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정숙한 세일즈'라는 드라마를 봤다. 드라마의 전반적 내용보다는 각자의 이유로 이기적인 선택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과 그 안에서 진실을 찾으려는 사람들, '가족'의 의미, 자식을 둔 '엄마'의 선택 같은 것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강요되었던 여러가지 제약들 ― 모성애를 포함한 가족에 대한 헌신, 순결함이나 정숙함 등으로 포장된 성권리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 구조적 차별 등 ― 에서 기인한 여러 에피소드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을 보며,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으론 역시 그 너머의 진실을 알 수도 볼 수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검은 해바라기»를 읽는 내내 반복되었다.
«검은 해바라기»는 소년 범죄라는 사회적 이슈를 통해 가족 내부의 균열과 인간 내면의 추악함 등을 치밀하게 다룬 소설이다. 도입부터 입에 올리기도 불편한 사건이 터져나오고, 사건을 파헤칠수록 더 많은 사건들, 더 큰 불편함이 느껴진다. 결국 모든 것은 심리적 학대로 이어져있고, 그 결과로 무너져가는 인간의 내면을 정면에서 바라본다. 가정과 사회에서 우리는 늘 크고 작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서로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입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리고 사회는 그 사실을 외면한다. 검은 해바라기를 읽으며 시종일관 불편하다고 느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폭력이었던 적이, 가해자였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사회 속에서, 가정 속에서, 우리는 모두 다른 가면을 쓴다. 어떤 이는 인정 욕구를, 어떤 이는 통제 욕망을, 또 어떤 이는 열등감을 숨긴다. 해바라기라는 상징은 그 가면의 실체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 가면이 가장 자주 쓰이는 곳이 바로 가정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보호나 사랑이 아닌 폭력이 될 때, 그 관계는 가장 깊은 상처로 변한다.
끊임없이 태양을 좇지만 햇빛을 채워 넣지 못해 시꺼멓게 말라가는 해바라기처럼, 자신의 유일한 증명인 인정을 받기 위해 자신만 빛나려 하는 형. 빛에는 항상 그림자가 따르듯 주변을 ― 특히 동생을 ― 끊임없이 그림자 속으로 몰아 넣어 괴롭히고, 무너뜨리고, 끝내 자기 자신마저 파괴한다.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통제, 조종, 거짓, 자기애적 폭력이 뒤섞인 진실은 어쩌면 우리 사회를 닮았다.

작가는 자극적인 소재를 소비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대신, 그 뒤에 숨은 심리와 관계의 균열, 그리고 가해와 피해의 경계가 뒤섞이는 지점을 집요하게 탐색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한 사회 미스터리가 아닌, 인간 심리의 해부 기록에 가깝다. 결국 독자는 '진실이란 무엇인가', '누가 피해자이며 누가 가해자인가'라는 질문 앞에 멈춰서게 된다.

부모로서 읽는 이 소설은 더욱 무겁다. 아이를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우리는 얼마나 많은 폭력을 정당화하며 살아가는가. '나는 어디까지 이기적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오래 남는다. 결국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법으로는 단죄할 수 없는 내면의 죄,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진실이다.

«검은 해바라기»는 읽는 내내 먹먹하고, 불편하고, 아프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가 외면해온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 소설은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잔혹한 거울이며, 그 거울 속의 '나'를 끝내 외면할 수 없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