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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서점 북두당
우쓰기 겐타로 지음, 이유라 옮김 / 나무의마음 / 2025년 8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아홉 번 산 고양이와 잃어버린 이야기의 수호자>
"이야기를 짓는 저주, 무언가를 창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는 저주. 그걸 잃게 되면 마음의 버팀목까지 잃고 말 수도 있는, 어쩌면 인생 전체를 걸어야만 하는 저주야. 그래도 쓰고 싶어?"
p.177
서점에 들어가면 나는 특유의 책 냄새를 좋아한다. 사랑해 마지않는 고양이들에게서 나는 희미한 먼지 냄새나 따끈한 햇빛 냄새와도 비슷한 느낌이다. «고양이 서점 북두당»은 제목에서부터 내가 좋아하는 향으로 가득했다. 한때 취미로 고양이 책 ― 고양이에 관한 내용이거나 제목이나 표지에 고양이가 등장하는 책을 수집했던 만큼 '고양이+서점'이라는 키워드가 어찌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던지!
고양이는 아홉 번의 생을 산다는 말이 있다. «고양이 서점 북두당»은 검은 고양이 '쿠로'가 삶과 죽음을 반복하며 마지막인 아홉 번째 생에 고서점 '북두당'에서 살아가며 마주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 여덟 번의 삶을 거치며 고통받고 괴로워하던 쿠로는, 인간과 고양이 모두에게 마음을 닫은 채 아홉 번째 생을 시작한다. 운명처럼 찾아가게 된 북두당에서 결국 살게 되었지만, 마음의 벽을 치고 날을 세우며 그저 하루하루 지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북두당의 한 고양이가 인간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터지고, 그 이후로 쿠로는 조금씩 주변과 소통을 시작한다. 인간들이 꿈을 좇다가 허망하게 죽는 것을 이해할 수 없던 쿠로는 북두당의 마녀와 고양이들의 사연, 그리고 단골인 '마도카'에 관한 일을 계기로 마침내 인간들을, 고통스러운 창작에의 의지를 응원하고 저주조차 깨부수기에 이른다.
창작이란 게 그렇게 재미있는 걸까.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그토록 행복한 일인가.
p.121
주인공 쿠로는 일본의 문호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등장하는 이름 없는 검은 고양이의 환생이다. 나쓰메 소세키와는 세 번째 생을 함께 했으며, 북두당에서 지내는 다른 고양이들도 모두 전생에 작가와 함께 했던 고양이들이다.
'마녀'라 불리는 북두당의 주인 '기타호시 에리카'는 고양이들의 말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다. 북두당에 온 고양이들의 진명과, 그들의 전생에 대해 듣고 싶어 한다. 모종의 이유로 북두당에 묶여 사랑하는 것들과 함께하며 오히려 상처받아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우리의 역할은 전생에서 함께했던 작가의 삶을 마녀에게 전해주는 거니까."
p.106

쿠로는 인간에게서 제대로 된 이름(진명)을 받지 못한 고양이다. 고양이에게 진명이란 영혼의 가치를 가르는, 품격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특별했던 세 번째 생의 나쓰메 소세키에게서 진명을 받고 싶었지만, 결국 이름도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네 번째 생이 시작되고 스스로 자신의 진명을 나쓰메 소세키의 실명인 '긴노스케'로 정하는 쿠로. 하지만 그 이름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채 삶과 죽음을 반복하며, 인간과 고양이 모두에게 등을 돌린 채 아홉 번째 생을 맞이한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이름 없는 고양이(쿠로)가 인간 세상을 관찰하고 풍자했던 것처럼, «고양이 서점 북두당»의 고양이 쿠로도 지난 여덟 번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며 계속해서 관찰을 이어나간다. 여러 시대에 걸쳐 환생해 살아온 쿠로의 이야기는, 인간과 삶에 대한 쿠로의 시선이 어떤 이유로 어떻게 바뀌는지를 잘 보여준다. 비참한 삶이 반복되며 쿠로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지만, 소세키와 함께했던 세 번째 생의 소중한 기억만은 변색되지 않은 채 그의 전체 삶을 지탱한다.
그들은 마음속 어딘가에 틈을 만들어, 그 틈을 '여유'라고 부른다.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는 그 마음의 여유를. 그렇다면 그들은 우리 고양이에게서 무엇을 바라고, 또 무엇을 얻고 있는 걸까.
아니면 손익 계산을 초월한 무언가가 고양이와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걸까.
p.111

쿠로는 북두당에 찾아오는 손님 중 '마도카'라는 아이에게서 나쓰메 소세키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그 때문인지 자신도 모르는 새 그녀를 돕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커져, 자신이 고수했던 삶의 원칙을 버리기에 이른다. 그녀를 돕기 위해서는 인간의 말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자존심을 굽힌 채 기타호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대필하도록 한다.
그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주었으면 했다.
이야기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내가 바라는 건 오직 그것뿐이었다.
p.330
마도카를 돕기 위해 시작된 창작활동은 쿠로의 인간에 대한 시선 자체를 완전히 달라지게 만들고, 저주까지도 깨부수게 된다. 창작에의 열망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 쿠로는 그것이 마냥 고통스럽기만 한 것이 아닌 어떤 구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생의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짓는 것의 가치를, 작가의 고양이였던 자신의 의미를 찾아낸다.
너를 구할 수 있는 건 오직 너 자신뿐이야.
p.291

책을 읽는 동안 여운 작가의 «서점 일기»에서 읽은 문장들이 떠올랐다.
"결국 책이란 우리를 또 다른 누군가의 세상으로 연결해 주는 종이로 된 하나의 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제각각 잘 큐레이션 된 하나의 책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상흔을 흘려보내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글로 풀어내어 세상에 내보임으로써 고통에서 해방된다. 또 어떤 이들은 그렇게 세상에 나온 글을 읽는 것으로 구원받는다. 창작의 업이 얽히고설켜 저주가 되어버린 북두당과 고양이 쿠로의 이야기는 결국 서로의 구원이 되었다.
고양이와 책을 사랑한다면, 삶과 죽음의 굴레에서도 결국 이야기로 위로받는 이들의 사연이 궁금하다면 «고양이 서점 북두당»의 문을 열어보길 추천한다. 작가의 고양이들과 함께 끝없이 되살아나는 이야기의 마법을, 저주가 축복이 되고 고통이 구원이 되는 순간의 기적을 경험해 보길.
아홉 번의 생을 지나 내가 기타호시에게 건넨 것은···. 이야기가 가져다주는 구원이었다. 단 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아주 작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기적.
p.3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