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의 맛
그림형제 지음 / 펜타클 / 202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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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고단한 하루를 위로하는 한 끼>


≪퇴근의 맛≫은 일상의 단면들과 식사 한 끼를 테마로,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스무 명의 하루를 조명한다. 각 등장인물(주인공)들이 특정 사건으로 연결되어 있거나 같은 시간이나 공간에 잠시 머무르는 등 느슨한 연결 고리를 가지는 옴니버스식 픽션이다. 현실의 공간에서 벌어진 일을 바탕으로 하여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마주칠 수 있는 장면들을 그려내고, 각자의 고단함과 피로를 인정하며 일상에 위로를 건네고자 한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 위로로 읽히는 이유는 명확하다. 각 단편이 묘사하는 현실의 고단함과 사회적 갈등이 실제 경험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그래, 이런 일도 있지”라는 현실 확인의 순간을 통해 공감하며 위로를 얻는다. 하지만 이러한 위로는 전통적인 문학이 선사하는 깊은 감정 이입이나 치유와는 결이 다르다. 이 책은 독자가 자신의 삶과 경험을 텍스트에 덧입히며 의미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다시 말해, ≪퇴근의 맛≫은 감정을 ‘끌어내는’ 책이기보다는, 독자가 감정을 ‘덧입히게 되는’ 책이다. 그것은 독서의 하나의 방식일 수 있지만, 문학적 위로란 단순한 경험의 확인을 넘어 내가 겪지 않은 타인의 감정을 언어를 통해 나의 감정처럼 체험하게 만드는 힘에서 비롯된다. 그 감정은 글 속에서 스스로 발생하고, 독자에게로 스며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퇴근의 맛≫이 주는 위로는 문학이 제공하는 감정의 깊이와는 조금 다른 결로 작동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가진 가치가 폄하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현실의 단면을 정직하게 비추는 거울로서, 우리의 일상을 담담하게 조명하는 데 나름의 의미와 힘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탓일까. 개인적으론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문장의 호흡이 짧고 반복적인 정보 전달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 장면의 생동감이나 인물의 감정이 충분히 독자에게 전해지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예컨대 보험 설계사의 불안과 위축,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하루를 마무리하는 씁쓸함은 상황적으로 설명되지만, 그것이 독자인 나의 감정선에 닿아 진동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감정은 분명 묘사되지만, 감정이 ‘전달’되지는 않는다는 인상이 짙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이 책이 공감을 끌어내는 방식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상황이거나 익숙하지 않은 직업군의 하루에서는 그의 고단함이나 한 끼 식사가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알 수 있지만, 그것은 그의 하루에 공감하고 함께 위로받기 보다 어떤 사실을 '인지'한다는 느낌이 든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은 매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나오는 '작가의 단상'이다. 소설을 읽으며 독자가 느끼는 여운을 사적으로 끊어내고 글의 구상 과정이나 주인공의 실제 모델 등 현실에 관계된 뒷이야기와 실존하는 식당에 대한 정보로 전환되며 이야기의 호흡을 분절시킨다. 이러한 편집 구성은 원래 브런치 같은 디지털 플랫폼에서 개별적으로 소비되던 글을 연속된 책이라는 매체에 옮기면서 생긴 미묘한 간극을 여실히 드러낸다. 한 편씩 짧게 소비하며 개인적 정서를 나누고, 장소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은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오히려 일상적 감각에 잘 부합한다. 그러나 책이라는 매체의 연속성과 몰입 구조 안에서는, 이러한 배치가 감정적 밀도를 쌓기보다는 리듬을 무너뜨리고 몰입을 깨트리는 결과를 낳는다. 책을 계속 읽어가며 마치 관찰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감각으로 적응은 했지만, 초반에는 이런 사견들이 몰입에 끊임없이 방해가 되어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가 힘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작품 맨 마지막에 '작가의 말' 등의 형태로 작가의 단상 부분을 넘겨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감사의 말'에서 작가가 출판을 위해 추가 원고 작업을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맛집 정보도 넣었다는 내용을 봤는데, 부록으로 맛집 정보와 지도를 그려 넣는 것도 재미있는 편집이 되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는 교정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등장인물의 이름 오기에 관한 것이다. 사실 책을 읽을 때 오기에 그렇게까지 신경 쓰는 편은 아니다. 물론 어떤 면에선 치명적이고 맥이 끊기긴 하지만 문맥을 이해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 단편들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설정 때문에 이 오기는 나에게 큰 문제가 되었다. 인물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궁금해서 주변 상황이나 이름에 잔뜩 주의를 기울이며 읽고 있는데 '배우의 파스타' 편에서 주인공 은재의 첫사랑 '창민'이 '창훈'이 되어버린다. 순간 다른 등장인물인가 하고 좀 당황했는데 단순한 오기였고, 놀랍게도 '작가의 단상'에서도 '창훈'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작가가 처음에 이름을 창훈으로 짓고 모종의 이유로 창민으로 바꾸다가 문제가 생긴 걸까? 은재가 처참히 실패한 첫사랑 상대의 진짜 이름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맨 마지막 이야기인 '작가의 카레' 편은 ≪퇴근의 맛≫을 쓴 그림형제, 즉 이 책의 작가 이야기라고 한다. 내용 중에 '괜히 반갑지 않은 서평이나 독후감이랍시고 여기저기 흠잡는 것으로 모자라 블로그 같은 데에 올릴지도 모른다'라는 문장이 나와서 좀 뜨끔한 기분이다. 내 개인적인 후기가 비난이라기보다 기대했던 만큼 아쉬운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는 점을 알아준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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