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의 아들
에셀 릴리언 보이니치 지음, 김준수 옮김 / 마마미소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추기경의 아들 - 에셀 보이니치-

이 책은 19세기 반기독교의 정치적 투쟁, 이탈리아혁명 비밀결사대 조직원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작가 에셀 보이니치는 수학자인 조지불의 자녀로 태어나 피아노를 전공했다. 음악으로 교편을 잡아 번역을 하며 결혼 후 남편과 뉴욕에서 살면서 생을 마감했다.

 줄거리이다.

신학대학교 몬타넬리 신부와 주인공 아서는 사제지간이다. 아서는 신을 생각하듯 신부를 존경하고 정신적 의지를 하지만 신부는 바티칸의 부름으로 로마 브리시겔라의 구교 주교로 임명을 받아 떠나게 된다. 신부는 떠나기 전 아서의 안위를 위해 많은 고민을 한다. 아서는 새로운 학장의 권유로 고해성사를 하면서 이성 친구 잼에 대한 설명으로 자연스럽게 청년이탈리아당 조직의 정보를 흘리게 된다. 결국 그것은 아서 에게 불행의 씨앗이 되고 만다. 정치적 목적을 뛴 청년이탈리아당의 조직이 밝혀지고 아서는 밀고 되어 끌려가 고문을 받는다. 갖은 수모를 당하며 풀려나지만 사랑했던 여자 친구 잼의 오해로 뺨을 맞고 계모에 의해 엄마와 몬타넬리 신부사이에 사생아로 태어난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그는 남미를 떠난다. 그 후 고초를 겪으며 장애를 앓고 은신한다. 13년 후 청년이탈리아당의 조직은 새로운 대안으로 언론을 이용하기위해 아서의 필명 (겟플라이)를 찾게 된다. 겟플라이는 남다른 냉정함으로 적이 생기지만 탁월한 지적 능력을 인정받는다. 그는 동지들과 함께 하지만 그를 사랑했던 잼은 아서를 알아보지 못한다. 당시 추기경 몬타넬리는 시민의 존경으로 추앙을 한 몸에 받는다. 그러나 겟플라이는 추기경의 권위를 건드리며 조롱하는 해학적 문구로 날카로운 송곳처럼 추기경의 권위를 건드리며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결전의 날 조직은 비밀리에 혁명의 거사를 치르지만 아서는 붙잡히게 되고 그곳에서 아버지 몬타넬리에게 그동안에 모든 것을 고백하게 된다. 몬타넬리는 아서 앞에 신과 아들의 선택, 인간성의 한계로 괴로워한다. 결국 몬타넬리는 추기경의 권한으로 아서의 처형을 허락하고 자신도 자신의 아들(아서)에 대한 양심선언으로 세상에 고백하며 결국 죽게 된다. 끝까지 자신을 숨긴 아서는 마지막 편지를 통해 잼에게 자신의 존재를 밝히며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으로 책은 마무리가 된다.

각 인물의 섬세한 문체, 심리묘사가 숨이 막힐 지경이다. 신을 떠나 인간으로서 순수한 아서의 미움과 증오는 오히려 추기령 몬타넬리를 향한 간절한 사랑의 갈망이었고 그를 사무치게 그리워했다. 신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던 무신론자인 아들과 신의 아들로 살아가는 카톨릭 성직자 몬테날리의 대화에서 인간적인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p 477 : 누구를 더 사랑하시죠? 접니까? 벽에 걸린 저것입니까?

몬테날리 : 아서 나를 조금이라도 불쌍히 여겨다오.

p 478 : 신부님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저 라구요. 저는 신부님 때문에 세상에 없는 고통을 다 당했어요. 그래도 저는 모진고통을 이겨냈어요.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 신부님의 신과 싸워야 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이 책은 종교의 이념을 넘어선 무소불위의 권력, 종교 전체주의에 대해 저항하는 항명이지만 저자는 성직자 몬타넬리를 통해 모순적이고 위선적인 인간상의 한계를 보여주었으며 순수한 아서의 이성적인 사상을 통해 종교를 이용한 기만적인 인간군상에 송곳처럼 날카로운 침을 주었다.

신의학문이라 일컫는 신학, 종교는 과연 인간에게 무엇을 부여한 것일까?  읽을수록 인간내면의 깊숙한 이성적 심리묘사와 삶의 통찰을 주는 성경 문구는 한없이 여리고 갸날픈 인간상의 연민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끝자락 눈물과 깊은 감동을 주어  마치 뮤지컬을 연상케하듯 감정이입에 절정을 준다.  오랫동안 소설에 거리를 두었던 내게 훌륭한 역작으로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을 것 같다.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읽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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