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들 -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
수잰 스캔런 지음, 정지인 옮김 / 엘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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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대회)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


 나는 그 병원에서 몇 년을 살았다. 병원에서 만난 다른 여자들을 생각할 때면, 나는 광기나 정신이상을 생각하지 않고, 심지어 정신 질환에 관해서도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건 그곳에 존재했고, 그것이 우리가 들은 이야기, 우리가 우리 자신에 관해 말하도록 배운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보다 나는 어머니들을 생각한다. 이 여자들 가운데 일부는 어머니였고, 일부에게는 어머니가 있었으며, 일부는 어머니를 잃었다. 나는 내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는 갈망으로 이 여자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p.40



 이것은 한 여성의 일생, 그리고 책과 작가에 관한 이야기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고통받다 이르게 생을 마감할 거라고 스스로를 닫아버린 채 살아가던 어느 날, 자신이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사람. 자아의 경계가 허물어질 만큼 몰입했던 책들. 광기로 가득 찬 과거부터 현재에도 함께하고 있는 광기로 물든, 혹은 물들었던 여성들의 책.


 저자는 정신 병동에서 보낸 삼 년의 장기 입원 시절을 회상하며 자신과 자신의 병에 대해 스스로 이해하기 위한 시도를 계속한다. 정신 질환을 치료하기도, 생산하기도 하는 의료 시스템에 대한 성찰과,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퇴원 후의 삶, 병원 밖 삶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는 여정을 담았다. 유년기에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며 시작된 저자의 균열은 다양한 형태로 그를 찾아온다. 상실로 상처받은 마음을 이해받거나 돌아보지 못한 채 늘 죽음과의 경계에서 사는 듯한 느낌 속에서 그는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이해받고, 보호받는다. 책과 작가들의 삶은 그의 세상이 되었다. 어머니를 대신할 롤 모델이 되었다.



 독자와 책 사이 그 수용의 순간은 하나의 화학적 반응이며, 난 늘 그것이 마법이라고 생각해왔다. 때가 딱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 취약성, 자아와 텍스트 사이 흐릿해지는 경계는 계획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그토록 강력하며, 당신이 허용하기만 한다면 당신을 만들기도 하고 다시 원래로 되돌리기도 할 것이다.

p.96



 '미쳤다', 혹은 '정신이 이상하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가. 병원에 입원해있지 않은 '보통의' 사람들 또한 병원에 있는 환자인 자신들과 달라 보일 게 없다는, 혹은 그들이 더 아파 보인다는 저자의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정신 질환 치료에 관한 기록이 있는, 미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힌 사람과 그런 기록이 없는 사람 중 누가 더 보통의 사람인가. '보통의 상태'라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핌을 받고 사랑받고 싶은 환자들은 의사가 원하는 대로 자신을 '연기'해가며 의사의 진단에 자신을 맞춰간다. 들은 대로의, 인식된 대로의 인간이 된다. 장기 입원 치료는 그들을 더욱 붕괴시키고, 병원 생활이 길어질수록 그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 이후의 삶을 상상할 수 없게 되고, 실제로 퇴원 후의 상황이 좋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정신 병동 입원 경험을 기록한 다른 작가들의 회고록에도 공통적으로 나오는 부분인데, 그 안에 있는 것만이 안전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의사와 간호사를, 병원을 사랑하게 되는 것. 사실은 그저 익숙해졌을 뿐인데. 오랜 입원은 결국 덫이 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고프먼이 말한 도덕적 이력은 영원한 이력이다. 일단 정신병원 환자가 되고, 거기서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그 상태가 자리를 잡으면, 그 상태를 떨쳐내기는 어렵다. 프레임은 자기가 그러고 싶을 때는 조현병을 걸쳐 입어야 했다고 썼다. 그는 이제 그 역할에 익숙해져 조현병을 걸쳐 입는 일에 능숙했다. 그것이 뭔가를 제공해 주었다. 그 상태가 너무 오래 계속되자 어느 시점에 나의 오빠가 수지는 병원에 있는 걸 좋아해라고 말했던 것처럼.

p.462


 책 속엔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수많은 여성 작가들이 거론된다. 상실의 아픔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한 슬픔을 간직한 채 스스로를 고통 속에 가두고 인생을 비극으로 몰아간 사람들과 사회적, 혹은 타의적 낙인 대신 자신의 상태를 자신이 정의하며 단단하게 딛고 일어난 사람들. 책과 작가들의 삶을 통해 저자는 과거의 자신이 믿어왔던 것과 현재의 자신이 믿는 것 사이의 괴리를 깨닫는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 그는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상태인지, 과거의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현재의 자신은 과거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안다. 그는 이제 미래를 본다.


 이 책이 여성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은 단지 화자가 여성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부장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이등 시민으로서의 여성, 그리고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연결이 여성의 상황과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게 한다. 여성의 일생과 여성의 지위에 관해. 어머니와 딸의 연결과 붕괴, 탄생과 소멸에 관해.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상황 - 여성이라는 성별이 사회적으로 갖는 의미와 한 인간으로서의 여성이 갖는 개인적인 열망과 성취 사이의 갈등 - 은 여성의 삶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순종하거나, 반발하거나. 정신 질환에 관한 문제도 여성에게 유독 가혹하게 작용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는데, 여성이 걸린다고 알려진 최초의 병이자 쓰레기통 진단인  '히스테리'가 정식 병명의 기록으로서 1980년까지 남아있었고, 이것이 삭제된 큰 이유 중 하나가 페미니즘 행동주의라고 한다. 수재나 케이슨이 정신 질환으로 병원에서 보냈던 18개월간의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 «처음 만나는 자유»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이자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 혼돈의 실체를 잘 보여준다. 중산층 백인 여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여성의 전반적 권리에 경험, 정체성을 포괄하는 제3세대 페미니즘이 확산되던 시기였다. 



급진적 여성운동 이후 이십 년이 지난 뒤에도 여자들에 대한 기대는 1950년대에서 거의 진보하지 못한 터였다. 나의 어머니는 1939년에 태어났다. 실비아 플라스보다는 칠 년 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보다는 육 년 전에 태어난 셈이다. 어머니는 결혼하기 전까지 간호사로 일했고, 이후에는 남편의 경력, 더 중요한 의사의 경력을 따라갔다. 어머니는 당신의 이민자 어머니가 그랬듯, 주부이자 어머니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나는 어머니가 행복한 마음으로 그 결정을 내렸을 거라 생각하지만, 내가 어찌 알겠는가. 나의 아일랜드인 외할머니의 결혼 증명서에는 직업란에 "주부"라고 적혀 있다. 나의 어머니는 플라스가 받은 것과 같은 교육도, 엄격한 예술적 훈련도 받지 못했고, 파이어스톤 같은 반항적이고 독립적인 충동도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어머니가 자신이 모든 면에서 이등 시민이란 걸 알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p.390


마음의 고통은 치유되거나 혹은 치유될 수 없다. 개인의 고통에 관한 기록은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거나, 그 자신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광기에 휩싸여있고, 광기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다만 그 광기가 자신과 주변을 붕괴시키는 파괴적인 행위로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병원 밖의 삶을 찾아 나오기까지의 치열했던 저자의 과거와 현재가, 통찰과 사유가, 작가가 그랬듯 누군가에게 그 자신이 되었다가 어느 날엔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빛이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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