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희망, 현대의 윤리적 감수성에 중심이 되는 것은비록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은 탈선이며, 비록 얻기어렵긴 하지만 평화는 규범이라는 확신이다. 물론, 전 역사를 통해서 전쟁이 늘 이런 식으로만 여겨진 것은 아니다. 한동안은 전쟁이 표준적인 상황이었으며 평화가 예외적인 것이었다. - P114
어떤 고통을 전 세계적인 것으로 다룸으로써 실제보다 과장되게만들 경우, 사람들은 자신들이 훨씬 더 많이 ‘보호‘받아야 한다고느끼게 된다. 게다가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고통이나 불행은 너무나 엄청날 뿐만 아니라 도저히 되돌릴 수도 없고 대단히 광범위한까닭에 아무리 특정 지역에 개입을 하고 정치적으로 개입을 하더라도 그다지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느끼게 만들어 버린다. 어떤 문제가 이 정도의 규모로 인식되어 버리면, 고작 연민의 늪에빠져 허우적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해당 문제를 추상적인 것으로만들어 버린다. 그렇지만 모든 역사와 마찬가지로 모든 정치는 구체적인 것이다(확실히, 역사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치까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P122
사진은 대상화한다. 사진은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소유할 수 있는그 무엇으로 변형시켜 버린다. 그리고 사진은 일종의 연금술로서, 현실을 투명하게 보여준다고 높이 평가받는다. - P125
그렇지만 상황은 정반대이다. 어떤 면에서 이란인들은 그 수난극을 여러 번씩 봐 왔기때문에 우는 것이다. 즉, 그들은 울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야기의형태를 띤 비애감은 좀체 옅어지는 법이 없다. - P128
모든 기억은 개인적이며 재현될 수도 없다. 기억이란 것은 그기억을 갖고 있는 개개의 사람이 죽으면 함께 죽는다. 우리가 집단적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기하기가 아니라 일종의 약정이다. 즉, 우리는 사진을 통해서 이것은 중요한 일이며 이것이야말로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이다, 라고 우리의 정신 속에 꼭꼭 챙겨두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뭔가를 구체화할 수 있는 이미지, 즉 중요하기 그지없는 공통 관념을 담고 있으며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예측 가능하도록 움직이게 하는 재현적 이미지의 저장소를 만들어 둔다. - P131
뭔가를 영원히 기억하려고 한다는 것은 그누군가가 그 기억을 끊임없이 갱신하고 창조할 임무를 수행해야한다는 점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일종의 도상 같은 사진이자아내는 감동의 힘을 빌어서 말이다. - P133
사람들이 사진을 통해서 뭔가를 기억한다는 데에는 아무런문제도 없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사진만을 기억한다는 데에있다. 이렇듯 사진만을 통해서 기억하게 되면 다른 형태의 이해와기억이 퇴색된다. - P135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이야기를 떠올린다는것이 아니라 어떤 사진을 불러낼 수 있다는 것이 되어버렸다. - P135
도대체 이런 사진들을 전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들의분노를 일깨우려고? 사람들을 ‘후회‘하게 만들려고, 다시 말해서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 슬퍼지게 만들려고 애도 작업을 도와주기 위해서? 이제는 이 끔찍한 일들을 처벌할 수도 없을만큼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꼭 이런 사진들을 봐야만 하는 것일까? 이런 이미지들을 본다고 해서 우리가 더 선량해지는 걸까? 이사진들이 정말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고 있기는 한 것일까? 오히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그도 아니면 알고 싶어하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것에 지나지 않을까? - P140
"우리는왜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화재 사건이나 충격적인 살인 사건을다룬 신문 기사를 늘 읽곤 하는가?" 그의 답변에 따르면 ‘불행에대한 사랑, 잔악함에 대한 사랑은 연민만큼이나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 P147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런 감정은 곧 시들해지는 법이다. - P153
· 감정을 무디게 만드는 것은 수동성이다. - P153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런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니.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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