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정신과 - 별난 정신과 의사의 유쾌한 진료일지
윤우상 지음 / 포르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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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We are all patients!

너도 환자, 나도 환자, 우리 모두 환자다.

때로 내가 더 힘들고 때로 네가 더 힘들고 할 뿐이다.

그러니 서로 이해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힘든 세상 함께 헤쳐 나가는 거지.

<그곳, 이상한 나라> 中


 «명랑한 정신과»는 자신만의 세상에 사는 특별한 사람들이 모인 이상한 곳으로 출근해서, 멀쩡하다는 사람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정신없이 살아가는 이상한 곳으로 퇴근하는 정신과 의사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저자 자신과 정신과 의사로서 만나왔던 사람들, 그리고 그 삶에 관한 이야기.


 밝고 유쾌하게 써 내려간 일화들이 많지만 가볍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환자를 진심으로, 그리고 신중하게 대하는 저자의 마음이 보여서다. 마음이 묵직하게 내려앉기도 하고, 때론 웃고, 때론 같이 눈물을 흘리며 함께 치유받고 삶을 헤쳐나갈 용기를 얻는다. 병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이나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측면들 - 위험에 노출되거나 흥분한 환자 처치 방법 등 - 이 진솔하게 묘사되는 부분도 있는데, 오히려 현장을 생생히 알 수 있고 정신병원에서 하는 일 등을 자세히 알게 되어 좋았다.





누구나 나만의 세상을 갖고 있다. 내가 만든 세상이다. 내 세상과 바깥세상은 자주 어긋나고 부딪힌다. 나만의 세상을 고집할 수도, 그렇다고 나의 세상을 버리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사는 게 복잡하다. 그래서 인생은 재미있다.

p.31


 책장을 몇 장 넘기지도 않았는데 시작부터 바둑알과 똥 이야기가 나와 낄낄대다 몇 장 뒤에 나온 내용에 혼자 빵 터져버렸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이 정신과 의사하는 건데...."

내가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과 상담 중에 실제로 들었던 말인데, 저자가 전공의 수련을 받을 때 교수님도 농담처럼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오래된 추억이 떠올라 한참 웃었다.


 저자는 자신이 휴머니즘이 강한 사람이라 정신과를 선택한 줄 알았는데, 정신과 의사가 되고 보니 무의식중에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 듯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느 면에서 모두 환자다. 저자가 책에서 말하듯 우린 모두 자신만의 필터를 통해 세상을 보고, 불안증이나 우울증 등의 증상들도 가지고 있다. 다만 정신적인 문제는 질이 아니라 양적인 것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증상이 나를 힘들게 하고 남을 괴롭힐 때 문제가 된다.


 수잰 스캔런의 «의미들»이라는 책에도 정신병원에 입원해있는 사람들보다 그들을 면회 온 가족 등 정신병 환자가 아닌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훨씬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내용이 나온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매 순간마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오가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정신질환 병력이 있든 없든 그저 모두 같은 사람일 뿐이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흔들리고 불안할 때가 있으니까. 나 혼자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는 이유는 또 뭘까.




'나의 혀는 메스다. 나의 혀 놀림이 집도의의 칼과 같다. 내 혀 놀림으로 상처를 봉합하고, 내 혀 놀림으로 암을 제거하고, 내 혀 놀림으로 심장을 다시 뛰게 한다. 잘못하면 내 혀 놀림으로 상처를 주고, 멀쩡한 혈관을 자르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내 혀는 칼이다.'

p.179


 책을 읽으며 저자의 정신과 의사로서의 신념과 사명감에 존경심이 생겼다. 정신과에서 하는 치료는 다양하지만 이야기를 들어주고, 말을 거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에 자신의 혀는 메스고, 모든 면담은 수술과 같다고 늘 되새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의사도 사람이기에 어떤 상황에서는 흔들리고, 불안하고,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 용기를 낸다. 그 결과가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도움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멋졌다.





그녀가 고통의 마음을 용기 내어 보여 주었기에 또 다른 생명을 살리고, 우리에게 생명의 힘을 다시 느끼게 해 주었다.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p.250


 저자는 사이코드라마(심리극) 전문가이기도 하다. 사이코드라마는 강력한 치유 기법 중 하나인데, 연극적으로 문제 상황을 실제처럼 재연하면서 직접 문제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대역을 세워 그동안 못 했던 말을 직접 하는 것으로 과거의 트라우마, 현재의 갈등, 미래의 불안 등 문제가 풀리고, 해결 방법도 알게 된다.


 이 책에서 나온 사이코드라마 일화 중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자살한 아들을 둔 엄마의 이야기였다. 힘든 내색 한 번 없던 아들이 자신의 생일 다음날 유서도 없이 자살을 한 뒤로, 엄마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분은 주인공으로 나와 힘들게 자신의 이야기를 터놓으시고, 관객 중 한 명에게 아들 대역을 부탁했다. 주인공은 아들에 대한 미움, 원망, 그리움, 미안함 등을 절절히 표출했고, 아들 대역을 맡은 분은 엄마가 그렇게까지 괴로워할 줄 몰랐다며 미안하다며 울었다. 주인공은 고통에서 조금 벗어난 듯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아들을 하늘로 보내주는 장면에서 문제가 생겼다. 기독교의 교리에 따라 아들이 지옥에 갈까 봐 아이를 절대 하늘로 보내지 못한다며 울부짖었다. 그때 관객석에서 사람들이 나와 아들은 늘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으니 하나님께서 품어주실 거라며 엄마를 위로했다. 마침내 엄마는 진심으로 아들을 보내줄 수 있었다.


 극은 주인공의 마음을 치유하며 끝났지만 이야기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었다. 아들 대역을 맡아준 분은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고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살 후 남겨진 엄마가 고통받는 모습에 자신의 어머니가 겹쳐 보이며 큰 충격을 받아 어떻게든 계속해서 살아갈 거라 다짐한다. 주인공은 자살 유가족 모임을 계속하며 다른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다.


 모두가 함께 참여하며 상처에 공감하고 이해하며, 결국 모두가 치유받는 이 시간이 참 감동적이었다. 나도 현장에서 함께 하는 듯 그들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져 정말 많이 울었고, 누군가의 삶이 이어지는 계기가 되어서, 사랑을 느끼는 시간이 되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랑한 정신과»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정신병을 진단받았든 그렇지 않았든 모두의 삶에는 자신만의 크고 작은 애환이 있고, 낭만이 있고, 치열함이 있다. 견고한 자신만의 성에 갇힌 사람들도 그 안에서 나름의 고민을 하고, 희망을 찾고, 사랑을 한다. 우리 모두는 그저 약간의 다정함이나 위로가 필요한, 서로가 필요한 보통의 사람들이 아닐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은 누구의 삶에나 찾아오기에 서로 위로하고 기대며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또 좋은 날이 올 것이란 믿음으로.


 누군가의 아픔에 함께 슬퍼하기도 하고, 어떤 마음들에 공감하기도 하며 울고 웃다 보니 어느새 내 마음도 조금 밝아진 느낌이다. 이 책을 통해 세상살이에 지쳐있는 누군가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고, 외로운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길 바란다.


이 이야기가 우리 삶에 따스한 위안과 작은 사랑이 되었으면 한다.

힘든 삶을 살아 내는 우리 모두를 응원하고, 응원하고, 또 응원한다.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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