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문명의 증거이자 긴 시간 동안의 역사를 물리적 증거로 보존하는 유일한 매체라고 한다. 그래서 건축의 역사가 곧 세계의 역사라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실제로 내가 사는 곳 주변에는 조선의 궁궐들이 있는데, 그곳이 품은 무수한 이야기들을 알아가다 보면 무심히 지나치던 이전과는 달리 새롭게 보이기도, 숙연해지기도 한다.

책 뒤쪽에는 건축용어 해설이 되어있어 건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은 한국어판에만 있는 부분이라고 하니 다양한 독자층을 위해 세심하게 신경 써준 것이 감동적이다. 실제로 책을 읽으며 건축 용어 설명을 함께 읽으니 이해가 더 잘 되고, 건축에 대한 지식도 함께 업그레이드되는 것 같아 좋았다.
또 하나 좋았던 점은, 이 책이 마치 백과사전과 같아서 꼭 순서대로 책의 맨 앞장부터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책을 넘기며 사진을 보다가 궁금해지는 페이지에 머물러도 좋고, 색인을 찾아보며 궁금한 건축물들부터 따라가봐도 좋다. 책 자체는 시대순으로 배열되어 있어서 크게 보면 세계사의 흐름을 알아갈 수 있고, 지역별로 나눠진 책과 다르게 다양한 장소로 건너뛰며 문화나 역사를 비교해 볼 수도 있기에, 자신만의 방법으로 다양하게 활용하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아이와 함께 책을 넘겨보는데 목차 뒤에 나오는 사진이 기차를 좋아하는 아이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이는 그곳이 어딘지 궁금해했는데 다행히 내가 알고 있는 장소였고, 책에도 '주얼'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싱가포르 창이공항의 주얼은 오락과 쇼핑을 위한 복합공간으로, 중앙 채광창에서 쏟아지는 세계에서 가장 긴 실내 폭포 '레인 보텍스'로 유명하다. 참고로 아이가 궁금해했던 기차는 창이공항 2터미널과 3터미널을 연결하는 무료 셔틀인 스카이트레인으로, 폭포를 감상하기에도 좋다.

책을 통해 다양한 건축물과 조우하며 가끔 추억에 젖기도 했는데, 그중 하나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다. 1931년에 준공되었고 1970년 세계무역센터가 완공되기 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영화 킹콩에도 등장해서 더욱 유명하다. 나는 1999년에 방문했었는데 당시 받았던 입장 티켓과, 페니가 납작하게 눌려서 그림이 찍혀 나오는 기념품(프레스드 페니)을 샀던 기억이 생생하다.
1년 만에 완공된 건물과 초반 입주율 25%, 1940년대에 들어서야 수익을 냈다고 하는 내용을 읽고선 궁금증이 생겨 검색을 더 해봤다. 1929년 검은 목요일로 본격화된 대공황이 1939년 정도까지 계속되었으니, 건물이 완공된 1931년, 경제 붕괴 상태에서 사무실을 임대하거나 확장할 여력이 있는 기업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뉴욕 시민들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Empty State Building'이라며 비꼬았다고 한다. 실업률이 높았던 터라 인건비 또한 저렴했기에 하루에 3400여 명을 건설 현장에 투입해 매주 4층 반씩 올라가서 완공까지 1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2차대전 전후로 뉴욕 경제가 회복되며 40년대에 이르러서야 수익이 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은 동서양의 건축물을 고루 다뤘는데, 특히 우리나라의 경복궁 근정전과 봉정사 극락전이 있는 것이 반가웠고 북한의 선전 마을이 소개된 것도 놀라웠다. 다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건축물 소개 비중이 조금 더 컸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조금 있다. 경복궁의 전체 사진이나 근정전 내부 사진, 혹은 일월오봉도에 관한 것만이라도.
여담이지만 얼마 전에 BTS가 광화문에서 공연을 할 때 OTT를 통해 전 세계의 팬들이 라이브로 지켜볼 수 있었는데, 광화문 또한 계속해서 보이는 것이 어쩐지 뿌듯했다. 문화가 가진 힘은 국경을 쉽게 넘나들고 사람들의 마음에 직접 닿기에, 세계적인 활동을 통해 한국을 알리는 분들이 더욱 각별하고 소중한 존재로 다가온다.

건축물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며 시간 여행을 하듯, 세계여행을 하듯, 각자가 품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다 보면 더 넓어진 시야와 새로운 호기심으로 세계와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건축물이 품은 이야기들이 정말 재미있기에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