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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마돈나
자케스 음다 지음, 이명혜 옮김 / 검둥소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행복한 마돈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어떤 나라일까? 내가 아는 정도라고는 만델라와 아파르트헤이트라 불리는 인종차별 정책 정도이다. 조금 더 아는 체하면 럭비를 좋아하는 백인들의 식민지로 차별을 받아온 나라, 진실과화해위원회로 유명한 과거청산, 이런 것들이 떠오른다.
뭔가 많이 아는 것처럼 느껴졌었는데, 생각해 보니 빈약하기만 그지없다. 인류 조상의 땅 아프리카의 최남단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어떤 나라인가? 2010년 월드컵이 열린다는 그 나라는 이제 인종차별의 벽을 넘어선 민주국가일까? 그들이 겪은 식민지 침탈과 인종차별의 역사는 어떤 모습일까?
역사책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고, 공부하기를 즐기는 사람도 아닌 나에게, 검둥소에서 발간한 소설 <행복한 마돈나>를 만난 건 행운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문학을 서점에서 골라볼 수 있다니. 이 책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첫 소설은 아닐지 몰라도, 어쨌든 내겐 처음 다가온 만델라의 나라, 남아공의 첫 소설이다.
소설은 ‘모든 것은 우리 어머니의 죄에서부터 시작된다.’로 시작해서 ‘모든 것은 우리 어머니의 죄에서부터 시작되었다.’로 끝이 난다. 의미심장하다. 어머니의 죄는 무엇일까?
가장 오랜 인류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모든 인간의 조상인 아프리카인들이, 그들과 생김새는 좀 다르지만 그들의 후손임이 분명한 유럽의 백인들에게 살육당하고, 침탈당해 결국은 노예의 신세로 전락하게 되는 식민지의 역사, 바로 그곳 대지에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십대의 꽃다운 처녀로 성장한 니키는 농장주에 겁탈당하고, 노리개로 전락한다. 남아프리카의 백인들은 언제나 마음놓고 자신의 성적욕구를 풀 수 있었다. 그것이 관습이 되고, 그 관습 아래서 엑셀시어의 백인 남성들과 흑인 여성들간의 성 스캔들이 벌어진다. 이들은 백인의 순결성을 지키기 위해 백인과 흑인간의 성관계를 금지한 부도덕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기소된다.
인종차별 정책과 백인과 흑인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 태어난 유색인들의 생각과 갈등이 성 스캔들과 법적 공방, 흑인 여성들의 옥살이, 그리고 집으로의 귀환을 관통하면서 소설은 남아프리카의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남아프리카의 붉은 빛 흙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시골길을 걷고, 농장의 한귀퉁이 창고에서 비릿한 냄새에 코를 찡그릴 것만 같다. 니키를 집요하게 좇는 요하네스 스미트를 통해 성과 집착, 그리고 남성사회를 지배하는 봉건성을 옅볼 수 있고, 니키를 떠나는 남편과 색깔이 다른 아이들을 통해서 세상 어디에서나 모든 짐을 지어야만 하는 여성의 신산한 삶에 전율하게 만든다.
소설은 성 스캔들에서 머물지 않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변화, 인종차별 정책이 무너지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과정을 따라 간다. 니키의 흑인 아들 빌리키와 컬러드(혼혈) 딸 포피가 의회에 진출하면서, 새사회의 주류가 된 세력과 여전히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백인들간의 혼란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거기에 주류의 분열과 갈등도 낯설지 않다.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극한대립을 하고 있는, 진보는 분열하고, 보수를 타락하는 우리 현실과 너무도 닮아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현실이 빌리키와 포피를 중심으로 생생하게 그려진다. 의욕에 불타기도 하고, 갈등에 휩싸이기도 하면서 남아프리카는 요동친다. 진보와 보수, 중도, 그리고 그것들의 혼재가 작은 마을 엑셀시오도 뒤흔들어 놓고,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게 만든다.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니키는 지난 과거의 여인으로 침묵한다. 벌을 치면서 사람들에게 휴식의 공간을 제공하기도 하고, 잊혀진 여인의 상징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컬러드인 포피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어머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고, 니키 정부의 아들인 트자르트, 포피의 이복오빠와 격한 갈등에서 벗어나 화해를 하는 과정은 아름답기만 하다. 화해의 과정을 통해 분노를 이겨내는 힘이 무엇인지 웅변한다.
“모든 죄는 어머니에서 비롯되었다.‘
금기를 어기는 것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남아프리카의 가브리엘 마르케스라 불리는 자케스 음다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프리카너로 불리는 백인 정착민과 지배받는 흑인, 그리고 이쪽도 저쪽도 아닌 컬러드, 그 모두에도 속하지 않는 여성의 삶을 섬세하고 묘사하고 있다. 음다는 모든 것의 출발을 죄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일까, 어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걸까.
소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지만 무겁거나 과도하게 진지함에 빠지지 않고 있다. 또 성 스캔들을 직접적으로 다루면서도 선정적이지 않다. 작가의 문장도 유려하고, 노래를 하는 듯 가락을 탄다. 좋은 소설을 만난 기쁨은 남다를 수밖에. 장면 장면이 영상을 보는 것만 같고, 책을 읽은 뒤에도 잔상이 오래 남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