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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그곳에 우리 - 토스카나의 여유, 아말피의 설렘을 걷다
이홍범 지음 / 좋은땅 / 2025년 5월
평점 :
품절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따로 또 같이, 이탈리아에서의 '우리'를 추억하며>
때로는 예상치 못한 우회로나 멈춤이 더 깊은 깨달음을 주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풍경이 이야기를 완성해 간다.
p.7
'이탈리아'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폼페이에서 정말 열심히도 뛰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폼페이 유적지를 서둘러 구경한 후 로마로 돌아가는 마지막 열차를 꼭 타야 했기 때문이었다. 로마에서 기차를 타고 나폴리를 거쳐 폼페이에 도착해서 정말 보고 싶었던 몇 가지만을 보기 위해 계속 달렸던 그날의 나는 많은 것들을 놓쳤다. 늘 궁금했던 '개 조심' 그림이 있는 집도, 대욕장도 볼 수 없었을뿐더러 당연히 봤어야 하는 베수비오 화산에 대한 기억도, 폼페이에 대한 기대도 잊혔다. '저게 정말 진품일까' 싶을 정도로 바구니와 테이블 가득 어지럽게 쌓인 화산재에 파묻힌 사람들과 유물들의 잔해와, 힘겹게 로마행 막차 시간에 맞춰 도착한 나폴리 역에서 갑자기 플랫폼 전광판이 꺼지며 기차가 운행하지 않게 되었다는 안내를 듣고 당황한 나를 도와준 다른 승객의 얼굴만이 내가 폼페이에 대해 기억하는 유일한 두 가지다.
2007년, 유럽 여기저기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처럼 홀로 쏘다니던 나는, 기대에 부풀어 방문한 장소들에서 번번이 뒤로 돌아 나와야 했다. 온 유럽의 관광 명소들 보수가 한창이었다. 당시를 추억하다 보니, 내가 방문했던 곳보다는 방문하지 못했던 곳들에 대한 기억이 더 많이 난다. 심지어 장소에 대한 기억은 상당히 흐려졌지만, 만나고 헤어졌던 분들과의 추억이나 사소한 사건들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관광을 하러 갔는데 관광지 자체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한 아이러니!
마치 일기처럼 그날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기록된 저자의 여행기를 따라가다 보니 나의 여행이, 나의 유럽이, 나와 함께했던 이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여행은 늘 계획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분명 힘들고 지치는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어떤 장소에서의 특별했던 경험들이 여행의 기억과 그 기억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나를 더 깊이 있게 만들어 준다.
저자는 이번 이탈리아행을 계획하며 '따로 또 같이' 라는 여행 콘셉트를 통해 각자의 취향과 형편을 고려해 여행의 만족도를 높이면서도 함께하는 시간 동안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고 한다. 60대의 삶은 사회적 역할에서 서서히 벗어남과 동시에 자신을 온전히 돌아볼 여유가 생기는 시간이었고, 그래서 이 여행은 저자에게 단순한 관광을 넘은 또 다른 의미 있는 경험이 되었다.
로마에서 시작해 아시시, 피렌체, 아말피 등을 거쳐 다시 로마로 돌아오는 여행기를 따라 과거의 나를 돌아보기도, 미래의 나를 그려보기도 하며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낭만에 푹 빠져있었다. 책장을 덮고 나니 긴 여행 후의 여운 같은 것도 느껴진다. '여행은 낯선 풍경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는 여정'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여행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과 추억들은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