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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갱년기다
박수현 지음 / 바람길 / 2025년 10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이 책은 여전히 누군가의 오늘을 위한 책입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확신이 한 문단이라도 건네지길 바랍니다.
어떤 날은 눈물로, 어떤 날은 웃음으로, 어떤 날은 그저 숨으로 지나갑니다.
우리는 그 모든 날을 통과합니다.
당신의 체온을, 당신의 속도로, 당신의 언어로.
p.9
'갱년기 엄마와 사춘기 자녀'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몸도 마음도 몹시 예민한 엄마와 치열한 성장 과정을 겪으며 격하게 까칠해진 자녀의 충돌. 아이가 어릴 땐 웃고 넘길 정도의 우스갯소리로만 들렸는데, 아이가 고학년이 되고 나도 40대에 들어선 뒤론 왠지 심각하게 다가온다. 나는 아이의 사춘기도, 나의 갱년기도, 그 어떤 변화에도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당연한 수순처럼 우리 가족의 평화도 곧 끝나게 되는 걸까?
나의 사춘기는 늘 불안하고 태풍 같았으며, 그때부터 수많은 세월을 예민하게 살아왔다. 태어날 때부터 예민했던 내 아이 또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낙관하지 않고 최악을 대비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자주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 우리의 충돌은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몸이 떨리지만 현실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겠지.
«나는 갱년기다»는 저자가 갱년기를 겪으며 시작한 삶과 글쓰기의 여정을 담은 에세이다. 갱년기를 단순한 신체 변화가 아닌, 자신의 삶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전환점으로 풀어낸다. 최근에 책이나 드라마를 통해 여성과 여성의 삶에 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이 책을 만난 것이 어떤 운명 같은 것처럼 느껴졌다. 여성으로서의 나와 나의 몸을 돌아볼 계기이자, 막연하고 불안했던 미래를 지혜롭게 맞이할 수 있는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저자의 생생한 경험담과 노하우, 사유와 통찰, 변화의 기록들은 갱년기를 어두운 터널처럼 보내고 있거나 혹은 보내게 될지 모르는 수많은 독자들에게 따뜻한 손길이 되고 다정한 보살핌이 되어 준다. 때론 멈추거나 흘려보내고, 질문하고, 다시 들여다보고, 끝내 나로 돌아와 회복하는, 인생을 아우르는 삶의 지혜를 전한다.
돌아보면, 갱년기는 멀리서 온 불청객이 아니었다. 오래 함께 살아온 몸이 조용히 꺼내 놓는 이야기였다. 난 그 이야기를 듣고, 필요한 데서는 묻고, 때로는 멈추고, 때로는 통과한다. 오늘의 지형을 그리면 내일의 길이 조금 보인다. 끝은 아직 오지 않았고, 나는 이행 위에 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늘의 나를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p.61
갱년기와 완경은 다르다.
갱년기는 완경 이행기라고도 하며, 완경으로 향하는 과도기를 이야기한다.
월경 주기 변경과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 시기이다.
완경은 연속 12개월 무월경에 도달한 시점을 말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완경이 다양한 만성질환의 위험을 높인다는 것을 알게 되어 굉장히 놀랐다.
단순한 호르몬의 변화로 치부하기엔 상당한 물리적 부담이다.
예전의 나는 심한 생리전증후군을 버티며 "이건 호르몬 때문이야"라는 문장으로 나를 건져 올렸다. 그런데 갱년기 앞에서는 그 문장이 잘 붙지 않았다. "갱년기라 속이 좁아진 거네"라는 말은 특히 듣기 싫었다.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다가 아무 말이나 하고 싶어졌다. 누군가의 말에 기대지 않고 광고의 목소리에 휘청이지 않고 내 목소리로 말하고 싶었다. 그날 저녁, 나는 마음속에 한 가지 문을 열기로 했다.
병원을 찾자. (…)
나는 이제 안다. 갱년기는 내 몸의 신호일 뿐,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의 원인은 아니다. (…) 터널 앞에 아주 얇은 빛이 생기는 방식은 대개 그렇게 사소하다. 문이 닫혀 있을 때는, 마음을 조금 연다. 문이 열려 있을 때는, 발을 반 걸음 더 내민다.
p.44-49
오늘 나는 이렇게 몸의 변화를 정리했다. 이 모든 것을 나는 병명이 아니라 상태로 부른다. 상태로 불러야 다음 동작이 보인다. 물을 마시고, 호흡을 가다듬고, 옷을 바꾸고, 자리를 조정하고, 메모한다. 새롭고 갑작스럽거나 한쪽만 오래 아픈 증상은 확인하기 위해 반드시 묻고, 안심하기 위해 기록한다. 상태를 알아두면 그다음이 생긴다.
p.95
오늘은 여기까지.
네-일곱-여덟.
멈춘다. 숨을 고른다.
자신을 가다듬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지금, 작은 약속 하나를 남긴다. 목 뒤에 손을 얹고, 세 번의 호흡. 첫 호흡에는 지나간 것을 놓아주고, 두 번째에는 남아 있는 것을 들어주고, 세 번째에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맞이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오늘, 7분만 걸어보자. 휴대폰 없이, 설명 없이, 나만의 속도로. 돌아오는 길에 당신의 체온이 조금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 변화면 충분하다. 완경은 끝의 이름이 아니라, 내 리듬을 되찾는 일이었다. 내일의 속도는 내일의 내가 고른다. 오늘의 체온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간다. 끝이 아니라, 오늘의 속도로.
p.190
이 책을 읽으며 다양한 갱년기 증상들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사람마다 양상과 정도는 다르지만 우울감, 불면, 감정 기복, 통증, 건망증 등을 경험한다고 한다.
내 몸이 맞이할 변화임에도 지금까지 무심했던 과거의 나, 매우 반성한다.
이제부터라도 조만간 찾아올 그날들에 몸도 마음도 대비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초판한정으로 제공되는 필사 노트.
내 마음에 들어온, 나를 지탱해 줄 문장들을 옮겨 담아 볼 수 있다.
저자의 남편도 본인이 갱년기임을 인식하시고 필사를 시작하셨는데,
누군가의 문장을 빌려 오늘의 자신을 정리하며
그렇게 고요히, 그리고 함께 갱년기를 통과하는 중이시라고 한다.


문장들이 채워지며 내 몸과 마음도 긍정적으로 변화하길.
머무르지 않고 지나가며, 하지만 지나치지 않고 들여다보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