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라이프
김사과 지음 / 창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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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만들어진 영혼은 이미 잡아먹혀 사라졌고, 나는 가상에서만 존재하는 이미지 혹은 환영 어쩌면 귀신 혹은 홀로그램일지도 모른다.

 

작년인가 김사과의 0 Zero 을 읽고서 거침없이 내달리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미쳤다라는 말을 육성으로 내뱉기도 했었고. 말도 안 되는, 고자극적 소설이 주는 이상한 시원함때문에 생에 진절머리가 날 때 읽으면 좋을 법한 작가구나,라고 받아들였는데 하이라이프를 읽으며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하이라이프는 어그러질 대로 어그러지고 미칠 대로 미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지극히 현실에 기반한 사실주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 년 전의 나는 김사과의 소설을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효과 좋은 든든한 예방 주사로 읽었던 셈이다


하이라이프속 인물들은 전부 자신이 속한 세계 밖으로 눈을 돌리지 못한다기보다 돌리지 않는 것에 가까운 듯했다. 그래서 세계를 파괴하거나 빠져나가지 않는 대신 점점 안으로 침몰하거나 미친 세상에 더 미친 방법으로 응수하는 듯했다. 그들은 도시를 배회하는 마약 중독자로 살아가거나(하이라이프), 부를 향한 욕망의 열차에 올라타 좀더 복잡한 고난도의 게임”(137)을 시작하고 온갖 모순과 허영을 즐긴다(두 정원 이야기). ‘부모가 만든, 훌륭하게 가공된 껍데기에 지나지 아니한 상류층 친구의 마력에 10년간 도취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뒤 분노와 허탈감만 손에 쥔 채 그 자리에 눌어붙어 버리기도 한다(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 또는 서울과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잇는다는 웜홀에 갇히거나(벌레 구멍), 이유 없는 의지”(249)로 홀연히 사라지기도 한다(몰보이).

 

하이라이프를 읽으면서 내 주변과 바깥을 떠올리자 다 섬뜩했고, 이런 생각도 했다. 어쩌다 투명하고 무한한 회전문의 방에 갇힌 건지, 내가 나를 가둔 건지. 어쩌다 멈춤이 없는 연극을 하는 것인지. 어쩌다 고통과 쾌락 사이에 다리를 놓고 우스워지기로 작정한 것인지. 날 때부터 죽었던 것인지. 책을 덮고 긴 긴 산책을 했다. 동네 산책은 모든 게 평소와 같아서 너무 낯설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조용한 하늘, 물가에서 소란하게 움직이는 날벌레 떼, 이팝나무가 한 그루씩 줄지어 있는 산책로까지. 오후 6. 먹빛은 아직이었고, 평소보다 재바르게 걸어 보았다. 모든 게 무서우리만치 평화로웠고, 도망치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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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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