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가 평균이윤율 저하를 궁극적인 자본주의 붕괴의 토대로 보았다면, 슘페터는 혁신의 소멸을 자본주의 붕괴의 경제적 토대로 보았다. - P36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결국 핵심은 이것이다. 20세기 초, 무궁무진한 부와 참을 수 없는 불평등이 막바지에 달했던 도금시대에 사회학자 게오르크 짐멜이 말했듯이, 부자들의 힘은 그들이 실제 어디에 돈을 쓰느냐가 아니라 그들의재산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따른 잠재력에 있다. 곰들이 꿀에 달려들듯이 언론과 정치인들이 억만장자에게 몰려드는 것도 바로 이런 잠재력 때문이다.
또 억만장자들이 아무리 예지적이거나, 사치스럽고,
자선적이든 간에 항상 재산을 쓰기보다는 축적하려애쓰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은행 잔고를 최대한 잠재력이 가득하게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 P12

융의 말대로 "계몽은 빛의 모습을 상상하는 게 아니라 어둠을 자각할 때 비로소이뤄진다." - P28

일명 ‘워라벨’이라고 불리는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에는 우리 일상이 일과 삶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 두 요소가 완벽한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러한 전제는 우리가 복잡하고, 가변적이고, 매 순간 현재진행형으로 돌아가는 삶 속에 있다는 진실을 무시한다. 나는 ‘워라밸‘이라는 말에 담겨있는 균형이 불균형보다 우월하다는 뉘앙스에 동의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최악인 것은 이 말이 엄마를 하나의 역할이 아닌 객관적 대상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사르트르라면 ‘워라밸‘에 목을 매는 대신 자신에게 주어진 실존주의적 역할을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해나가라고 조언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의 시작은 엄마를 그만두는것이다. - P43

냉소적인 이들의 눈에 우리가 정의라고 부르는 것은 규칙을 만드는 이들에게 유리하도록 시ON THERESIRIN스템을 조작하기 위해 고안된 집합이다. 혹은 플라톤의 《국가》에서 트라시마코스가말하듯, 정의는 "단지 강자의 이익"일 뿐이다. - P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에 나는 고무나무를 구하기 위해 싸운다고 생각했고, 그다음에는 아마존 열대우림을 구하기 위해 싸운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인류를 위해 싸운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쿠 멘지스 - P3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본주의와 임금노동은 흔히 생각하듯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상태가 아니라 국가가 대대적인 폭력을 동원해서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든 체제다. - P181

1776년 7월 4일 미국의 독립혁명 중에 아메리카의 13개 식민지들이 모인 대륙회의가 독립을 선언했다. 독립선언서는 뜨거운 언어로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진다고 밝혔지만, 새로운 자유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지 않았다. 독립이후로도 노예제는 100년 가까이 지속됐고, 아메리카 원주민을 겨냥한 거의 전면적인 종족학살이 가속화됐으며, 새로 세워진 정부 또한 그전의 영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다른 수많은 나라를 침략하고 정복하며 그 나라에서 선출된 정부를 무너뜨렸다. - P199

"이 야만적 무기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사용한 건 일본과의 전쟁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본은이미 패배해 항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우리는 세계 최초로 그 무기를 사용함으로써 암흑시대의 야만인들과 똑같은 윤리기준을 받아들인 셈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전쟁을 벌여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여자와 아이들을 죽여가면서까지 전쟁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 - P225

인클로저는 자본주의 발전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다.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것 말고는 다른 생존수단이 없는 땅 없는 사람들ㅡ즉 노동계급을 양산했기 때문이다. - P228

인도의 독립운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서사는 모한다스 간디가 이끈 평화적인 운동이었다는 것이지만 실상은 무척 다르다. 인도에서는 영국 식민 권력이 철수하기 전까지 수십 년에 걸쳐군대의 반란, 봉기, 폭동, 암살, 폭탄 공격 등 종종 영국의 점령에 맞선 격렬한 투쟁이 벌어졌다. - P2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36년 2월 21일 조선의 아나키스트 신채호가 옥중에서 사망했다. 신채호와 그의 부인은 일본 경찰에 체포된 적이 있었고, 신채호는 비밀조직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10년 징역과 노역형을선고받았다. 조선의 유명한 언론인이었던 신채호는 기행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가령, 그는 꼿꼿이 선 채로 세수를 해서 항상 사방에 물을 튀겼는데 이는 일제에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기 위한 행동이었다. - P73

"나는 평생 동안 흑인 대 백인의 싸움이 근본적인 투쟁이라고 믿었습니다. 이제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싸움이 근본적인 투쟁임을 깨달았습니다." - P74

1919년 3월 1일 조선에서 일본의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하기위한 일련의 항의 시위인 3·1운동이 시작되었다. 이후 6주 동안 전체 인구의 10퍼센트에 이르는 약 200만 명의 조선인이 1500차례의 시위에 참여했다. 일본 경찰과 군대는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공개 처형을 비롯해 약 7500명을 살해하고 1만 6000여 명에게 부상을 입혔으며 4만6000여 명을 체포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본당국은 군경 8명이 살해되었다고 밝혔다. 이런 탄압에도 불구하고이 시위는 한국 독립운동에 촉매 역할을 했다. 한국은 1949년부터3월 1일을 국경일로 기념한다. - P83

하음 분쟁은 일부 급진적 노동자들에게 교훈을 남겼다. 노동조합 지도부에 쟁의를 맡기기보다는 파업 노동자들이 직접 처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 P87

"성인인 여러분들이 제 미래에 똥을 누고 있어서 지금 시위 중입니다." - P9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