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작가
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엘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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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해체되고 재조립되는 언어, 간극에서의 사유>


내 입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단어들은 내 감정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나는 모어에도 내 마음과 딱 맞아떨어지는 단어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낯선 외국에서 살기 시작할 때까지 그것을 자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통조림 속의 낯선 것> 中


 «영혼 없는 작가»는 다와다 요코의 대표작인 <유럽이 시작되는 곳>(1991) 및  <부적>(1996) 전문, <해외의 혀들 그리고 번역>(2002) 에 수록된 글들을 가려 뽑아 묶은 책이다. 일본에서 유럽으로, 몸과 언어의 이동을 경험하며 낯설게 감각한 세계의 정경을, 언어와 문화의 사이를 예민하게 포착하여 펼쳐 보인다.


 처음 이 책을 마주하고 느낀 감상은 물음표에 가까웠다. 이것은 산문일까 소설일까? 작가는 어떤 의도로 사물을 배치하고 시공간을 이동하는 걸까? 이것은 온전히 독일어로 사유하는 과정과 결과일까, 일본어나 일본 문화를 거쳐 독일어에 가닿는 과정에서 사유한 결과물일까? 작가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


 도입부터 이렇게 궁금한 것들이 흘러넘치는 책은 정말 오랜만이라, 오히려 즐거운 기분이 되었다. 그래서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면서도 계속해서 책에 몰두할 수 있었다. 여러 생각을 곱씹느라 읽는 속도는 조금 느렸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비유처럼 들리겠지만, 작가의 머릿속이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느껴져서 그 속이 궁금하면서도, 앞으로 계속되어야 할 나의 즐거움을 위해 그 정체를 알아선 안 된다는, 일종의 양가감정이 들 정도였다.


"저건 브레첼(Brezel) 빵이에요."

"B-수수께끼(Rezel)?"

참으로 멋진 단어였다. 진열장 안에는 작은 빵 하나가 있었는데, 빵 모양이 수수께끼 같은 형태의 간판과 정확히 같았다. 그 빵이 바로 B-수수께끼였다. 아마도 이 모양은 빵집 주인이 비밀 언어 속에서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로텐부르크 옵 데어 타우버: 독일 수수께끼> 中




 다와다 요코는 일본어와 독일어로 작품 활동을 하는 이중 언어 작가다. «영혼 없는 작가»의 출판사 서평을 읽었음에도 대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던 이유이자,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이유이기도 하다. 언어는 사물과 사람, 혹은 관계를 대하는 방식 등 문화에 따라 말의 표현법이 달라진다. 그래서 다중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보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작품 활동을 할 정도의 경지를 갖추고 각각의 언어를 세심하게 해체하며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문화와 문화의 간극에서, 그녀의 눈에 비친 평범한 것들은 어떤 새로운 무엇으로 재탄생할지 몹시 궁금했다.


부수 "문(門)"은 이 번역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요소이자, 번역이 왜 문학으로서 힘을 가지는지를 보여주는 글자다. 번역은 원전의 모사가 아니며 번역에서 원전의 의미는 새로운 몸을 얻게 된다. (이 경우에는 소리의 몸이 아니라 글자의 몸이다.)

<번역가의 문 또는 첼란이 일본어를 읽는다> 中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영혼 없는 작가>에서, 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가는 육체는 영혼이 따라오기 힘든 너무 빠른 속도로 공간을 이동하기 때문에 영혼은 작가 자신 안에, 여행자 안에  머무를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긴 여정에 대한 글을 쓸 때는 영혼이 없는 상태라고 표현한다. <번역가의 문 또는 첼란이 일본어를 읽는다>에서는 문(門)이라는 한자를 부수로 가진 한자어들의 의미를 독일 시인인 파울 첼란의 시에서 읽어낸다. 그녀의 발상에서 정말 소름 끼치게 세밀한 사유와 통찰의 정수를 느낄 수 있었다.


 <이격자>에서는 작가의 모국어와 외국어에 대한 다양한 사유를 시간의 흐름을 따라 들려준다. 제목의 뜻이 '귀로 듣는 사람'인 만큼, 작가 자신에게 들리는 소리나 언어를 따라 생각이 이동한다. 이 책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다와다 요코의 '듣기'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엿볼 수 있었는데, 결국 그녀에게 듣는다는 행위는 보거나 말하는 행위보다 훨씬 중요한 어떤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전 마을>은 작가의 사유뿐만 아니라 일어와 독어 그리고 한국어에 이르기까지 번역의 과정을 관찰하는 것, <심부름꾼>에서는 독일어와 일본어 사이에서 단어의 '음'만이 공명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녀의 문장들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일본어와 독일어를, 그 언어들의 근간인 각각의 문화를 더 깊게 공부해 봐야겠다는 작은 다짐도 해 보았다.


어쩌면 입이 아니고 귀가 이야기하는 기관이 맞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왜 햄릿 아버지의 입이 아니라 귀에 독을 부었겠는가? 세계로부터 인간을 단절하기 위해서는 입이 아니라 귀부터 파괴해야 한다.

<영혼 없는 작가> 中





 책장을 덮고 난 뒤, 나에게 다와다 요코는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가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깨달음을 주고, 내가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어떤 형체가 잡히지 않는 것들을 마치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간 것처럼 명확하게 정리해 주기도 했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눈을 가지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특히 일본어와 독일어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언어 자체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유희를 통해 사유와 통찰의 정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은근한 유머와 재미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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