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과 나 - 배명훈 연작소설집
배명훈 지음 / 래빗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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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쓸모없는 존재들의 쓸모에 희망을 걸 수 있을 때까지

미지를 이해하고 기지의 상태를 더욱더 갈망하리

 

 화성과 나배명훈 연작소설집 | 래빗홀 펴냄 | 무선 제본 | 304| 362g | 134*200*30mm | ISBN13 9791168341432


미지

 

아직 닿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이야기를 읽는 것은, 오히려 내가 현존하는 시공간을 더욱 공고히 하는 일이다. 수록작 붉은 행성의 방식은 어떤 화성인의 죽음으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그리고 또다른 화성인들이 그 존재의 죽음과 소멸을 인식하는 것은 곧 제 죽음을 직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행성관리위원회의 희나는 인터뷰에서 화성인을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회복이라고 말한다. 처음부터 하나를 잃어도 다른 개체가 이어받을 수 있도록, 그래서 무슨 일을 겪더라도 회복해낼 수 있도록 설계되어 화성으로 보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국 화성인의 죽음을 목도한 또다른 화성인은 일반적인 타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동일시를 경험한다. 미지의 세계에서는 상대방이 같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쉽게 그 대상을 갈망하게 된다. 상대방 그 자체뿐만 아니라 상대가 가졌던 마음까지도 이어받는다. 인간으로서 화성에서 살아 있는것 자체가 미지를 기록하는 하나의 중요한 지표가 된다. 그리고 화성에서의 살아 있음은 그동안 인간이 지구에서 정의해왔던 이라는 개념이 외부 공간에서도 통용될 수 있다는 증거와도 같다. 희나가 다음 날 아침에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서 발견되는 것. 이 행성에서는 그게 사건이야. 여기는 차가운 지옥이지만 우리는 매일 그 사건을 일으키고 있어. 그것도 아주 많이. 공동체의 모든 자원을 다 쏟아부어서 아침마다 일으키는 기적이지.”(40) 라고 말했던 것처럼. 죽지 않고 살아남는 사건들은 사실 화성에 지구의 이라는 개념을 적용하는 과정과도 같다.

 

지구 외부의 행성, 미지의 공간에서 하루하루 살아남는다는 것은 오히려 지구인이 되는 것과도 같다. 그곳에 동화될 수는 있지만 동일시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배명훈 작가는 인터뷰에서 '저는 화성인이 되기보다는 일단 지구인이 된 것 같아요.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살고 있다는 감각 못지않게 지구라는 행성에 살고 있다는 감각도 점점 커진 게 느껴져요.'라고 말한다. 화성에 이주해 살아가는 지구 사람들은 화성에 도달해서야 비로소 자신이 지구인임을 명확히 인지한다. 동시에 독자는 소설집에 담긴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미지를 인지하고 기지의 상태를 더욱더 갈망하게 된다. 타자의 죽음을 자신의 것으로 이해하고 타자의 열망을 자신의 열정으로 치환하듯이, 붉은 행성의 방식에서 지요가 희나의 빈자리를 회복하듯이.

 

래빗홀

 

래빗홀클럽 1~2, 100인의 변론단 활동을 통해 래빗홀의 도서 세 권을 읽었다.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선녀를 위한 변론, 화성과 나모두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면서 동시에 현실과 가장 밀접하게 닿아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명백한 픽션의 형태를 띠어 환상성을 느끼게 해 주면서도 2020년대의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가 고개 끄덕이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모아 두었기에 토끼굴이라는 뜻을 가진 브랜드명과 래빗홀의 소설집들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굴속으로 들어가 픽션을 헤매도 그 과정에서 당신은 자연히 성장할 것이라 말하는 이야기들. 자칫하면 허상과 허무를 느낄 수 있는 픽션의 세계에서, ‘이상한 나라또한 우리 세계의 일부임을 인지하게 해 주는 소설들. 토끼굴 속에서 읽게 될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지는 밤이다.

 

▷ 래빗홀클럽 2기 활동을 위해 래빗홀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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