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누이, 다경
서미애 지음 / 한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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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가면 뒤에 숨은 얼굴들>


사람이 얼마나 쉽게 자신을 감추고 거짓말을 하는지. 아무리 가족이라도 그 가면 뒤의 모습까지는 알 수 없는 법이다.

p.203


 «여우누이, 다경»은 설화 ‘여우누이’를 현대적으로 변주한 심리 스릴러이다. 여우누이 설화는 여우가 누이동생으로 태어나 집안을 망하게 하는 이야기다. 딸을 간절히 원하던 부부가 딸을 얻고 나서부터 집안에 자꾸 이상한 일이 생긴다. 막내아들이 누이의 끔찍한 행동을 보고 아버지에게 전하지만 믿을 수 없던 아버지는 아들을 집에서 쫓아낸다. 그 후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여우누이는 돌아온 막내아들마저 죽이려 하지만 실패한다. 이 설화는 남성의 영웅서사를 담고 있다. 집을 떠나 성장한 막내아들이 돌아와 초월적 능력으로 위기를 극복하며 결국 여우누이를 죽이고 살아남는 이야기. 저자는 이 설화에 변주를 주어 ‘연약한 피해자’로 규정되어 온 소녀 서사를 정면으로 전복시켜 끔찍한 사건에 무너지기 보다 자신이 직접 복수자로 나서게 한다.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다경은 아빠의 동업자이자 친한 친구였던 정환의 집에서 잠시 머물게 된다. 정환의 부인 세라는 평소에도 딸이 가지고 싶었던 터라 다경을 딸처럼 여기며 반긴다. 여행지에서 다경과 어색한 일이 있었던 첫째 아들 민규, 티격태격하지만 서로에 대해 잘 아는 동갑내기인 둘재 아들 선규까지, 네 식구와 다경의 생활이 시작된다. 하지만 다경이 집에 온 뒤부터 집안엔 묘한 기류가 흐른다. 다경의 행동이나 말에서 어떤 위화감이 느껴지지만, 하루아침에 부모님을 모두 잃은 사춘기 청소년인 다경이기에 가족들은 그녀를 대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여우누이 설화의 누이처럼, 다경은 평온한 가정의 일상에 파고들어 한 집안을 파멸로 이끈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다경은 상대에 따라 다중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매우 의뭉스럽고 의문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며 사건의 내막이 드러남에 따라 우리는 다경의 말과 행동의 이유나 근거를 알게 된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그 가면 뒤의 모습까지는 알 수 없다"라는 문장은 다경을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모하게 하는 서사의 핵심이다.


 등장인물들의 시점이 번갈아 등장하며 각자의 사정과 심리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구성은, 독자가 이 기묘한 분위기의 근원을 파악하는 데 집중하게 한다. 직선적인 묘사와 명확한 서술은 이 책을 청소년 소설처럼 느끼게도 하지만, 곳곳에 복선을 깔고 회수하는 방식을 반복하며 사건의 진상이 드러날 때까지 계속해서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독자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표정 뒤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얼굴을 상상하게 된다. 가까운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정말 서로를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 믿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다경의 부모님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고, 다경 또한 예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다경에게 고통을 준 사람과 그 가족들은 여전히 삶을 이어나간다. 다만 그 삶은 추악한 현실 앞에서 각자의 마음에 드리운 어둠과 다경이 만든 균열이 더해져 결국 모두에게 더 깊은 상흔으로 남게 될 것이다. 다경의 복수가 마냥 통쾌하지만은 않은 까닭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불편함이 잔향처럼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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