실을 알게 된 순간 조용히 절규한다. 그 아픔은 타인이 대신할 수 없고 자신만이 그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고양이가 제 상처를 핥듯이. 그로부터 30년이 지나서야 사쿠라의 상처는 치유되고 영화는 완성이 된다.

 

이 소설은 치유의 소설이다. 아름다운 소녀의 혼령을 위무하는, 모든 이들을 위무하는 의미를 가진 소설이다. 고모리는 사쿠라 등에게 ‘애너벨 리 영화’ 무삭제판을 보여준 후 이렇게 말한다. 격양된 얼굴을 드러내면서.

 

“끝까지 자네가 봐주어서 다행이야!” 하고 말했다. “분명히 그로테스크한 장면은 있어, 그러나 영화의 흐름은 상처받은 소녀를 위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어. 뿐만 아니라 소녀는 살아 있지. 자네가 곧잘 쓰는 치유 쪽으로 더 나아갈 수 있다면......”

 

이 말에 나는 이렇게 답한다.

 

“영화는 자네가 만든 것이 아니잖아. 그런데 그 억지 논리는 저열하다고 생각해” 하고 나는 말했다.

 

문제와 직면해서 근본적인 치유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고모리와 그런 방법은 인격적으로 저열하다고 생각하는 나, 이 대목에서 우리는 치유의 옳은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에드거 앨런 포의 시 <애너벨 리>를 모티브로 하여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아름답지만 고통에 시달리는 한 여인의 모습을 새로운 형식으로 탄생시켰다. 아마도 오에였기에 이런 소설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작품의 해설부분에 이런 말이 적혀있다. “<애너벨 리>는 오로지 소설 쓰기만으로 인생을 살아낸 작가가 ‘문학’에 바치는 오마주이기도 하다.” 이 말처럼 <애너벨 리>에는 대가의 흔적들이 요소요소에 보인다.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50년을 살아온 작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총화이다. 늙고 기억력은 쇠퇴했지만 여전히 반짝이는 별과 같은 존재, 오에 겐자부로야말로 그런 존재가 아닐까.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는 여러 가지 소재들을 다루고 있다. 독자들은 그 소재들을 발견해가는 과정에서 표면화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읽어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오에 겐자부로의 말을 인용할까 한다. 그가 추구하는 문학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제 문학의 근본적인 형식은 개인적인 문제에서 출발해 그것을 사회와 국가와 세계로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20세기가 테크놀로지와 교통수단의 가공할 만한 발전을 통해 쌓아온 피해를 묵직한 아픔으로 받아내고 특히 세계의 변경에 위치한 자로서 변경에서 전망할 수 있는 인류 전체의 치유와 화해를 위해 어떻게 하면 예의바르면서도 위마니스트적인 공헌을 할 수 있는지 모색해나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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