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훈의 《빙글빙글 우주군》을 참 재밌게 읽었다. 구예민 참모총장의 번뜩이는 리더십, 박수진 소령의 유능함, 서가을 예보관의 능청스러움 등 매력적인 캐릭터들 사이를 빙글빙글 오가던 이야기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번 《기병과 마법사》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한반도 역사를 배운 우리 안에는 기마병이 잠들어 있는 듯 하다. 역사 속 위대한 왕들을 떠올려보면 활과 칼에 능숙한 기마병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북방 초원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다르나킨과 영윤해의 모습이 더 정겹고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배명훈 작가는 이번 작품 《기병과 마법사》에서 '바로 여기가 원본인 판타지'를 지향했다고 한다.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기마병의 기억과 함께 세상과 자신을 구하는 영윤해의 마법을 느끼며 매력적인 판타지 세상에서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주인공 영윤해는 소라울에서 자신을 둘러싼 올가미에 고통받고 있었다. 숙부 영위의 보이지 않는 위협, 인간 백정 종마금과의 혼담, 아버지 영유의 무기력함과 몸종 호미를 지키지 못한 비통함이 윤해를 이리저리 옭아맸다. 그러나 윤해는 숨막히는 운명에서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다. 깊은 밤 절벽 앞에서 홀로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에도 운명에 굴복하지 않았기에 기적같이 마법을 터득하고 스스로를 구한다. 1021과 관련된 세상과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된 후에도 자신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기병 다르나킨과 함께 초원을 누비는 동안 자신 안의 칼날을 꺼내어 모든 올가미를 잘라버리고 스스로와 세상을 구하는 마법을 부린다.
소라울에서의 윤해는 무력했다. 그러나 소라울을 벗어나 북방 초원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윤해는 자유와 활기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초원에서 지내는 동안 윤해는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살아갈 세상을 구하기 위해 마법을 단련하는 등 점차 주도적이고 당찬 모습을 보인다. 윤해는 종마금 살해, 소라울 조정에 대한 반역, 포로가 된 아버지의 사살 등을 선택한다. 복수를 위해 마냥 악하지도, 세상을 위해 마냥 선하지도 않은 윤해의 행동에 마음이 가는 것은 그녀가 언제나 숙고하는 사람이라서다. 말을 타고 초원을 누비며 미래를 그려가는 윤해의 모습은 글을 읽는 나에게도 해방감을 전해주었다. 윤해의 마법을 보며 나를 구하기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작중 배경이 되는 술름고리 성도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술름고리 성은 농사에 기반한 경작인 사회와 유목에 기반한 마목인 사회가 한 울타리를 이루어 살아가는 곳이다. 물과 기름이 한 그릇 안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마목인이 보는 경작인은 집을 모시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방바닥이 얼마나 소중한지 신발을 벗고 들어서야 하는 이들. 경작인이 보는 마목인은 근본이 없는 이들이다. 글을 읽고 쓸줄 모르는 야인들. 삶의 방식이 서로 다른 이들이 한 곳에 모여 살고 있으니 갈등이 서로를 밀어내고 공동체가 갈라질 법도 한데 술름고리 성은 갈라지지 않고 유지된다. 토르가이, 위요제라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한 필요성도 있겠지만, 서로가 가진 장점에 대해 인정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갈등이 격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대조되어 이 부분이 더 크게 다가온건 아닌지,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